믿음으로 선택하라





본문말씀 : 창세기 24장 3-8절
3.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4.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5.종이 이르되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6.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7.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8.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 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 믿음으로 선택하라 >

 아브라함은 며느릿감을 구하러 늙은 종을 보내면서 가나안 족속이 아닌 자기 고향 족속 중에서 며느리를 구하게 했다. 가나안의 죄에도 물들지 않고 혈통의 순수성도 지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오늘날의 의미로는 믿는 성도 중에서 며느릿감을 구했다는 의미다. 이 장면에서 신자는 신자와 결혼해야 함을 권고 받는다. 물론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불신자와 결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고린도후서 6장 14절에 나오는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말씀을 내세운다.

 멍에는 두 마리 소가 끄니까 그 말씀을 마치 결혼에 관한 얘기처럼 적용한다. 그 말씀은 불신자처럼 불신자의 원리에 맞춰 살지 말라는 일반적인 말씀이다. 당시 고린도교회는 파당, 미움, 이간질 등 교회 내에 문제가 참 많았기에 거기에 휩쓸려서 같이 파당을 짓고 서로 미워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세상적인 것들에 휩쓸려 같이 행동하지 말라는 말이지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믿는 자와 꼭 결혼해야 한다고 고집스럽게 주장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반 은혜의 법칙에 어긋날 수 있다. 대개 여자 청년성도가 남자 청년성도보다 2-3배 많다. 그런 상황에서 믿는 자끼리 결혼하라고 강요하면 여자들 3분의 2는 독신으로 지내야 하는 야박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믿는 사람과의 결혼이 결혼의 절대전제는 아니다. 다만 결혼 조건을 볼 때 믿음을 제일 먼저 고려하고 선택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선택이든지 선택의 순간에는 늘 믿음으로 선택하라.

 인생에서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선택의 순간에 신앙적인 선택을 하라. 결혼, 사업 등의 문제에서 선택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다른 거의 모든 문제에서도 선택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의 결혼을 준비하면서 철저히 믿음에 의한 선택, 하나님의 뜻에 맞는 선택을 하려고 했다. 그런 자세를 가지라. 선택의 순간에 늘 속으로, 자동적으로, 본능적으로 질문해야 할 것은 “이것이 내게 얼마나 금전적인 유익이 되는가?”가 아니라 “이것이 내 신앙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하는 것이다.

<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라 >

 당시 갈대아 우르나 하란에 비해 가나안은 시골이나 다름없었고 약 800여 킬로미터 떨어진 20일 이상의 여정이었기에 좋은 며느릿감을 구해도 그녀가 여인의 몸으로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선 사람을 따라 낯선 땅으로 따라나서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때 아브라함은 여자가 따라오려고 하지 않으면 맹세한 것을 무시하고 이삭을 그리로 데리고 가지 말라고 했다(8절). 아브라함의 고향은 우상을 숭배하던 도시였다. 결혼을 위해 아내감을 데리고 나오는 것은 좋지만 아내감을 얻기 위해서 이삭을 그곳에 데리고 갈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혹 불신자와 결혼해도 믿음의 가능성을 보고 결혼하고 내가 그를 인도할 목적으로 하는 결혼이어야지 배우자처럼 불신자가 되어버리는 결혼은 되지 않도록 하라. 그래서 아브라함은 결혼 대상에 대해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만약 그 여자가 따라오지 않으면 그냥 상관하지 말고 이 맹세가 상관없게 된다고 말해주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깨끗이 포기하는 모습이다.

 선택할 때는 잘 선택하고 최선을 다해 일하되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라. 어떤 길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아니면 깨끗이 포기하라. 인생을 포기하면 안 되지만 내 뜻은 수시로 포기될 수도 있다. 내 뜻을 포기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것이나 내 삶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뜻만 고집하고 포기하지 않는 삶은 절대 아무것도 배우지 않겠다는 삶이다. 자기 뜻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는다.

 자기 뜻을 지혜롭게 잘 포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랑과 용서, 이해와 헌신, 기도와 봉사는 포기하지 말아야 하지만 자신의 계획과 뜻, 내 생각과 행동 등은 포기되어야 할 때가 많다. 자기가 세운 계획대로 할 수 있다면 좋지만 그 계획이 진리는 아니기에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계획이 자주 바뀌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니지만 사람의 일이란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다. 포기할 때는 포기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보충해 달라고 하면 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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