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죄책감을 버리라





본문말씀 : 창세기 42장 18-23절
18.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19.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20.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21.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22.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 23.그들 사이에 통역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듣는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 지나친 죄책감을 버리라 >

 요셉은 모른 체 하며 형제들을 정탐꾼으로 몰고 그들 중 한 사람이 인질이 되고 막내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제안했다(18-19절). 그때 그들은 억울한 누명을 쓴 줄 알고 과거 요셉의 일로 죗값을 치르게 되었다고 한탄했다(21-23절). 얼마나 오래 전 죄인가? 요셉이 17세에 팔려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고 7년의 풍년 후 7년의 흉년 기간 초기였기에 그 죄는 약 20여 년 전의 죄였다. 현재의 어려움을 20여 년 전의 죄와 금방 관련시키는 모습을 보면 그들은 그 전에도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요셉을 팔았던 죄를 생각했던 것 같다.

 회개로 죄 문제를 잘 처리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죄는 스토커처럼 내 의식을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그처럼 죄책감에 깊이 빠진 형제들의 행동이 옳은가? 과거에 한 번 큰 죄를 지으면 어려울 때마다 그 죄와 연결시켜야 하는가? 그런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성도는 그런 모습을 더욱 버려야 한다. 지나친 죄책감을 가지는 것은 죄로 고민하는 의로운 모습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예수님의 대속의 피를 무용하게 만드는 불신적인 태도다.

 본문에서 요셉의 형제들이 자기들의 처지에 대해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였도다.”라고 말하고 르우벤이 “그의 피 값을 내게 되었도다.”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그들이 얼마나 괴로움을 당했고 얼마나 피 값을 치렀는가? 그때는 괴로움을 얘기하고 피 값을 얘기했지만 얼마 후 그들은 요셉과 재회하고 더 복된 존재가 된다. 그런 결과를 생각하면서 소망 가운데 살아야지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옛날의 어떤 죄만 떠올리면 안 된다.

 형제들이 요셉을 팔았기에 나중에 요셉이 총리가 되고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민족국가의 기틀을 형성하게 된다. 결말이 선하게 매듭지어진 것이다.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에게 잘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의 과거의 잘못도 복의 재료로 사용하셨다는 뜻이다. 또한 그들이 요셉에 의해 잠깐 누명을 쓴 것도 요셉이 선한 목적이 있어 잠시 동안만 형제들에게 그렇게 한 것인데 그것을 가지고 옛날의 죄에 깊이 몰입하면 안 된다.

< 과거에 매달리지 말라 >

 죄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회개한 다음에는 새로운 내일을 향해 달리라. 하나님은 과거의 잘못을 계속 끄집어내어 몇 개월마다 혹은 몇 년마다 한 번씩 어려움을 주는 하나님이 아니다. 과거에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지나친 죄책감에 빠져 모든 어려움을 그 죄와 연결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뜻도 아니고 바람직한 인생 태도도 아니다.

 어떤 사람은 과거에 내린 단순한 선택을 가지고도 후회하는 감정에 빠져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과거의 그 선택과 연관시켜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그때 이 길을 선택해서 그런가? ” 그러나 그 길을 선택해서 하나님이 어려움을 준 것만이 아니다. 어떤 성도는 교회를 옮기면 무조건 줄초상이 나는 줄 안다. 그러나 교회를 의도적으로 해치거나 불의하게 분란을 일으킨 것이 아닌 상태에서 예수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변함없다면 그런 염려를 가질 필요가 없다.

 어느 교회는 새신자로 등록할 때 이런 서약을 한다. “나는 이 교회에 등록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이 교회의 교인이 되겠다고 서약합니다. 혹시 내가 이 교회를 떠나면 저주받아도 좋습니다.” 그런 교회는 거의 이단 교회일 것이다. 어떤 이단 교주는 이렇게 위협한다. “너 다른 교회 가면 잘 되나 보라. 5년 내에 큰일이 날 거야.” 그처럼 무속적인 위협과 정죄로 영혼을 얽매는 사역자는 참된 기독교 사역자가 아니다.

 어떤 일을 선택할 때는 진지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해 선택하고 선택한 후에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이미 벌어진 지나간 일에 대해 더 이상 후회하며 연연해하지 말라. 잘못된 선택으로 가끔 어려움을 겪어도 그 일을 반면교사로 삼고 새롭게 출발하면 그 잘못 선택한 것도 승리의 한 과정이 된다. 하나님은 현재 하나님을 믿는 굳건한 믿음이 있는지를 보신다. 어려운 일을 만나도 결코 자신감을 상실하지 말고 내일의 찬란한 꿈을 가지고 살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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