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받는 자의 특징
본문말씀 : 창세기 17장 15-23절
15.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16.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17.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18.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19.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20.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21.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22.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23.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포피를 베었으니
1. 과감한 결단과 순종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아내의 이름까지 바꾸라고 명령하면서 사래에서 사라로 바꾸면 아들을 주고 그녀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로 만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었다. 그렇게 웃으면서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즉시 아내 이름을 사라로 고쳐 불렀다(17절). 그는 확신이 있든지 없는지 일단 순종했고 죽든지 살든지 일단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했다.
본문 앞의 9-14절에서 하나님은 그에게 할례를 명했다. 남자의 생식기에 칼을 대는 할례를 받으면 약 2주간은 거의 거동하지 못한다. 그때 대적이 침공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기에 할례 받을 시기를 잘 정해야 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 날에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포피를 베었다(23절).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즉시 행하면서 함께 사는 모든 남자에게 그들의 의향도 묻지 않고 할례를 행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이라면 과감히 결단하고 순종했다. 그런 자세를 배우라. 어느 때에 하나님이 마음에 어떤 감동을 주시면 과감히 결단하고 순종하라. 순종의 길에 허물과 부족함이 많아도 하나님은 그 결단과 순종을 결코 헛되지 않게 하고 은혜의 장으로 이끌어주실 것이다. 순종의 결단이 없으면 두려움의 골방에 사로잡혀 살게 되고 순종의 결단을 하면 담대함의 광장으로 뛰쳐나갈 수 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면 고난은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고난 후에 축복이 뒤따라온다.
진리의 길은 대개 고난의 길이다. 고난이 예상되어도 과감히 진리의 길로 들어서면 은혜의 문이 열린다. 십자가가 부활을 따르게 하고 고난이 축복을 따르게 하는 것이 순종의 결단이다. 역사의 주체로 살았던 인물은 대부분 순종의 결단이 있었다. 순종의 결단이 있을 때 예수님을 닮은 삶도 나타나고 하나 됨의 역사도 이뤄진다. 순종의 결단이 없는 인생은 펑크 난 타이어 인생처럼 된다. 그 인생으로는 뜻한 곳으로 갈 수 없다. 좋은 결단이 꾸준한 이행을 선도하다가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의 장으로 들어서게 한다.
2. 범사에 만족하는 자세
아브라함은 약속 성취가 늦어져도 “왜 안줘요? 왜 약속을 안 지켜요?”라고 하면서 약속을 내세워 자기 권리를 요구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믿고 따랐던 시간에 대해 본전 생각도 없었다. 결국 하나님은 사라를 통해 이삭을 주고 이삭과 세운 언약을 이삭의 후손에게도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이스마엘에게도 복을 주어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해서 그가 열두 두령을 낳고 큰 나라가 되게 하시겠다고 했다(19-20절). 믿음을 시험하는 상황에서도 감사하고 만족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오게 만든다.
한 처녀가 행복을 약속한 청년과 결혼했다. 그러나 결혼하고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살림이 어렵고 쪼들렸다. 그때 남편에 한 번 더 약속했다. “여보! 나를 믿으시오. 행복하게 잘 살게 해주겠소.” 그때 아내가 “이젠 더 이상 안속아.”라고 반응하지 않고 나를 위로해 주려고 애쓰는 남편의 모습이 고맙게 느껴졌다. 그래서 속으로 웃음이 터지고, 넉넉한 미소가 피어올라서 말했다. “여보! 괜찮아요. 지금 형편에도 만족해요.” 그러면 남편이 얼마나 감동이 되겠는가? 그때 남편은 믿어주는 아내를 위해 더욱 최선을 다할 것이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분명 놀라운 약속을 주셨지만 그 약속의 성취가 늦어지고 가는 길에 장벽도 있고 상황은 순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때 “믿었는데 왜 이런가요?”라고 항변하고 요구하는 자세를 가지면 하나님의 은혜가 따라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 하나님의 섭리와 적절한 인도를 믿어요.”라고 하나님의 뜻에 의탁하면서 범사에 감사하고 만족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따라온다.
인생은 짧다. 육체의 모습은 풀과 같고 그것의 아름다움은 들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 안에 확고히 서 있다면 인생길은 한층 가벼워진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여유가 있다고 자랑할 것도 없고 여유가 없다고 한탄할 것도 없다. 사라져버린 것으로 인해 너무 아쉬워하지 말고 이르지 않은 것으로 인해 너무 조바심내지 말라.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고 기다릴 줄 아는 것이 믿음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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