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성령충만에 이르라
본문말씀 : 사도행전 13장 6-10절
6.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 말씀 중심적으로 살라 >
바나바와 바울이 구브로 섬의 동쪽 도시인 살라미에서 전도를 마치고 섬 중앙을 통과해 서쪽의 바보란 지역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바예수란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가 구브로 총독인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었다(7절). 서기오 바울은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지혜가 있어서 바나바와 바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했다(7절). 그러자 마술사 엘루마가 바나바와 바울을 대적해서 총독이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게 했다(8절). 엘루마는 ‘점쟁이’란 뜻을 가진 아람어에서 유래된 단어다.
서기오 바울이 점과 주술로 무장한 마술사 엘루마의 미혹에 잘 넘어가지 않은 것은 그가 정치인이자 통치자로서 마술사 엘루마를 함께 있게 한 것이지 신봉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에는 마음을 열었다. 결국 거짓 선지자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최선의 길은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말씀에 굳건히 서는 것이다. 말씀 중심적으로 살면서 너무 서두르지 말라. 말씀은 생명의 씨와 같다. 마음 밭에 뿌려져 열매를 맺기까지는 많은 땀과 오랜 과정이 필요하다.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과정을 생략하려고 하지 말라. 사람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은 다르다. 사람에게는 긴 시간이 하나님께는 짧은 시간이다. 나의 시간 리듬이 아닌 하나님의 시간 리듬에 맞춰 살라. 환경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민심이 흉흉해지면 일시적으로 극단주의자가 득세하고 온건한 사람이 반동으로 몰리기 쉽다. 그러나 때가 되면 감정을 절제하고 온유하게 하나님의 말씀이 가리키는 생명 원리대로 사는 사람이 결국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는다.
말씀 중심적으로 살려고 노력했는데 왜 열매가 없느냐고 의문을 가지거나 생각조차 하지 말라. 그런 의문과 생각이 감사를 갉아먹고 마음 밭을 황무지로 만든다. 말씀을 기쁘게 듣고 깊게 간직하라. 현실과 역사 속에 말씀으로 희망을 파종하고 희락을 거두는 선한 농부가 되라. 말씀대로 살면 사탄의 공격 표적이 되고 사람의 영적인 시기와 질투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계속 말씀의 씨를 마음 밭은 물론 사회 밭에 뿌리라. 그 씨가 자라서 후대가 살아갈 세상이 가꿔지고 역사가 새로워질 준비가 갖춰진다.
< 참된 성령충만에 이르라 >
사도 바울이 마술사 엘루마에게 추상같은 저주를 내릴 때 그는 성령이 충만한 상태였다(9절). 결국 거짓 선지자를 이기는 가장 위대한 길은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길이다. 가장 능력 있게 사는 길도 성령충만에 있다. 왜 교회가 교회답게 못 되고 교인이 교인답게 못 되는가? 성령충만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이 문제다. 성령충만은 엄숙하고 위대한 것이다. 숯불처럼 작열하다가 금방 연기를 내고 꺼져버리는 유사 성령충만은 죄에 대한 저항력이나 삶의 극복 능력이 거의 없다.
감각적으로 성령충만을 추구하지 말라. 성령충만을 추구하는 삶과 성령충만에 이르는 삶은 상당히 먼 거리의 차이가 있다. 왜 성령충만한 모습을 하고도 구원받지 못하는 무서운 현실이 생길 수 있는가? 유사 성령충만은 참된 성령충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에서 목격하는 아이러니는 “당신은 성령충만을 받았습니까?”라고 질문하며 성령충만을 줄 수 있는 것처럼 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진실한 생명 샘이 솟아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능력을 받겠다고 사람을 찾아다니지 말라. 내 안에 샘이 없으면 남이 파 놓은 야곱의 우물이 내게 큰 소용이 없다. 구원받은 성도 안에 계신 성령님이 다른 어떤 사람보다 더욱 큰 능력의 원천이다. 성령충만하게 되면 누구보다 능력 있게 살 수 있고 남의 나쁜 영향을 받기보다 남에게 좋은 영향을 주며 살 수 있다. 내 안에 성령의 불이 있어야 온갖 더러운 욕심을 태우고 남에게도 선한 불을 붙일 수 있다. 반면에 내 안의 성령의 존재를 잊고 눈에 보이는 현상에 이끌리면 거짓 선지자의 미혹에 넘어가기 쉽다.
하나님은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라 저주받지 않도록 스스로를 깨끗하게 하며 거룩하게 살라고 하셨다(레 20:6-7절). 복 받겠다고 거짓 종교인을 추종하면 저주받지만 복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을 깨끗하게 준비시키면 오히려 복을 얻는다. 외적인 야곱의 샘물을 추구하는 외식적인 종교인처럼 살면 이유 없는 불행과 낙심이 수시로 찾아오지만 내 안에서 솟아나는 샘으로 충일해지면 이유 없는 행복과 기쁨이 늘 풍성해진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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