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을 잘 깨뜨리라





본문말씀 : 사도행전 10장 9-16절
9.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10.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1.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13.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14.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15.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6.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 편견을 잘 깨뜨리라 >

 왜 편견이 심각한 죄인가?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방을 이유 없이 미워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편견에 사로잡혀서 미워하는 사람은 뚜렷한 이유가 없다. 유대인들은 특별한 이유 없이 이방인들을 무조건 미워하고 경멸했다. 이방인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 부정하다고 했다. 무서운 편견이다. 본문의 베드로를 보라. 성령 충만했던 대사도 베드로에게도 그런 편견이 있었다. 그처럼 편견에 의한 잘못된 전통은 영혼을 망가뜨린다.

 유대인의 율법 해석서인 미쉬나는 이방 여인의 출산을 돕지 말라고 하고 유대 여인의 출산을 이방인이 돕지 못하게 했다. 짐승에게 아기를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크게 잘못된 가르침이다. 그런 잘못된 가르침을 정당화하니 편견이 무서운 것이다. 이방인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무조건 무시했던 교만 때문에 결국 이스라엘 자신이 하나님 앞에 버림받았다. 편견의 결말은 자신의 파멸뿐이다.

 고넬료가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려고 사람들을 보낸 다음 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갔는데 그 시각은 오늘날의 정오인 제6시였다(9절). 베드로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다(10-11절). 그리고 보자기 같은 그릇 안에는 유대인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었다(12절).

 그때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베드로가 대답했다. “주여, 그럴 수 없습니다. 속되고 깨끗하지 않은 것을 제가 결코 먹지 않았습니다.” 그때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사람의 기준으로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구분하는 편견적인 사고를 가지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보자기 같은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갔다. 그런 일이 세 번 있었다는 것은 편견을 깨뜨리기가 어렵다는 사실과 하나님은 편견을 깨뜨리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 하나님의 시야를 가지라 >

 하늘에서 내려온 드리워진 보자기 그릇에 부정한 생물들이 있었고 그 그릇이 다시 하늘로 올려져 갔다는 사실은 부정한 것에 대한 인간적인 관점을 깨뜨리라는 암시다. 사람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라. 사람을 볼 때 사회나 남들이 그를 어떻게 보느냐로 보지 말고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보느냐로 보라. 과거에 형편없는 존재였어도 지금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서 있느냐가 중요하다. 또한 그의 현재 모습이 부족해도 하나님이 그를 얼마나 귀하게 보시는가 하는 시야로 그를 보라.

 예수님은 바리새인은 정결한 존재이고 세리는 부정한 존재라고 여기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여기셨다. 누가복음 18장 9-14절에 나오는 <성전에서 기도하는 바리새인과 세리> 비유에서 예수님은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세리)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은 예수님의 마음이 세리 편에 있다는 암시다. 예수님은 편견의 가해자인 바리새인 편을 들지 않고 편견의 피해자인 세리 편을 들으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따르려면 편견의 가해자 편이 아닌 편견의 피해자 편에 서라.

 예수님은 ‘저 편견의 가해자’가 아닌 ‘이 편견의 피해자’가 의롭다고 하심을 받는다고 하셨고 자기를 높이는 편견의 가해자는 낮아지지만 자기를 낮추는 편견의 피해자는 높아진다고 말씀하셨다(눅 18:14). 현대 사회는 편견의 피해자를 배려하는 감수성이 강조되기에 예수님의 말씀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만 힘이 강조되었던 고대 문화 및 배타적인 유대 문화에서는 상상을 초월한 가르침이었다. 편견은 사람을 존엄적인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지 않는 것으로 하나님의 관점으로는 치명적인 죄다.

 불의한 사회적 시선을 들이밀어 남을 깎아내리고 나를 높이려는 편견 본능을 잘 극복하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고 했다(롬 15:7). 하나님은 나를 받으실 때 내가 깨끗하고 신실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몰라서 죄 가운데 있고 생각과 행동이 비뚤어졌어도 나를 받으셨다. 하나님의 시각과 마음을 품고 편견을 잘 버리면 하나님의 은혜가 속히 뒤따를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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