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의 심판을 믿고 기도하라

 

[ 문정 작가 : 연못 ]



본문말씀 : 시편 69편 19-28절


19 주께서 나의 비방과 수치와 능욕을 아시나이다 나의 대적자들이 다 주님 앞에 있나이다 20 비방이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불쌍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21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22 그들의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그들의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23 그들의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의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24 주의 분노를 그들의 위에 부으시며 주의 맹렬하신 노가 그들에게 미치게 하소서 25 그들의 거처가 황폐하게 하시며 그들의 장막에 사는 자가 없게 하소서 26 무릇 그들이 주께서 치신 자를 핍박하며 주께서 상하게 하신 자의 슬픔을 말하였사오니 27 그들의 죄악에 죄악을 더하사 주의 공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소서 28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



< 하나님이 알아주심을 믿으라 >

 감동적인 글을 빚어내려면 사랑 얘기 중에 고난 얘기도 있어야 한다. 사랑만 있다면 실감난 사랑을 연출할 수 없다. 고난 중에 사랑이 등장해야 그 사랑이 빛난다. 위대한 사랑은 고난 속에서 꽃핀다. 사랑을 추구할 때 고난이 수반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고난의 파편이 참된 사랑을 낳는다. 고난을 알 때 사랑도 알게 되고 고난을 잘 활용하고 극복하면 믿음 수준과 축복 수준이 더 높아진다.

 하나님을 잘 믿어도 일이 뜻대로 안 되고 극심한 고난이 찾아올 수 있다. 그때 낙심하지 말라. 위대한 성도는 남보다 심한 고난과 시험 과정을 잘 이겨낸 사람이다. 인생에서 시험과 고난은 필요하다. 시험과 고난이 없이 큰 인물이 되기 힘들다. 시험과 고난의 수렁에 빠졌을 때 낙심하지 말고 침착하게 하나님을 붙잡고 기도하며 다시 일어서라. 믿음의 능력은 고난 중에 더 나타나야 한다.

 고난과 절망은 다르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지만 고난은 진리에 이르는 약이다. 고난을 통과해야 작품 인생이 만들어진다. 실연을 겪으면 사랑의 고귀함을 깨닫고 가난을 겪으면 자선의 고귀함을 깨닫고 실직을 겪으면 일의 소중함을 깨닫고 낙방을 겪으면 노력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또한 배신을 겪으면 충성의 소중함을 깨닫고 실패를 겪으면 겸손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고난의 유익에 대해 알되 특별히 잘 알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상처를 알아주신다는 사실이다. 대적들이 비웃고 모욕해도 다윗이 믿음과 침착함을 잃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고난과 상처를 아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19절). 하나님이 나의 고난을 지켜보고 알아주신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위로가 되는가? 모든 상황과 상처를 아시는 하나님이 가장 적절한 때 일어서서 공의의 손길을 통해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실 것이다.

< 공의의 심판을 믿고 기도하라 >

 하나님이 다 아실지라도 다윗은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께 아뢰었다. 당시 대적들의 비방으로 마음에 큰 상처와 근심이 있었지만 다윗에게는 자신을 긍휼히 여겨줄 위로자가 없었다(20절). 충성스런 신하도 꽤 있었지만 깊은 상처와 속마음까지 헤아려 줄 친구는 없었다. 사람은 깊은 이해심을 가지고 끝까지 함께해 주기 힘들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이 십자가를 질 때 다 흩어졌다. 그래서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다윗은 자신의 깊은 상처를 고백하면서 악인들이 누리는 풍요가 오히려 그들을 망치는 올무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22절). 악인들은 풍요를 자랑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멸시하면서 자신들이 징벌을 받지도 않고 편안하게 지낸다고 여기지만 사실 악인의 평안은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위태한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철저하게 이뤄져 원수들의 거처와 장막이 황폐하게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23-25절).

 더 나아가 다윗은 자신을 핍박하고 비방하고 조롱하는 원수들이 죄악의 수렁에 빠져 구원의 공동체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달라고 기도했고(26-27절), 원수들을 생명책에서 지워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했다(28절). 아무리 원수라도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워달라고 하는 것은 사랑이 없는 행위 같지만 악인의 심판은 궁극적으로 악인을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 악인도 진심으로 회개하면 구원받기 때문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의 뜻은 원수도 사랑하는 것이고 예수님도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왜 다윗은 대적의 진멸을 위해 기도했는가? 대적에 대한 미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가 이뤄지기를 원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사랑은 공의와 함께 시행되어야 한다. 심은 대로 반드시 거둔다. 그 진리를 믿고 기도함으로 다윗처럼 고난과 상처를 극복하고 인물의 길을 준비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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