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려고 소유하라
본문말씀 : 시편 65편 1-7절
1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 2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3 죄악이 나를 이겼사오니 우리의 허물을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4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5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자가 의지할 주께서 의를 따라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 6 주는 주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 권능으로 띠를 띠시며 7 바다의 설렘과 물결의 흔들림과 만민의 소요까지 진정하시나이다
< 나누려고 소유하라 >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에서 가난이 한이 된 가장 테비에가 노래했다. “내가 부자라면 온종일 마시고 떠들겠네. 내가 부자라면 힘든 일도 안 하고 얼마나 좋을까? 내가 부자라면 마을 한가운데에 방 12개의 큰 집을 짓고 사람들에게 구경시켜야지. 내가 부자라면 아내 골디를 이중 턱을 가진 마님으로 만들어 공작처럼 뽐내게 해 주어야지. 아! 얼마나 행복할까?”
옛날에는 이중 턱과 배불뚝이를 부와 행복의 상징으로 봤지만 지금은 탐욕과 자기관리 실패의 표시로도 본다. 평소에 잘 먹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잘 먹는 것이 소원이지만 매일 잘 먹는 사람에게는 잘 먹는 것이 결코 행복의 조건이 아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이 점점 수위가 높아지면 마음의 공허도 따라서 커진다.
옛날에 비행기를 타는 것이 극히 제한된 특권이었을 때 어린이들은 비행기를 보면서 꿈꿨다. “저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한번 타보고 싶다. 언제 비행기를 마음껏 탈 날이 올까?” 그러다가 커서 그렇게 타보고 싶은 비행기를 많이 타면 이런 말이 나온다. “이제 비행기 타는 것이 지겹다.” 하나님의 소유권에 대한 인식도 없이 풍요에 젖어 살면 언젠가 풍요가 지겹게 느껴지면서 공허가 찾아온다.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다.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만족을 모른다. 소유의 가치관으로 살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다. 나누려고 소유하라. 물론 욕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의욕도 욕구다. 살 의욕이 없는 것처럼 불행은 없다. 성욕, 물욕, 명예욕 등의 욕구가 있기에 일에 대한 책임감과 삶에 대한 추진력도 생긴다. 문제는 욕구를 잘못 관리해 지나친 욕심을 가지다가 죄를 짓는 것이다.
<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다 >
어떻게 욕구를 욕심으로 변질시키지 않고 창조적으로 승화시키는가? 그것을 위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의식이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란 의식이다. 만물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 창조되고 통제된다. 시편 24편 1절에도 이런 말씀이 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세상은 마귀의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세상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을 그토록 사랑하신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때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말이 잘 실감나지 않는다. 인간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보면 마치 세상은 사탄이 지배하는 곳 같다. 그러나 여행을 가서 장엄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 감탄이 나오면서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한다는 말씀이 실감나고 세상을 사랑으로 돌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낀다.
찬송가 <참 아름다워라>에 이런 가사가 있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세상은 하나님의 세계다. 성도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땅과 환경을 잘 관리하고 아름답게 만들 책임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연도 사랑한다. 자연과 환경 보호에 깊은 관심을 두라.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 작품이다.
이사야 6장 3절을 보면 이사야가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천사들의 이런 소리를 들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이 영안이 열린 사람이다. 그런 영안을 가지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자연을 귀하게 여기라. 사람을 귀하게 여길 때 참된 사랑을 얻고 자연을 귀하게 여길 때 참된 자유를 얻는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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