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인정을 받으라





본문말씀 : 사도행전 1장 12-14절
12.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13.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예수님이 승천하신 곳은 감람원이라 하는 산, 즉 감람산이다. 감람산은 예루살렘 동남쪽에 위치한 감람나무가 많이 있는 산이다. 그곳의 감람나무 숲 기슭에 겟세마네 동산이 있다. 감람산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모리아 산이고 솔로몬 성전이 있었던 이스라엘의 성지로서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었다. 본문 12절에서 ‘길’은 ‘거리’란 뜻이다. 즉 감람산은 예루살렘에서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거리’에 있었다.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거리’는 어느 정도인가? 안식일에는 일하지 말아야 하지만 걷지 않을 수는 없기에 유대 율법학자들은 안식일에 얼마나 걷는 것이 일하지 않는 것인지를 연구하고 마침내 예루살렘 성전 외곽으로 한 바퀴 도는 거리 정도라면 죄가 되지 않고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거리로 여겼다. 그 거리가 약 이천 규빗이다. 한 규빗은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까지 약 45센티미터로서 이천 규빗은 약 900미터 정도다. 결국 예루살렘 성에서 감람산까지의 거리는 약 1킬로미터 정도의 거리였다.

 그때 제자들은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저희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갔다(13절). 그 다락방에는 가룟 유다 외에 예수님의 11제자가 다 모였고 예수님의 신성을 믿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의 아우들도 있었다. 예수님의 아우들은 몇 명이고 어떻게 다락방에 있게 되었는가?

 마가복음 6장 3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님께는 4명의 남자동생(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과 최소한 2명의 여동생이 있었다. 즉 동생이 최소한 6명 있었다. 처음에 동생들은 예수님을 배타했지만 십자가와 부활의 전 과정을 보면서 예수님의 신성을 믿었다. 바로 아랫동생인 야고보는 나중에 예루살렘 교회 권위 있는 초대 감독이 되었고 성경 야고보서를 남겼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물론 동생들도 예수님을 믿은 사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어머니는 모성애로 아들에게 끝없는 신뢰를 보낼 수 있지만 동생들이 형님을 신앙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분명한 확신이 없으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장 진실한 믿음은 가족으로부터 인정받는 믿음이다. 예수님이 가족의 신앙 대상이 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심도 짐작하게 하지만 예수님의 가족을 향한 삶과 사랑이 얼마나 모범적이고 컸는지도 짐작하게 한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나시고 얼마 후 헤롯 왕의 손길을 피해 애굽으로 피난 가셨다. 이방인 피난민으로서 애굽에서의 삶은 아픔이 많았을 것이다. 미화하기에 좋은 소재지만 정경에서는 애굽에서의 삶에 대해 침묵한다. 후세인들이 여러 기적으로 어린 시절까지 미화하며 미신적이고 감정적인 믿음으로 이끌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즉 미화는 미신을 낳음을 성령충만한 성경 기록자들은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의 애굽 시절 얘기는 생략된 채 헤롯이 죽은 후 주의 사자의 현몽을 따라 요셉 가족은 이스라엘로 돌아와 갈릴리 나사렛에서 살았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으로 불렸다. ‘나사렛 사람’이란 구약시대의 성별된 존재인 ‘나실인’과 같은 어원의 단어다.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나사렛 사람이라고 부른 것은 예수님을 보면서 나실인처럼 느꼈기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 그만큼 예수님의 삶은 남들이 보기에 존경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특히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까지 예수님을 신앙 대상으로 삼은 것은 예수님의 지상의 삶이 얼마나 존경스러웠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위대함은 평범함 속에 감춰져있을 때가 많다.  평범한 가족의 눈에 보였던 예수님의 모습이 진짜 메시야의 모습일 수 있다. 예수님은 평범하고 인간적인 모습 속에서 위대함을 드러내셨다. 결국 가족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이 가장 나의 실상에 근접한 모습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으로부터 인정받는 삶이나 가족의 존중을 받는 믿음처럼 소중한 것은 없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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