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롭게 판단하라





본문말씀 : 아모스 5장 11-13절
11.너희가 힘없는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두었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12.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13.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 힘없는 자를 밟지 말라 >

 당시 관원들은 힘없는 자를 밟고 부당하게 세금을 거둬서 다듬은 돌로 좋은 집을 건축했지만 정작 그 집에 거주하지 못하고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지만 포도주를 마시지 못한다(11절). 착취해 얻은 돈으로 잠시 부귀영화를 누려도 결국 불행해지고 비참해진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은혜 받는 위치에 올랐으면 그 은혜를 힘없는 자에게 힘써 흘려보내라. 힘없는 자를 밟지 않고 살 길을 열어줄 때 복되게 사는 길이 열린다.

 왜 삭개오가 복된 존재가 되었는가? 예수님을 만난 후 진실하게 살려고 했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간 것을 보고 수군거렸다. 삭개오는 세리로서 따돌림의 대상이었지만 내면은 정직했다. 세리라고 따돌리는 사람이 그 따돌리는 태도로 인해 삭개오보다 못한 존재로 예수님 앞에 평가되었다. 남을 따돌려 짓밟으려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니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집에 유하겠다고 하셨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자신에 대해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느끼고 감동 가운데 말했다. “주님! 제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습니다.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4배로 갚겠습니다.” 그런 결단과 고백은 쉽지 않다. 믿음에는 하나님의 축복도 준비되어 있지만 내 측면에서의 결단과 변화도 요구된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삭개오에게 ‘오늘’이란 엄청난 희망의 말이었다. 이전의 허물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었으면 더 이상 착취의 자리나 남을 짓밟는 자리에 머물지 말라. 조금이라도 더 드리고 나누고 베풀려고 하면 과거가 어떠해도 하나님은 오늘 만나주신다. 구원받는 것도 하나님께 기쁨이 되지만 구원받고 착취의 자리에서 섬김의 자리로 옮아가면 하나님께 더욱 영광이 된다.

< 정의롭게 판단하라 >

 하나님이 큰 허물과 무거운 죄로 여기시는 것은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재판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것이다(12절). 정의롭게 재판하라는 엄정한 경고다. “정의롭게 재판하라.”는 말을 일반인에게 적용하면 “정의롭게 판단하라.”는 말이다. 그것은 “편견을 주의하라.”는 말도 된다. 편견이 심한 것은 정직하거나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적은 사례로 전체 사람을 예단하지 말라. 잘 알기도 전에 떠도는 얘기로 내 시각이 고착되지 않게 하라. 특히 자녀에게 편견을 심는 것은 자녀의 행복에 덫을 치는 것과 같다.

 테러가 잦은 나라에 살던 7살 아이에게 기자가 물었다. “왜 그 아이들을 그렇게 미워하고 욕하지?” 아이가 말했다. “그들은 비열하고 나쁜 아이들이에요.” 기자가 물었다. “그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어?” 그 아이가 “아니요.”라고 대답하자 기자가 또 물었다. “그들과 대화하거나 함께 논 적이 있어?” 아이가 또 아니라고 대답하자 기자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러면 그 아이들이 그렇게 나쁜 아이들인 것을 어떻게 알았지?” 그가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엄마 아빠가 그렇게 말했어요.”

 부모가 자녀 내면의 무서운 증오와 미움의 사슬을 힘써 끊어줄 때 자녀는 편견을 극복하고 복된 미래가 펼쳐진다. 내가 들은 얘기 안에서만 내 생각과 시각을 한정시키지 말라. “일본인은 어떻다. 중국인은 어떻다.”는 말을 참고는 하되 그 말에 매몰되지는 말라. 피상적으로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그의 내면을 보고 그의 재능, 재주, 인격, 특성, 성품 등으로 그를 판단하라.

 내가 현재 입은 옷이 나의 존재를 규정하지 않는다. 내가 어디에 살고 있느냐는 것도 나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참된 나는 내 안에 있다. 편견에 사로잡히지 말라. 편견(prejudice)이란 ‘미리 판단한다(prejudge)’는 말에서 나왔다. 사람을 보기도 전에 판단해버리지 말라.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단번에 다 알 수 없다. 누군가를 잘 알려면 그와 함께 있는 적절한 시간을 가지라. 피상적으로 남을 판단하는 불의한 재판관이 되지 않는 것이 복되게 사는 길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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