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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요한 자에게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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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출처: 나무를 그리는 공방  ] 본문말씀 : 사도행전 20장 32-35절 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33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34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1. 은혜의 말씀  은혜의 말씀께 부탁한다는 32절의 표현을 보면 말씀이 부모나 후견인과 같다는 암시다. 말씀만큼 위대한 보호자는 없다. 자녀를 잘 키우고 싶으면 말씀을 남겨 주라. 말씀을 남겨 주려고 애쓰는 부모가 위대한 자녀를 남긴다. 자녀 때문에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은혜의 말씀께 자녀를 부탁하라. 또한 자녀와 자신에게 말씀을 먹여주는 존재를 어느 누구보다 귀히 여기라. 말씀의 보호를 받는 영혼이 변화의 주체가 된다.  성경을 가까이하고 목사로부터 선포되는 말씀을 귀담아 듣고 진실한 신앙 선배가 전하는 말씀에도 귀를 기울이면 그 말씀들이 영혼을 지켜준다. 말로 남을 비판하면서 나의 가치를 높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말씀을 거울로 삼아 나의 실상에 직면하고 나를 아프게 돌아보면서 나의 가치를 높이려고 하라. 말씀에 열린 귀를 가지라. 사람이나 배경이나 물질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할 때 살 길이 열리고 자기 변화의 길도 생기면서 점차 환경과 상황이 변화되는 역사도 나타난다. 2. 사명적인 삶  바울은 사람이나 재물을 의지하지 않고 사명을 따라 살았다(33-35절). 사명을 깨닫고 사명을 따라 달려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물질이 없어도 괜찮고 성공을 못해도 괜찮지만 사명의식은 잃지 말라. 사명은 용기를 주고 실패나 역경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기에 사람은 사명을 가진

눈물의 기도를 앞세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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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사도행전 20장 31절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 하나님께 취직하라 >  예전에 빈민 운동가로 활동했던 한 선생에게 한 가지 이상한 꿈이 있었다. 가난하게 살고 싶다는 꿈이었다. 그는 명문 대학을 나와 가난하게 살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가난하게 사는 능력을 구하며 물질이 아닌 다른 거룩한 가치에 삶의 기초를 놓았다. 어느 날 그의 꿈에 위기가 닥쳤다. 아내의 임신 때문이었다. 자기는 굶을 수 있었지만 배가 불러오는 아내의 굶주림은 차마 볼 수 없었다. 게다가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자 가난이 무서워졌다.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아 이력서를 냈지만 그의 빈민 운동 경력이 문제가 되었다. 누군가 빈민 운동을 포기하면 일자리를 주겠다고 제의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일자리 찾는 노력을 포기하고 자신의 전 재산 3천 원으로 구입한 성경에 ‘축 하나님께 취직 기념, 1976년 9월 1일’이라고 썼다. 그 후 신기하게도 한 번도 의식주 걱정이 없었다. 하나님께 취직한 사람을 하나님이 신기하게 먹이고 입히셨다.  성도는 영적인 차원의 참된 빈민 운동에 나서야 한다. 가난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라 가난한 자의 어려움에 힘써 동참하라는 말이다. 레위기 25장 35-38절은 가난한 사람에게는 돈을 꾸어 주어도 이자를 받지 말라고 했다. 잠언 14장 31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누가 참된 부자인가? 나누려는 마음이 있으면 물질이 없어도 부자다. 누가 가난한 자인가? 나누려는 마음이 없으면 물질이 있어도 가난한 자다. 퍼내지 않는 샘물은 썩듯이 나눔이 없으면 마음도 가난한 것이지만 얼마 후에는 진짜 가난해진다. 반면에 퍼내는 샘물은 신선한 물이 자꾸 흘러오듯이 나눔이 있으면 마음도 이미 부자지만 점차 진

참된 전도자의 3대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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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누가복음 9장 1-6절 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3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4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 5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6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1. 능력과 권위를 가지라  본문 1절을 보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헬라어로 능력은 두나미스라고 하고 권위는 엑소시아라고 한다. 두나미스는 이뤄내는 힘을 뜻하고 엑소시아는 쫓아내는 힘을 뜻한다. 성도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능력과 상황을 극복해내는 권위가 겸비된 존재다. 왜 예수님이 그런 능력과 권위를 주셨는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기 위해서였다(2절).  앓는 자를 고친다는 개념에는 육신의 병은 물론 마음의 병과 정신의 병과 인격의 병과 관계의 병을 고치는 것도 포함된다. 사람들은 흔히 전도자가 병 고친다는 것을 사람이 신비한 기운을 전달해서 기적적으로 직접 고치는 것을 의미하는 줄 안다. 그런 기적도 간혹 있지만 자기 맘대로 병을 고칠 수 있는 특별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  능력과 권위의 원천은 복음이다. 결국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내보내신다는 말씀이다. 복음을 통해 성령님이 역사할 때 전인적인 치유가 나타나는 것이지 사람이 매번 자기 뜻대로 육신적인 치유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기독교의 치유자는 특별한 치유 능력을 하늘로부터 받아 전해주는 무속적인 영매가 아니다. 그 사실을 오해하고 자칭 치유 능력자의 치유

Through the Waters 물 가운데로 지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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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3:1-7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5.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6.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When you pass through the waters, I will be with you.  Isaiah 43:2 The movie The Free State of Jones tells the US Civil War story of Newton Knight and some Confederate deserters and slaves who aided the Union Army and then resisted slaveholders after the war. Many herald Knight as the hero, but two slaves first saved his life after his desertion. They carried him deep into a secluded swampland and ten

성공하는 사람의 4대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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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사도행전 20장 1-6절 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2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3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4 1)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5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1. 때를 아는 지혜  에베소에서 벌어진 은장색들의 난동이 서기장의 침착한 대처로 진정되자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떠났다(1절). 두려워서 에베소를 떠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복음을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었지만 제자들의 안위를 염려했고 떠날 때가 되었다고 여겼기에 떠났다. 그는 때를 알고 때에 순응하는 지혜가 있었다.  올 때와 갈 때를 잘 분별해야 기회가 올 때 잡을 수 있고 갈 때도 당당하게 갈 수 있다. 가을에 지는 낙엽은 갈 때를 아는 모습이다. 겨울을 대비해 스스로 활동을 최소화해야 활기찬 봄을 맞이한다. 인생의 겨울을 잘 준비하라. 거추장스러운 세속의 옷을 낙엽처럼 벗겨내고 고요히 나를 돌아보고 말을 줄이며 인간관계의 얽힌 매듭을 풀라. 갈 데를 알고 갈 때를 준비하면 삶이 단순해지고 힘이 모이면서 능력 있는 삶이 펼쳐진다. 욕심의 옷을 벗으면 능력이 입혀진다. 올 때와 갈 때를 잘 알아야 진리를 따라 당당하게 살 수 있다. 2. 큰마음과 큰 손  마게도냐로 떠난 바울은 거기서 육로로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등에 있는 그동안 개척했던 교회들을 순방하면서 신앙을 권하고 어려움에 빠진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도 권하면서

복된 리더의 5대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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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사도행전 19장 21-22절 21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1. 비전  사도 바울은 3차 선교여행 때 에베소에서 존경 받으며 안정적으로 사역할 수 있었지만 로마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헌금을 걷어 당시 기근으로 고생하던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한 후 로마도 보겠다는 비전을 가졌다(21절). 그처럼 “로마도 보겠다.”라는 비전을 가지라. 비전은 사람이 가져야 할 가장 위대한 자산 중 하나다. 비전은 미래의 축복을 선도한다. 가난한 삶은 ‘돈이 없는 삶’이 아니고 ‘비전이 없는 삶’이고 부유한 삶은 ‘돈이 있는 삶’이 아니고 ‘비전이 있는 삶’이다. 비전이 없으면 비천해지고 비전이 있으면 비범해진다. 누구에게 말해도 떳떳하고 거룩한 비전을 가지고 개발하라. 2. 개척정신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 소아시아 지역에 에베소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하나씩 생겨났다. 그런 상황에서 바울은 남의 터 위에 건축하기를 원치 않았기에 복음 전파가 상당히 이뤄진 소아시아 지역을 벗어나 복음 전파가 이뤄지지 않은 당시 세계의 수도인 로마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마음속에 늘 “이제 복음을 들고 로마로 가리라.”라는 꿈을 품었다. 바울은 새로운 개척지를 보면 흥분하는 개척자였다. 그런 개척정신을 가질 때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된다.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분량이 조금 적다고 불평하지 말라. 하나님은 스스로 충분히 개척해서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기에 분량을 적게 주신 것이다. 3. 전략  왜 바울은 로마도 보아야 한다고 했는가? 당시 로마를 믿음으로 정복해야 세계를 믿음으로 정복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탁월한 전략가였다. 큰 비전이 있어도 전략이 없으면 그 비전을 효과적으로 이룰 수 없다.

말의 남용을 주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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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사도행전 19장 13-16절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4)시험삼아 3)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 주의 이름을 도용하지 말라 >  성령의 기적적인 능력은 점술사나 마술사나 주술사처럼 남에게 신비한 능력을 과시하려고 추구할 때 주어지지 않는다. 대신에 말씀 중심적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자신의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축복을 이웃과 나누려고 할 때 주어진다. 에베소에서 나타났던 사도 바울의 신비한 능력은 두란노 서원에서 매일 말씀을 강론했던 말씀 중심적인 삶의 열매였다.  바울을 통해 희한한 능력이 많이 나타나자 에베소에서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 삼아 악귀 들린 자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했다.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의 이름을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니 마귀야 물러가라(13절).” 그들은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는 것을 일종의 주문처럼 여기고 그 주문대로 하면 능력이 나타날 줄 알았다. 어리석은 모습이다. 능력의 통로는 ‘정확한 주문’이 아닌 ‘말씀 중심적인 믿음’이다.  예수님의 이름을 주문처럼 사용하던 마술사들 중에 유대 제사장인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있었다.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사칭하며 악귀 들린 자들에게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악귀야! 당장 떠나가라.”라고 했다. 그때 악귀 들린 사람이 스게와의 아들들을 공격하자 저희들이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쳤다(16절). 참된 믿음도 없이 능력이 있는 것처럼 해서 사람을 미혹해 돈과 영혼을 탈취하려는 세력은 잠깐 악한 목적을 이뤄도 언젠가 반드시 파멸된다

하나님의 뜻에 길들여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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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사도행전 19장 8-12절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 성령충만의 모습은 다양하다 >  사도 바울은 3차 선교여행 중 에베소에서 상당 기간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다. 처음 3개월 동안은 회당에서 말씀을 전했지만 비방하는 사람들 때문에 결국 믿는 제자들과 회당을 떠나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2년 동안 강론하자 에베소의 많은 유대인과 헬라인이 말씀을 들었다(8-10절). 그때 배웠던 제자들이 각처로 퍼지면서 주변에 생겨난 교회들이 골로새 교회, 히에라볼리 교회(골 4:13), 서머나 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교회, 사데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 등이다.  바울은 두란노 서원을 통해 말씀 중심적인 사역을 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셨다(11절). 심지어는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다. 바울에게 신비한 능력이 있거나 바울이 쓰던 손수건이나 앞치마에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울이나 바울의 물건을 매개로 능력을 나타내신 것이었다.  바울은 그런 신비한 능력을 억지로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다. 왜 하나님은 그런 기적이 있게 하셨는가? 당시 헬라 문화의 중심지로서 우상숭배가 극심했던 에베소 사람들을 복음으로 이끌려면 기적적인 능력이 특별히 필요했기에 그런 능력을 허락하셨을 것이다. 지금도 그런 기적은 일어날 수 있다. 다만 꼭

인물에게 필요한 4대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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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사도행전 21장 1-21절 1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2 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 성령 충만한 삶의 특징 >  성경은 성령 충만의 묘사로서 새 술에 취했다는 표현을 쓴다. 성령의 새 술에 취하면 마음의 천국이 되고 힘든 현실에서도 기뻐하며 감사한다. 보통 사람은 자기 이익을 따라 살면서 육신적인 즐거움을 위해 돈을 쓰지만 성령의 새 술에 취하면 계산적인 삶이 없어지면서 선교와 구제에 자기 것을 바친다. 어떤 성도는 자신도 어려운데 남을 돕는다. 그처럼 계산을 초월한 헌신에 사람도 감동하고 하나님도 감동하신다.  문제는 성령 충만을 위장하거나 오용하는 것이다. 술에 취하면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아무데나 실례하고 술주정으로 남에게 피해를 준다. 그처럼 성령 충만하다면서 덕을 세우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성령의 감동을 추구하되 성령을 빙자해 주정하지는 말라. ‘성령 충만하게 사는 것’과 ‘성령을 빙자해 주정하는 것’은 어디서 결정적인 차이가 나는가? 말씀을 바르게 알고 말씀대로 사느냐에 따라 판가름 난다.  사도 바울은 성령 충만하다고 무조건 어떤 일을 밀어붙이기보다 전진할 때와 물러날 때를 분별해서 지혜롭게 행동했다. 그는 피해야 할 때는 피했고 맞서야 할 때는 맞섰고 말해야 할 때는 담대히 말했고 말을 절제해야 할 때는 절제했다. 초신자의 뜨거운 믿음도 중요하지만 오래된 신자의 경험과 지식도 중요하다.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전진할 때와 기다릴 때와 후퇴할 때를 지혜롭게 분별해 행동하면 성공과 행복 가능성은 커진다. < 인물에게 필요한 4대 덕목 >  사도행전 22장

영적인 소화력을 갖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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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사도행전 19장 1-7절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 성령충만을 받았는가? >  사도 바울이 3차 선교여행 중 에베소에 들렸을 때 제자들을 만나 가장 먼저 한 말이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는 말이었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당시 유명한 연설가였던 아볼로가 목회했어도 12명밖에 안 된 것이다. 물론 숫자로 사역의 성패를 판단할 수는 없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서 봐야 그 성패가 온전히 판가름 난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그때부터 대개 은혜와 축복의 문이 활짝 열린다.  요한 웨슬레는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철학 및 성경 원어 강의를 했다. 그 후 선교사의 꿈을 품고 신대륙의 조지아 주에서 3년간 죽도록 목회했지만 사실상 실패했다.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지만 삶의 의욕이 저하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1738년 5월 24일 밤 8시 24분에 모라비안 교도의 작은 모임에 참석해 로마서 서문을 듣다가 성령으로 충만해졌다. 그때부터 전과 똑같은 내용의 설교를 해도 가는 곳마다 큰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다. 마침내 그로 인해 세계 최대 교단 중 하나인 감리교단이 생겼다.  하나님의 일을 잘하려면 성령충만을 사모하라. 성령은 원자의 핵과 같다. 핵은 작은 입자지만 그 안에 무서운 폭발력이 내재되어 있다. 연약한 존재라도 성령

오직 말씀으로 승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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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사도행전 18장 24-28절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1)세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 인생 승부의 핵심 요소 >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바울의 좋은 동역자 겸 후원자가 될 수 있었던 또 한 가지 이유는 바울로부터 말씀을 잘 배워 복음의 핵심 내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열심’도 있었지만 ‘말씀 지식’에도 정통했던 균형 잡힌 신앙을 가졌기에 아볼로라는 인물의 길을 닦을 수 있었다. 당시 브리스길라 부부는 바울을 따라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로 왔지만 고린도 교회에 대한 생각이 가득했다. 그때 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란 유대인을 만났다.  아볼로는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했다(24절). 그리고 일찍 누군가로부터 복음의 진리를 배웠지만 핵심 진리는 잘 알지 못하고 그저 요한의 세례 정도만 알고 있었다(25절). 어느 날 브리스길라 부부가 아볼로의 설교를 듣고 감탄했다. 그런데 그가 복음의 진리를 잘 모르는 것을 보고 바울로부터 배운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주었다. 그 상황을 기록할 때 브리스길라가 아굴라보다 먼저 언급된 것을 보면 그에게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는 일에 브리스길라가 더 적극적으로 나섰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아볼로가 고린도가 속한 아가야 지방으로 가려고 하자 고린도를 떠나 아쉬움을 느끼던 브리스길라 부부는 고린도의 제자들에게 편지

사명 성취에 필요한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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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사도행전 18장 18-23절 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21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1. 단호한 결단  바울은 한 동안 고린도에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 때 브리스길라 부부도 함께 했는데 그때 일찍이 했던 서원을 따라 고린도 지역의 외항인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다(18절). 그때 머리를 깎은 것은 바울이 고린도 선교를 하면서 일정 기간 동안 머리를 깎지 않겠다는 구약의 나실인 서원을 했다는 암시다. 그 서원에는 고린도 선교를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바울의 단호한 의지가 담겨 있다.  고린도 선교 전에 아덴 선교를 할 때 바울은 아덴의 철학적인 분위기를 보고 철학적으로 복음을 전했지만 그곳 선교는 실패였다. 결국 아덴을 떠나 고린도로 향할 때 바울은 인간적인 전도 방법을 회개하고 “이제는 십자가만 전하자.”라고 다짐하고 나실인 서원을 했다. 결국 고린도 지역에 상당히 큰 교회를 세울 수 있었고 고린도를 떠나면서 겐그레아에서 서원의 성취에 대해 감사하며 머리를 깎았다. 이 장면을 보면 한번 뜻을 세우면 단호하게 밀어붙이는 바울의 삶이 잘 나타난다.  사명을 이루려면 결단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착해도 결단력이 없으면 변화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랬다저랬다 하면 큰 인물이 되지 못한다. 자녀를 키울 때 부모들이 우유부단한 모습을 하면 자녀의 떼쓰는 버릇만 커진다. 우유부단하면 큰일을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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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누가복음 24장 1-6절 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 자기중심주의를 버리라 >  일전에 한 집사 결혼 주례를 했는데 주례 후 몇몇 하객이 저에게 와서 말했다. “목사님! 결혼 설교가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다른 하객들도 목사님이 설교를 참 잘하신데요.” 속으로 잠깐 우쭐해졌다. “그럼 그렇지. 내 설교를 목회자들이 얼마나 많이 찾는데.”  도대체 어느 설교 내용이 그렇게 감동적이었는지 알고 싶어 들뜬 음성으로 물었다. “집사님! 어떤 말씀이 그렇게 감동적이었나요?” 그가 말했다. “설교가 짧아서 제일 감동적이었어요. 다른 하객들도 주례 설교가 짧아서 너무 좋았대요.” 그 말을 듣고 김이 조금 샜지만 그래도 하객들을 기쁘게 해서 기분이 좋았다. 그날 제가 6분 설교를 했는데 원래 의도가 설교를 짧게 해서 신랑신부와 하객들을 행복하게 해주자고 미리 작정했기 때문이다. 그때 짧은 설교가 명 설교라는 말을 새롭게 실감했다.  설교는 준비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점차 짧아진다. 저의 경우에는 1시간 분량의 설교를 한 번 더 다듬으면 52분 설교가 되고, 두 번 다듬으면 45분 설교, 세 번 다듬으면 39분 설교, 네 번 다듬으면 34분 설교, 다섯 번 다듬으면 31분 설교, 여섯 번 다듬으면 28분 설교로 줄어든다. 저의 목표는 초고 설교를 일곱 번 다듬고 28분 전후로 설교하는 것이다.  물론 짧은 설교가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많이 다듬을수록 설교가 짧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어떤 부흥 강사는 3시간 이상 말씀을 전

Seeking God 하나님을 추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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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63:1-8 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2.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3.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4.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5.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6.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7.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8.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You, God, are my God, earnestly I seek you.  Psalm 63:1 It’s inspiring to watch people’s passion and dedication in pursuing their dreams. A young woman I know recently graduated from college in just three years—a task that took total commitment. A friend wanted a particular car, so he worked diligently baking and selling cakes until he reached his goal. Another person who’s in sales seeks to meet one hundred new people every week. While it can be good to earnestly seek something of earthly value, there’s a more important kind of seeking that we must co

Curtained Off 제거된 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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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0:19-25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Since we have confidence to enter the Most Holy Place . . . by a new and living way . . . let us draw near to God.  Hebrews 10:19–22 As my flight reached cruising speed, the flight attendant pulled back the curtain that cordoned off first class, and I was given a startling reminder of the stark differences between areas on airplanes. Some travelers get to board first, enjoying premium seating with extra legroom and personalized service. The curtain was a humbling reminder of my separation from those perks. 우리가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새로운  살 길이요……하나님께 나아가자 [히브리서 10:19-22] 비행기가 순항속도에 이르러 승무원이 일등석을 막았던 커튼을 젖혔을 때 나는 비행기 안

비전 성취에 필요한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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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사도행전 18장 4-8절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1. 비전 동역자  사도 바울이 아덴에서 복음을 전할 때 큰 역사를 일으키지 못하고 몇 명의 성도만 마음을 열었다. 그 후 편치 않은 마음으로 고린도로 왔다. 거기서 홀로 선교 사역을 하면서 얼마나 외로웠겠는가? 특히 큰 성과가 없었던 아덴에서의 씁쓸한 추억이 그의 마음을 더욱 가라앉게 했을 것이다. 그때 하나님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붙여주심으로 생기를 찾은 바울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하며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했다(4절).  얼마 후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온 실라와 디모데를 만났다. 실라는 빌립보 교회의 소식과 그들이 보낸 헌금을 가지고 왔다.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환난 중에도 믿음 생활을 잘하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그들에게 소망을 넘치게 주려고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말씀이 담긴 데살로니가전서를 보냈다. 그 편지를 받고 데살로니가 교회에 잘못된 종말 신앙 열풍이 불자 바른 종말 신앙을 교훈하려고 데살로니가후서를 보냈다.  실라와 디모데를 만나자 바울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영혼이 소생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밝히 증언했다(5절). 바울이 실라와 디모데를 다시 만나면서 얼마나 기뻤겠는가?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홀로 살 수 없다. 특히 하나님의 사역은 더욱 홀로 할 수 없다. 서로 힘써 동역자가

복된 부부가 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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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사도행전 18장 1-3절 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1. 항상 함께 하라  성경에는 여러 곳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이름이 언급되는데 그때마다 항상 함께 언급된다. 아굴라는 본도 출신으로서 로마에서 이미 예수님을 믿었다. 그런데 주후 49년경에 로마의 글라우디오 황제가 모든 유대인에게 로마를 떠나라고 명령했다(2절). 당시 유대인들이 세계의 수도인 로마로 몰려와 장사하면서 많은 상권이 유대인에게 넘어갔고 더 나아가 유대인 출신 성도들의 전도로 많은 로마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추방령이 유대 여자들에게는 비교적 관대하게 적용되었다.  유대 여자들은 제사장 앞에서 율법책에 손을 얹고 결혼하면서 언약관계인 부부관계를 깨면 저주받는다고 믿었기에 대개 남편에게 성실했다. 그래서 로마 남자와 결혼한 유대 여자는 로마인처럼 대우를 받았고 남편 사회적 지위에 따라 높이 존중받았다. 그처럼 유대 여자들은 추방령에서 면제될 수 있는 길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유대 아내들은 추방당하는 남편을 따라 고생을 각오하고 로마를 떠났다.  로마 시민권자인 브리스길라도 로마에 머물 수 있었지만 남편과 함께 하려고 로마를 떠났다. 감동적인 장면이다. 그처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어디에 가든지 몸과 마음으로 함께 하는 부부가 되라. 부부가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삶처럼 복된 삶은 없다. 교회에서도 “아무개 부부가 함께 최선을 다해 교회를 섬겼습니다.”라는 말을 듣는 대상이 된다면 얼마나 복된 일인가? 어디든지 같이 가면서 믿음으로 하나 되어 사는 행복한 부부를 꿈꾸라.  부부가 항상 함께 하라는 것은 늘 같이 붙어 있으라는 말이 아니라 늘 성육신의 마음을

Stay on The Way 그 길에 머물러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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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rd, we don’t know where you are going, so how can we know the way?  John 14:5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요한복음 14:5] Dusk fell as I followed Li Bao along the tops of terraced walls cut into the mountains of central China. I had never been this way before, and I couldn’t see more than one step ahead or how steep the ground dropped off to our left. I gulped and stuck close to Li. I didn’t know where we were going or how long it would take, but I trusted my friend. I was in the same position as Thomas, the disciple who always seemed to need reassurance. Jesus told His disciples that He must leave to prepare a place for them and that they knew “the way to the place where [He was] going” (John 14:4). Thomas asked a logical follow-up question: “Lord, we don’t know where you are going, so how can we know the way?” (v. 5). Jesus didn’t quench Thomas’s doubt by explaining where He was taking them. He simply assured His disciple that He was the way there. And t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