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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력이 있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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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간구하며 기도하라  본문 18절의 첫 부분에서 주목할 것은 ‘모든 기도’라는 언급이다. 기도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어떤 성도는 새벽기도가 잘된다고 하고 어떤 성도는 밤 기도가 잘된다고 한다. 어떤 성도는 합심기도가 큰 힘이 되어서 좋다고 하고 어떤 성도는 개인기도가 하나님 임재 안에 들어가서 좋다고 한다. 그러나 기도에 1등 기도나 2등 기도는 없다. 자기 형편에 가장 은혜가 되는 대로 기도하면 된다. 어떤 기도를 해도 좋지만 그 기도는 반드시 간구하는 기도여야 한다. “밑져야 본전!”이란 식으로 기도하지 말고 간절히 기도하라. 일할 때도 그 일에 모든 것이 달린 것처럼 일하고 기도할 때도 그 기도에 모든 것이 달린 것처럼 기도하라. 2. 항상 기도하라  본문 18절에서 ‘항상’이란 단어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도전을 준다. 새벽기도를 중시하는 목회자가 많은데 그것은 새벽 시간에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이 첫 열매를 기뻐하듯이 매일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과 교제하며 시작하는 삶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운전하면서 기도해도 좋고 운전이 끝난 후에 “하나님! 무사히 운전대 붙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해도 좋지만 운전하기 전에 기도하는 것이 더 좋다. 무슨 일을 하든지 시작할 때 기도하면 좋지만 기본적으로는 때와 시간을 가리지 말고 항상 기도하라. “항상 기도하라.”는 말의 구체적인 의미는 “문제가 없을 때도 기도하라.”는 말이다. 3.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본문 18절에 언급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 다른 종교의 기도는 거의 축복을 구하는 기복적인 기도로서 그 초점이 자기다. 참된 기도는 하나님이 그 기도의 초점이 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이다. 주기도문은 시작부터 계속 ‘아버지’를 강조하며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춘다. 기도의 초점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이 되게 하라. 그 다음에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기도하라. 자신에 대...

변함없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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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함없는 사랑의 중요성 >  만물은 다 변한다. 돌이나 쇠도 변한다. 사람도 변한다. 특히 현대는 변화 속도도 빠르고 변화 정도도 크다. 사람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나는 절대로 변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해도 환경이나 여건이 변하면 쉽게 변할 수 있다. 때로는 사랑도 변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이 변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그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내 마음도 변하지 않도록 하라.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를 마치면서 에베소 교회에 변함없는 사랑을 권면했다. 먼저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있는 자기 형편을 알려서 에베소 교인들을 위로하려고 사랑을 받는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를 보낸다고 했다(22절). 감옥 안에 있는 사람이 감옥 밖에 있는 사람을 위로하는 모습을 보라. 사도 바울은 어떤 환경도 극복할 수 있는 변함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에베소서를 마치면서 에베소 교인들을 진심으로 축복해주었다(23-24절).  사도 바울의 축복기도는 어떤 사람에게 은혜가 있는지를 잘 밝혀준다. 어떤 사람에게 은혜가 있는가? 예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다. 많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많을수록 좋은 것이 있다. 그것은 은혜다. 은혜는 많을수록 좋고 아무리 많아도 부작용도 없다. 그러나 은혜가 없으면 마음과 삶이 황폐해진다. 은혜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라. 특히 2가지를 조심하라. 변덕과 변절이다.  변덕이란 무척 피곤한 말이다. 이유가 뚜렷하지 않은 변덕은 미성숙의 표시다. 변덕보다 더 안 좋은 의미를 가진 것이 변절이다. 변절이란 이해관계에 따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변덕쟁이가 되거나 변절자가 되지 말아야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계속해서 받을 수 있다. 사랑이 변하지 않아야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 내가 현재 누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누군가의 손길에 있었기에 누리는 것이다. 그 근원...

복된 성도가 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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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혜롭게 행동하라  지혜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는 것’이다(15절). 왜 인생이 불행해지는가?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축복된 삶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지혜로운 삶을 원하신다. 지혜가 있는 곳에 참된 축복도 있다. “자세히 주의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잘 살핀다.”는 뜻이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면 헛수고로 끝난다. 이단을 보면 얼마나 열심이 있는가? 그런데 그들은 꼭 교패 붙은 집만 찾아 설문조사를 한다고 하면서 미혹한다.  열심도 있어야 하지만 지혜도 있어야 한다. 기도할 때도 늘 하나님의 뜻을 잘 살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 또한 15절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라.”고 하면서 행동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왜 고독감과 공허감이 생기는가? 헌신하는 행동이 없어서 소속감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갈등이 많이 생기는 이유도 헌신하는 행동은 없고 생각만 넘치기 때문이다. 헌신할 때 신앙의 깊은 맛을 느끼게 된다.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고 헌신하면 영혼에 신비한 기쁨과 행복감이 넘치게 된다. 2. 세월을 아끼라  본문 16절을 보라.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왜 세월을 아껴야 하는가? 때가 악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시간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시간은 돈보다 더 중요하다. 돈은 더 벌 수 있지만 시간은 더 가질 수 없다. 시간은 저축할 수도 없고 살 수도 없고 빌릴 수도 없다. 그 소중한 시간을 잘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진 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 낭비만큼 아까운 낭비는 없다.  어느 날 벤자민 프랭클린이 운영하는 서점에 손님이 들어와 가격을 깎자 프랭클린은 값을 더 올렸다. 손님이 그 이유를 묻자 프랭클린이 말했다. “손님! 시간은 돈보다 소중한데, 정가가 표시되어 있는데도 저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았으니까 자연히 책값이 올라간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을 소중히 여겨서 결국...

영혼을 지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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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CARLAB ] < 영적인 안전거리를 두라 >  나는 1988년 미국에서 자동차 운전 면허증을 땄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여름에 시카고에서 개최된 <한인세계선교대회>를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자정이 넘어 억수같이 비가 내릴 때 졸면서 운전하다가 죽을 뻔한 큰 사고를 당했다. 다시 얼마 후 초겨울에 뉴욕 시내 고속도로에서 눈길에 미끄러져 7중 충돌을 일으켰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주차장에서 동료 목사님의 차 범퍼를 손상시킨 것 외에는 30년간 길에서 사고를 낸 적이 없었다.  30년간 차 사고가 없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위기의 순간도 여러 번 있었다. 40세 이전에는 졸음운전도 많이 했다. 고속도로에서 앞차와 30센티쯤 남기고 급정거하기도 있었다. 그래도 30년 무사고에는 한 가지 운전습관이 큰 기여를 했다. 안전거리를 상당히 두고 운전하는 습관이었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안전거리만은 최대한 지켰다. 교통사고를 줄이려면 2가지는 필수적이다. ‘과속하지 않는 것’과 ‘안전거리를 두는 것’이다.  인생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도 2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과속하지 말아야 한다. 저는 새벽에 기도할 때, 책상에서 말씀을 묵상할 때, 사우나에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제일 잘 들린다. 하나같이 마음의 속도감을 최대한 줄였을 때다. 운전하며 영어를 들을 때 천천히 운전하면 잘 들리지만 빨리 운전하면 잘 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음성도 인생을 과속하지 않을수록 잘 들린다. 그래서 침묵 시간과 여가 시간도 필요하다.  둘째, 안전거리를 두어야 한다. 좋은 것은 가까이하고 나쁜 것은 멀리해서 영적인 안전거리를 두라. 사탄은 끊임없이 다가와 영혼을 무너뜨리려고 한다. 신앙이 어릴 때는 위협 방법을 쓴다. “너, 예수 믿으면 죽어!” 그러나 신앙이 깊을 때는 위협하면 더 하나님을 찾기에 신식 예수 믿는 방법으로 미혹한다. “믿으려면 정도껏 믿어라. 주일에 예배드리면 되지 ...

Stop 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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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still, and know that I am God.  Psalm 46:10 My friend and I sat in the sand, near the ever-rhythmic ocean. As the sun sank in the distance, wave after wave curled, paused and then rippled toward our extended toes, stopping just short each time. “I love the ocean,” she smiled. “It moves so I don’t have to.” 친구와 나는  파도가 규칙적으로 밀려오는 바닷가 모래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멀리서 해가 지는데 파도는 차례로 밀려와 매번 우리의 발가락 바로 앞까지 와서는 잔물결을 남기며 돌아갔습니다. 친구가 미소 지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바다가 좋아. 자기가 움직이니까 난 가만히 있어도 되잖아.” What a thought! So many of us struggle to  stop . We do, do, do and go, go, go, somehow afraid that if we cease our efforts we will cease to be. Or that by stopping we will expose ourselves to the ever-present realities we work to keep at bay. 참으로 멋진 생각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하던 일을 쉽게 ‘멈추지’ 못합니다. 노력을 멈추면 자신의 존재 가치가 사라질 것 같은 두려운 마음에 쉼 없이 일하고 또 일하고, 앞만 향해 계속 나아 갑니다. 그동안 늘 피하려고 애써온 상존하는 현실과 마주하게 될 거라는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In Psalm 46:8–9, God flexes His omnipotent muscles, putting His power on display. “Co...

하나님의 전신갑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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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God's family 이하림:  전신갑주-coloring ] 4. 믿음의 방패  믿음의 방패로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할 수 있다(16절). 귀신은 끊임없이 불화살을 쏜다. 특히 귀에 많이 쏘면서 이상한 말, 거짓말, 부정적인 말을 만들어 듣는 사람을 실망시킨다. 그런 소리에 미혹되지 말라. 듣는 것을 잘 가려서 듣고 특별히 하나님 말씀을 힘써 들으라. 성령 충만하면 말씀의 귀가 열리지만 귀신은 어떻게 하든지 말씀에 귀가 닫히게 만들려고 하기에 말씀이 자기 약점과 부딪치면 성령님은 반성하게 만들지만 마귀는 반발하게 만든다.  어떤 말씀에 대해서는 “저 말씀은 나 들으라고 한 것이다.”하고 반발한다. 내게 주신 말씀이라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어떤 말씀에 대해서는 “저것은 돈 내라는 얘기 같다.”고 반발한다. 인색한 태도다. 오늘날 신앙의 가장 큰 대적은 돈을 숭배하는 배금주의다. 신앙성숙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물질에 대한 집착이기에 때로는 물질적 헌신에 대한 말씀도 필요하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 말씀의 3분의 1이 물질과 관련된 말씀이다.  또한 어떤 말씀에 대해서는 “옛날에는 저렇지 않았는데 변했다.”고 반발한다. 그러나 옛날과 똑같은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변화가 좋을 수도 있고 때로는 변하지 않는 것은 나쁜 경우도 많다. 본질적인 면은 변하지 말아야 하지만 비본질적인 면은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 무조건 “변했다.”고 하며 말씀을 외면하면 안 된다. 말씀에 귀가 닫히게 하려는 귀신의 불화살을 믿음의 방패로 막아내라. 5. 구원의 투구  성도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지만 귀신은 그 구원을 의심하게 만든다. 죄와 허물을 확대시켜 “너는 위선자야. 너 같은 인간이 무슨 하나님의 자녀야.”라고 정죄할 때 그 귀신의 노략질에 넘어가면 그때부터 영혼은 아수라장이 된다.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진심으로 회개하면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받아주신다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라. 구원의...

하나님의 전신갑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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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리의 허리띠  귀신은 강하고 끈질긴 존재지만 결코 성도를 이길 수 없다. 성도의 대장 되신 예수님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이미 귀신을 이기셨기 때문이다. 귀신은 종이 호랑이이고 늙은 사기꾼에 불과하다. 종이호랑이를 보고 놀라지 않고 늙은 사기꾼에게 속지만 않으면 귀신은 예수님의 진리로 굳게 무장한 성도를 어떻게 할 수 없다. 사실상 예수님의 능력은 성도보다 귀신이 더 잘 안다.  예전에 한 성도의 말에 의하면 그가 살았던 시골 마을에는 ‘경을 읽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이 죽기 전에는 거의 다 교회에 나왔다. “왜 평생 경을 읽었으면서 교회를 나오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귀신들은 어떤 사람이 죽어서 그로부터 나오면 다시 다른 사람에게 들어가야 합니다. 그때 가장 많이 들어가는 대상이 ‘나온 그 죽은 사람의 자녀’입니다. 제가 평생 경을 읽었지만 제 자녀에게만은 귀신이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기에 귀신으로부터 자식을 보호하려고 죽을 때가 되면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은 신 내림을 받은 무속인이 귀신을 쫓아준다고 하고 점을 쳐준다지만 그것이 행복하지 않은 삶임을 그들 자신도 알고 또한 예수님이 얼마나 놀라운 분인가 하는 것을 그들도 이미 알고 있다는 말이다. 예수님을 굳게 붙잡으면 귀신은 들어올 수도 없고 그 영향력도 차단되고 이미 들어왔던 귀신도 맥을 못 추고 나간다. 2. 의의 호심경  성도에게는 두 가지 호심경이 있다. 하나는 ‘의로움’이다. 죄로부터 자신을 지키라. 독함, 불순종, 교만, 불신 등을 그냥 두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법은 없다. 완벽하게 살지 못해도 늘 의를 따라 살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에베소서 4장 26절에는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이 나온다. 그 말은 “절대 분노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분노를 다스리라.”는 말이다.  의로운 사람이 되라는 말은 완전한 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고 순간적인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