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을 피하는 2대 요소





본문말씀 : 이사야 2장 4-5절
4.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5.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1. 평화를 추구하는 삶

 전쟁을 두려워하지는 말되 전쟁은 최대한 막아야 한다. 칼을 쓰면 대개 칼로 망한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 군대와 대제사장의 하속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오자 베드로가 칼을 빼서 말고란 하속의 귀를 쳐서 떨어뜨렸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했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마 26:52).”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라는 말씀이다.

 교육의 최대 목표는 칼을 쳐서 보습으로 만드는 것이다. 칼을 만드는 교육은 망하는 교육이다. 스파르타의 교육은 칼을 만드는 교육이었고 아테네의 교육은 보습을 만드는 교육이었다. 결국 아테네가 이겼다. 지금 북한은 증오와 살기로 보습을 만들어야 할 재원으로 핵을 만들며 동족의 가슴을 겨냥해 칼을 만들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아무리 통일이 절실해도 전쟁을 통한 통일은 없어야 한다.

 어느 날,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마침내 해방의 때가 된 줄 알고 제자들이 물었다. “주님!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때가 이때입니까?” 그때 예수님이 말씀했다. “때와 기한은 하나님이 자기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는 알 필요가 없다. 오직 성령이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증인이 되라.” 성령을 받고 로마를 향해 갈던 칼을 보습으로 바꾸고 그 보습으로 로마를 점령하라는 말씀이다.

 결국 성령이 임한 마가 다락방은 제자들의 가슴을 쳐서 칼을 보습으로 만들고 창을 낫으로 만든 영적인 대장간이었다. 당시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계속 칼을 품고 있었고 말고의 귀를 칠 때는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칼을 칼집에 꽂았지만 마음속으로는 계속 칼을 갈고 있었다. 그러나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고 칼을 쳐서 보습으로 만들었고 그 보습을 들고 로마로 가서 로마를 정복했다. 칼을 보습으로 만들려고 해야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갈 수 있다.

2. 평안을 추구하는 삶

 외적인 평화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자신 안에서 평화를 이루어내는 내적인 평안이다. 그 평안을 언제 얻는가? 기본적으로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죄는 평안을 빼앗는다. 요새 사회적인 도덕성 검증이 심해지면서 많은 박사 목사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언제 논문 검사하자고 할까봐 장로들 앞에서 제대로 숨도 못 쉬고 있다. 큰 교회 담임목사라면 당연히 걸쳐야 한다고 생각해서 편법으로 받은 외국 신학교 박사 학위가 부메랑이 되어 지금 많은 박사 목사들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라고 한다. “나 떨고 있니?” 죄는 평안을 빼앗는다.

 죄를 지으면 평안을 잃고 사탄의 종이 된다. 사탄은 못된 파출부처럼 우리 죄를 들먹이며 협박한다. “아무개야! 너는 어찌 그리 양심이 없냐? 네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생각해 봐! 네 주제에 무슨 교회를 다녀? 너 정말 철면피구나!” 그때 고백하라. “사탄아! 네 말대로 나는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어. 잘못도 많이 했어. 그러나 예수님의 보혈로 하나님이 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어. 저리 비켜. 나는 교회 나갈 수 있어.”

 죄 사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합리화나 회피가 아니라 믿음이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고 심령의 자유와 평안을 찾으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크게 오해하는 생각은 사람 기준에 의한 바른 행동을 하면 하나님이 받아주시고 못된 행동을 하면 하나님이 받아주시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물론 행동도 잘해야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행동보다 사람의 중심을 더 살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은 다르다. 주일아침에 부부싸움을 했거나 다른 일로 속상해서 예배드릴 기분이 아니어도 변함없이 주일성수를 하면 본인들은 잘 체감하지 못해도 목회자는 그에게 고마움을 느낄 것이다. 목자장 되신 예수님도 똑같이 고맙게 여기실 것이다. 부족한 모습이 있어도 꾸준히 예배에 나오는 사람이 제일 복된 사람이다. 그렇게 예배하다 보면 언젠가 부족한 것을 극복하고 대 평안을 노래할 때가 올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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