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를 각오하고 나아가라
본문말씀 : 요나 1장 14-17절
14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15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16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 희망을 가지고 살라 >
무리들이 풍랑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요나를 바다로 내던지자 바다가 평온해졌다. 그때 무리들은 폭풍의 제일 원인이 하나님의 종의 불순종에 있다는 사실과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자 무리들은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했다(16절). “서원을 했다.”란 표현을 보면 단순히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제사를 드렸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을 믿기로 결단했다는 암시다. 요나를 배 밖으로 던지면서 엄청난 반전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다 요나가 죽은 줄 알았지만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미리 준비해서 요나를 삼키고 3일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게 하셨다(17절). 그 3일은 요나의 삶에서 가장 위대한 3일이었다. 그때 요나가 회개하고 기도하며 자기 사명을 새롭게 하자 마침내 물고기는 요나를 뱃속에서 토해냈고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니느웨로 가서 말씀전파의 사명을 완수했다. 멋진 반전의 역사다.
세상에서 제일 기쁜 일은 옛날에 나쁜 평가를 받았다가 오해도 풀리고 한 차원 더 성숙해지면서 다시 좋은 평가를 받는 일이다. 아직 살아있기에 그런 재평가의 기회는 늘 있다. 희망을 가지라. 과거에 손가락질을 받던 사람도 얼마든지 칭송받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대중의 여론은 나의 희생적인 태도에 따라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그런 재평가와 반전의 역사를 꿈꾸며 살라.
사람에 의해 재평가 받는 일도 기쁜 일이지만 하나님에 의해 다시 인정받고 쓰임 받는 일은 무엇보다도 기쁜 일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쓰임 받는 존재가 되는가? 성령님이 그 마음에 찾아와주시면 된다. 어떻게 의심병 환자인 도마가 신실한 사도로 변할 수 있었는가? 다시 찾아와주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면 얼마든지 새롭게 될 수 있다. 누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 하나님은 남 탓을 잘하는 무책임한 사람이 아닌 자기를 성찰할 줄 아는 책임적인 사람을 만나 주신다.
< 죽기를 각오하고 나아가라 >
사람들은 <월새기(월간새벽기도)> 사역이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지 궁금해 한다. 200페이지가 넘는 책을 1000원만 받고 매달 공급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한다. 100페이지 조금 넘는 월간 큐티집들을 4천 원 받는 것과 비교하면 이해가 안 될 것이다. 너무 싸니까 혹시 이단 단체가 홍보용으로 발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새 매일 필자의 <온새기(온라인새벽기도)> 말씀을 받는 사람 중에 목회자만 약 4천명이다. 필자가 조금이라도 이단 사상을 전했다면 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필자가 알부자인 줄 오해한다. 알부자는 아니지만 “죽으면 죽으리라. 잃으면 잃으리라.”라고 하면서 편하게 사역하는 마음부자이기는 하다. <월새기> 사역을 처음 시작할 때 한 은밀한 후원자의 후원을 받고 시작했다. 그 후원금으로 “3호까지는 발행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 후에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집 보증금을 빼면 10호까지는 발행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 후 재정이 고갈되면 <월새기> 문서선교 사역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으로 알고 발행을 끝내면 된다는 편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 후 지금까지 집 보증금을 빼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기적이 있게 되었는가? 책을 저렴하게 공급해서 문서선교의 순수성이 누군가에게 인정되었기 때문인가? 물론 그런 이유도 조금은 있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말씀을 통해 비전과 은혜를 받고 또 다시 은밀한 헌신의 손길을 펼쳤기 때문이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죽으면 죽으리라.”라고 하면 대개 죽지 않는 길이 신비하게 열리고 “잃으면 잃으리라.”라고 하면 대개 잃는 중에도 더 많은 것을 얻는다. 고난 중에 자기 신세타령이나 남 탓을 하는 것 대신에 감사하고 찬송하고 희생하면 언젠가 찬란한 꿈과 비전이 이뤄지고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길이 반드시 열린다. 남 탓을 최대한 절제하고 항상 자기 성찰과 감사와 찬양과 희생으로 반전의 역사를 이루고 하나님 앞에 멋지게 쓰임 받으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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