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본문말씀 : 사도행전 21장 7-14절
7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0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 사명을 포기하지 말라 >

 바울이 3차 선교여행 후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때 두로를 떠나 항해를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지냈다. 이튿날 가이사랴에 이르러 예루살렘 교회의 초대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 머물렀다. 빌립은 스데반의 순교 후 사마리아에서 큰 부흥을 이끌었다가 가사와 아소도를 거쳐 가이사랴에 정착해 약 20년간 가이사랴 교회를 섬기며 복음을 전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행 8:40).

 바울이 그곳에 며칠 머물러 있을 때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결박될 것에 대해 예언했다(11절). 그 예언을 듣고 가이사랴 성도들과 바울의 수행자들이 모두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권했다. 그때 바울은 말했다.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13절).” 결국 그곳에 있던 모든 제자들이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권함을 그쳤다.

 바울은 유명한 예언자가 “예루살렘으로 가면 결박된다.”라고 하면서 자신에게 큰 고난이 있을 것을 예언했어도 자기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예언의 추종자’가 되지 않고 스스로 ‘예언의 주체’가 되었다. 왜 사람들이 용한 예언자를 찾는가? 화를 피하고 복을 얻으려는 심리 때문이다. 그러나 편하고 잘 되는 길만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결국 예언의 참된 의미는 ‘미래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향해 나아가는 것’에 있다.

 족집게처럼 맞는다는 예언을 듣고 편하고 좋은 길로만 가려는 자세는 예언의 참된 의미를 훼손한다. 편하고 좋은 길로 가는 것이 겉으로는 좋아보여도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는 길일 수 있다. ‘예언의 희생자’나 ‘예언의 추종자’가 되지 말고 ‘예언의 주체’가 되라. 죽음과 희생과 손해가 없는 길로만 가겠다는 마음이 예언을 추종하게 만들고 운명에 매여 수동적인 삶을 살게 만든다. 죽으면 죽으리라고 하면서 사명을 따라 살면 ‘운명을 극복하는 주체적인 삶’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

 가끔 사랑하는 자녀가 고집스럽게 고난이 예상되는 길로 갈 때가 있다. 그때 부모로서 한두 번은 그 길을 막을 수 있지만 죽어도 좋다면서 그 길을 고집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하며 그 길로 허락하라. 내가 좋다고 생각한 길이 더 안 좋을 수도 있고 내가 나쁘다고 생각한 길이 더 좋을 수도 있다.

 필자는 가끔 두 딸의 결혼과 관련해서 농담 삼아 아내에게 말한다. “아무개 성도의 헌신적 신앙을 생각하면 그분 아들 정도면 좋겠는데... 신실한 아무개 목사의 아들 정도면 좋겠는데...” 그러나 딸의 결혼은 전적으로 딸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런데 가끔 딸이 날라리처럼 보이는 청년과 결혼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마음의 준비를 할 때가 있다. 아무리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도 그런 상황에서는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다.

 그 전에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딸이 날라리처럼 보이는 청년과 결혼하겠다는 날벼락이 없도록 딸의 안목을 넓혀주는 것이다. 그래서 수시로 외모와 소유를 보지 않고 바른 믿음과 인격과 책임감을 보도록 수시로 직간접적으로 도전한다. 그처럼 좋은 청년을 선택하도록 여러 지혜를 동원해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도이기에 수시로 그 문제에 대해 기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갑자기 날라리처럼 보이는 청년과 함께 나타나서 결혼하겠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낌새를 보아 마음을 돌릴 수 없을 것 같으면 그때는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하면서 필자는 결혼을 허락할 것이다. 날라리 같이 보여도 하나님이 은혜로 함께 하시면 진짜 좋은 날개가 생겨서 높은 하늘을 비상하게 될 수도 있다. 내 생각과 고집을 버리고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는 순종의 고백을 잘하라. 오늘날 많은 문제는 ‘환경’이 아닌 ‘자기’로부터 오는 문제다. 내 뜻, 내 생각, 내 안목만 고집하려고 하지 말아야 평안과 행복도 얻고 남의 행복도 찾아줄 수 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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