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서 무너지라

 

[ 지거 쾨더 : 모세와 불떨기 나무 ]


본문말씀 : 다니엘 2장 31-35절


31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매우 찬란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32 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33 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34 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35 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



< 느부갓네살의 꿈 >

 꿈에는 미래에 되기를 원하는 환상적인 꿈도 있지만 미래에 될 일이 보이는 계시적인 꿈도 있다. 전자의 환상적인 꿈은 의지적으로 가질 수 있지만 후자의 계시적인 꿈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드물게 보여 주신다. 간절히 하나님을 추구하며 기도하면 전자의 꿈이 주어지지만 극히 드물게 후자의 꿈을 주어지기도 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미래로 이끄시는 방법은 사람의 상상을 초월한다. 때로는 꿈을 통한 초월적인 방법으로 축복의 문을 열어 주시고 복된 미래로 이끌 적합한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신다.

 물론 성경은 꿈의 가치보다 말씀의 가치를 훨씬 소중하게 여긴다. 하나님은 일반적으로는 성경 말씀을 통해 갈 길로 이끌고 굽은 길을 펴 주신다. 그러나 극히 드물게 계시적인 신비한 꿈을 통해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게하고 갈 수 없는 곳을 가게 하신다. 느부갓네살 왕의 꿈은 일종의 계시적인 꿈이었다.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하지 않도록 찬란한 환상적인 꿈을 늘 가지되 신비한 계시적인 꿈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을 가지라.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의 계시적인 꿈을 해석하면서 먼저 왕의 꿈에 나온 신상에 대해 묘사했다(31-33절). 신상에 대한 묘사가 끝난 후에 손대지 아니한 돌이 신상을 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34절). 그 묘사가 주는 핵심 교훈은 사람의 힘을 상징하는 신상이 예수님을 상징하는 손대지 아니한 돌에 의해 철저히 무너진다는 것이다.

 손대지 아니한 돌이 신상을 무너뜨릴 때 신상의 쇠와 진흙으로 된 발을 쳐서 부서뜨렸다. 손대지 아니한 돌이 재림하실 예수님을 상징한다면 쇠와 진흙이 섞인 발과 10개의 발가락을 상징하는 나라는 시간적으로 아직 등장하지 않은 상태다. 마지막 때가 되면 재림하실 예수님이 적그리스도가 다스리는 쇠와 진흙이 섞인 발을 상징하는 나라를 깨뜨리실 것이다.

< 하나님 앞에서 무너지라 >

 마지막 때에 관한 본문의 묘사는 어떤 교훈을 주는가? 하나님 앞에 고개를 쳐들고 뻣뻣이 서면 반드시 무너지고 하나님 앞에서 무너지면 그때 비로소 일어서게 된다는 교훈이다. 마지막 때가 어떤 무서운 모습으로 다가와도 상관없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줄 아는 겸손한 사람에게 위기는 기회가 되고 넘어짐은 일어섬이 된다. 세상에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하는 장면만큼 아름다운 장면은 없다.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기쁜 때는 자녀의 성적이 올랐을 때나 어버이날에 선물을 받을 때가 아니라 자녀가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친 후 부모의 뜻에 힘써 따라줄 때다. 그처럼 참된 회개가 있으면 성도는 가장 성도답게 되고 하나님은 그 모습을 가장 기뻐하신다. 하나님 안에서 무너진 후 하나님 안에서 다시 일어서라. 잘 무너지는 길이 잘 일어서는 길이다.

 어느 날 남편이 아내에게 말한다. “미안해요. 내 잘못이오.” 그러면 아내도 말한다. “아니에요. 제가 속이 좁았어요.” 그런 가정이 천국 가정이 된다. 어느 날 자녀가 부모에게 말한다.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그러면 부모도 기뻐하며 말한다. “우리도 너에 대해 많이 신경 쓰지 못해 미안하구나.” 그처럼 나를 무너뜨리는 고백이 있는 가정이 천국가정이 된다. 왜 사회가 각박해지는가? 말씀과 성령의 은혜 안에서 자기를 무너뜨릴 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 안에서 진심으로 무너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 안에서 잘 무너짐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그러면 그 무너지는 날이 상황을 극적으로 변화시키고 나 자신이 새롭게 일어나는 날이 될 것이다. 마음에 있는 걱정과 근심으로부터 해방되는 가장 멋진 길은 하나님 앞에서 무너지는 길이다. 손대지 아니한 성령의 돌로 나의 심령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몰입되고 성령 안에서 다시 새롭게 일어서면 앞날은 주님 안에서 보장된 날이 될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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