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자신을 주는 것

 

[ 지거 쾨더 : 너희가 나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 ]


본문말씀 : 룻기 3장 13-14절


13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 14 룻이 새벽까지 그의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가 말하기를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 사랑은 사려가 깊은 것 >

 기업을 무를 자가 되어달라는 룻의 과감한 청혼에 보아스는 “이 요부야!”라고 야단치지 않고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네 말대로 하겠다.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 성읍 백성이 다 알고 있다.” 그때 보아스는 이불 속에 들어온 룻에게 손을 대지 않으면서도 당장 그곳을 떠나게 하지 않고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라고 했다. 밤에 그곳을 떠나면 어두운 들판을 걷는 것도 위험하지만 이미 성문이 닫힌 상태에서 성문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기에 그냥 자기 곁에 새벽까지 머물게 한 것이다. 얼마나 사려 깊은 모습인가?

 어떤 사람은 책임감은 투철하지만 너무 차갑다. 반면에 보아스는 책임감이 있으면서도 차갑지 않고 남의 처지를 생각할 줄 아는 사려 깊은 태도를 가졌다. 사랑은 열정적인 것이지만 때로는 냉정함도 필요하다. 서로 뜨겁게 사랑하니까 남의 눈치를 볼 것이 없다면서 “우리 둘만 좋으면 돼.”라고 생각하지 말라. 신앙생활을 할 때도 속으로는 누구보다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해도 겉으로는 때로는 차분한 모습을 보이라.

 새벽에 기도할 때 보면 어떤 사람은 크게 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작게 기도한다. 그때 억지로 소리를 크게 내려고 할 것도 없고 억지로 소리를 작게 하려고 할 것도 없다. 기도하다 보면 성령의 리듬을 느낀다. 그 리듬을 따라 때로는 크게 해서 서로의 기도를 격려하고 때로는 작게 해서 서로의 기도를 배려하라. 긍정적인 태도도 중요하지만 나의 긍정이 남에게 부정이 되지 않도록 하는 사려 깊은 태도도 그만큼 중요하다. 사려 깊은 마음을 가지고 사랑의 하모니를 이루려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

 요즘은 표준화의 개념보다 조화의 개념이 중시되고 있다. 서로간의 조화도 필요하고 사람과 자연과의 조화도 필요하고 국가와 인종과 지역 간의 조화도 절실히 필요하다. 그런 흐름에 뒤처지지 않도록 야심 많고 업무 지향적인 사람보다 생명의식이 충일하고 사랑과 조화의 정신을 가진 인격자가 되라. 지식과 실력과 재능과 방법도 필요하지만 그 모든 것이 조화로운 관계를 만들기 위한 도구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남을 좀 더 배려하며 살라.

< 사랑은 자신을 주는 것 >

 보아스는 그 밤의 일을 비밀에 붙이게 한 후 룻에게 보리를 잔뜩 담아주었다. 당장 가난한 룻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한 것이다. 그때 보아스는 빈손으로 시어머니에게 가지 말라고 하며 룻의 시어머니까지 생각했다. 사랑스러운 사람을 위해 더 주고 싶어 하는 모습이다. 보아스가 자신의 식량을 준 것은 결국 자신을 준 것과 마찬가지다. 사랑의 가장 핵심 요소는 자기를 주는 것이다. 자기를 주는 것이 없는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위로는 드리고 옆으로는 나누고 아래로는 베푸는 ‘드나베의 삶’이 넘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자기 손을 펴지 않고 그 손을 모아 기도만 하는 것은 기복주의다. 두 손을 모아 기도할 줄도 알면서 두 손을 펴서 나눌 줄도 알라. 내가 어떤 것을 가진 이유는 그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과 나누라는 하나님의 뜻임을 늘 의식하며 살라. 참된 행복은 주는 삶을 통해 얻어진다.

 행복은 드리고 나누고 베풀 때 생긴다. 나만 아는 이기주의는 결국 나의 양심과 도덕성을 잃게 만들고 마침내 내가 가장 소중히 여겼던 나 자신마저 잃게 만든다. 손을 꽉 쥐면 하나님이 주지도 않고 주어도 받지 못한다. 두 손을 펴야 하나님이 그 편 손에 더 많은 것을 주신다. 주님의 십자가와 구원의 크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기도할 때 나를 주는 사랑을 수시로 새롭게 다짐하라.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도 없이 달라고만 하면 오히려 기도응답이 더 멀어진다.

 어느 날 한 동안 뜸하던 사람이 갑자기 찾아오거나 전화를 걸어 한참 돌려 말하면 뭔가 부탁하려는 것이다. 마침내 그로부터 돈 얘기나 사업 얘기가 나온다. 그러면 마음이 아파도 거절하는 것이 순리다. 중요한 것은 꾸준한 사전 교제다. 기도할 때 너무 달라고만 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과 깊이 만나라. 하나님은 필요를 채워주기 전에 먼저 더 좋은 ‘자신’을 주길 원하신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하나님의 응답보다 앞선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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