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하라
본문말씀 : 시편 117편 1-2절
1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 2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 하나님을 찬양하라 >
시편 117편은 시편 중 가장 짧은 시편이고 성경에서 가장 짧은 장으로서 만민에게 찬양을 도전하는 시편이다. 시인은 노래한다.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1절).” 찬양과 찬송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히브리어로 ‘찬양하다’는 ‘할랄’이라고 하고 ‘찬송하다’는 ‘샤바흐’라고 한다. 두 단어는 개념은 유사하지만 강조하는 뜻은 약간 다르다. 할랄은 ‘감사’를 강조하고 샤바흐는 ‘칭송’을 강조한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도 잘하고 하나님을 드높이는 일도 잘하라. 축복은 부메랑과 같다. 남을 축복할 때 그가 축복받을 준비가 안 되었으면 그 축복이 내게 돌아온다. 감사와 찬양도 부메랑과 같다. 감사하면 더 큰 감사거리가 주어지고 하나님을 높이면 하나님의 높여 주심의 은혜를 입는다. 삶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라. 사람들은 기적을 좋아하지만 사실상 삶 자체가 기적이다.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은 감사가 없는 것이다. 원망하면 영혼이 점차 병들고 죽게 되지만 감사하면 영혼이 점차 건강해지고 살아나게 된다. 욥은 모든 것을 잃은 극심한 고통 중에도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나님이 취하신 것이니 오직 하나님만 찬송받으시길 원합니다.”라고 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니다. 고통 중에 감사하는 것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다.
현재 뭔가를 잃었다는 것은 과거에 뭔가를 누리는 은혜가 있었다는 뜻이다. 그 은혜를 현재의 손실로 인해 완전히 부정하지 말고 손실이 있어도 상실감을 느끼지 말라. 그 손실에도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음을 믿으라. ‘불신적인 삶’보다 ‘신앙적인 죽음’이 더 복된 것이고 ‘불의한 삶’보다 ‘의로운 죽음’이 더 복된 것임을 믿고 감사하라. 형통할 때만 감사하는 미숙한 믿음 대신 고통 중에도 감사하는 성숙한 믿음을 가지라.
<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하라 >
현실이 어떻든지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면 신비한 행복감이 넘치게 된다. 왜 찬양과 찬송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칭송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크신 인자하심 때문이다(2절). 즉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크기에 감사하고 찬송해야 한다. 형통할 때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통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느끼는 것이 진짜 믿음이다. 심지어는 심판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있다.
심판 중에도 하나님의 크신 인자하심을 생각해내는 사람이 결국 인물이 된다. 예레미야는 나라가 바벨론에 의해 패망한 상황에서도 이렇게 고백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애 3:22-23).” 예레미야는 극심한 고통 중에도 희망을 노래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을 고백했다. 그런 고백이 있게 하라.
다윗은 자신을 질투해서 죽이려고 했던 사울을 피해 끊임없이 도망 다니면서도 여호와는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끝이 없다고 했다. 그는 매일 잠자리에 들면서 하루의 삶에 대해 감사했고 아침에는 단잠을 주신 것에 대해 감사했다. 또한 동굴에서도 찬송했고 이방 나라에 피신해서도 찬송했다. 그런 감사 신앙이 최고의 복을 예비하게 했다.
현재의 형편과 모습 그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하라. 인생의 위기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위기를 당했을 때 지금 가진 것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라. 하나님은 위기를 허락하셔도 그루터기를 남겨두신다. 그 그루터기만으로도 충분히 일어설 수 있다. 위기 때 자기에게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 하나님이 쓰실 해결 도구다. 위기 때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그것을 종자로 삼아 더욱 진보하는 길로 가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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