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포기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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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1장 3-5절 3.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삶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1절). 어떻게 천지를 창조하셨는가? 창세기 1장을 보면 창조 전에 “하나님이 이르시되”라는 말씀이 나온다(3절, 6절, 9절, 14절, 20절, 24절).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물의 근원이고 모든 원리의 기초라는 암시다. 말씀은 체험보다 앞서는 것이다. 말씀을 이루는 것은 인생의 근원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 말씀은 가장 위대한 영적인 거울이다. 말씀은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나의 참된 현실을 알려주고 참된 자유를 주는 것이다. 말씀이 없는 자유는 방종이고 말씀 안에서의 자유가 참된 자유다.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에 순종하면 말씀은 능력이 된다.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씀은 의존적인 인생이 되라는 말씀이 아니다. 그처럼 말씀에 순종하라는 말씀이 수동적인 객체 인생이 되라는 말씀은 아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 가장 능동적인 주체 인생이 된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이성을 무시하는 삶이 아니다. 순종적인 삶과 이성적인 삶은 모순되지 않는다. 말씀은 사실 이상의 것이다. 사실은 탐구하는 것이고 말씀은 추구하는 것이다.  첫째 날 빛을 창조한 후 하나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셨는가? 본문 4절 전반부를 보라.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을 보고 하나님이 좋게 보셨다는 뜻이다. 그 말씀을 확대 해석하면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하나님이 가장 기쁘게 보신다는 암시다. 누구나 위대한 인물의 가능성이 있다. 그 놀라운 가능성을 현실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자질은 순종이다. 복된 존재가 되려고 하면 말씀에 순종하려는 열린 마음을 가지라.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의 무...

창조적인 삶을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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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1장 1-2절 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 사랑의 하나님 >  신앙생활에서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기초 지식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아는 지식이다.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첫째,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1절). 신앙의 기초는 성경이고 성경의 기초는 ‘창조주 하나님’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어떤 것도 진정으로 믿을 수 없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셨고 그 중에서 가장 위대한 걸작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자연은 하나님을 알게 하는 작은 성경책과 같다.  둘째, 하나님은 심판주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란 말은 ‘심판주 하나님’이란 뜻도 내포한다. 하나님은 자연과 인간을 지으시고 스스로 마음대로 제 길을 가도록 버려두지 않는다. 만약 자연과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따르지 않으면 그 특권을 폐할 수도 있다. 하나님이 지으셨다면 하나님이 폐할 권리와 능력도 있고 당위성도 있다. 그 사실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라.  셋째,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본문 2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신다.”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원어의 의미로는 어미 새가 사랑으로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표현이다. 그 표현에서 흑암에 빠진 세상과 인간에 대해 결코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다. 또한 그 표현이 주는 실제적인 삶의 도전이 무엇인가? 성령이 임하면 사는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다. 신앙생활이란 영혼에 하늘의 생기를 입력시키는 것이다. 그때 삶은 천국이 되고 인생길에 힘과 능력이 생긴다. 왜 예배하고 기도하는가? 종교적인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씀으로 영혼이 힘을 얻고 하늘의 생기를 받기 위해서다. 그 생기를 받지 못하면 예배를 잘 드린 것이 아니고 기도를 잘한 것이 아...

창조적인 소수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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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요한복음 19장 38-39절 38.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39.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 고백하는 믿음을 가지라 >      예수님을 장사한 두 주인공은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다. 그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지만 그 믿음을 속에서 삭였다. 자신들의 높은 지위 때문이었다. 그들은 오늘날의 국회의원 신분인 산헤드린 공회 회원들로서 예수님을 인정했지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구세주로 공개적으로 영접하지 않았다. 사람에게는 지위가 높아지고 더 대우받고 싶어 하는 정치적인 본능이 있다. 그런 본능을 이기고 지위가 높을수록 더 겸손해지고 낮아져야 지위가 신앙을 방해하지 않는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도 정치적인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지위 때문에 예수님을 드러내 영접하지 못하고 예수님이 죽은 후에야 예수님을 만나러 왔기에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지 못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한다. 초대교회 때는 입술로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면 죽음이 따랐기에 입술의 시인은 참된 믿음과 구원의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그러나 지금은 구원을 얻는다니까 쉽게 입술로 시인하는 잘못된 경우도 있다. 입술로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는 것에는 자기의 죄인 됨을 철저히 고백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낮아짐이 전제되지 않고는 높아짐이 있을 수 없다. 자기를 끝장내는 고백이 있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역사가 있다. 어둠의 새벽을 통과해야 광명한 새 날을 맞이한다. 깊어진 체험이 있어야 높아질 준비가 되고 이 땅의 막다른 길을 절감해야 하늘 문이 열린다. 결국 믿음의 고백에는 회개의 고백이 늘 전제되어야 한다. 회개로 자신을 비울 때 채워짐의 역사가 있다. 비움은 비극이 아니다. ...

진리에 속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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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요한복음 18장 33-38절 33.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34.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35.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36.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38.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 십자가의 희생은 헛되지 않다 >  A 교주가 있다. 그는 영혼의 때를 위해 이 땅의 것을 다 버리라고 교인들을 몰아댄다. 가난한 교인까지 탈탈 털어 바치게 하니까 교인은 점점 헐벗어지고 교회는 점점 화려해진다. 그런 교회는 앞날의 수순이 거의 예견된다. 그 교회는 A 교주 일가와 몇몇 핵심 그룹이 교회 재산권을 대부분 장악했거나 장악할 것이다. 영혼의 때를 위해 탈탈 털어 바치라면서 이 땅의 때를 위해 외형을 키우는 모순적인 교회이기에 대개 그 수순을 밟는다.  건축헌금을 여러 번 작정시키는 교주는 때가 되어도 자리에서 순순히 물러나지 않는다. 어떻게 얻은 자리와 물질인데 쉽게 내놓겠는가? 안 내놓는다. 헌신을 강요하는 사람은 헌신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무섭게 추락한다. 거짓된 모습에 양심의 고통을 느끼던 누군가의 내부 고발로 영혼의 때를 위해 바치게 한 교주가 이 땅의 때를 위해 치밀하게 다 차지할 준...

The Old Rugged C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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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 승리를 확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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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요한복음 19장 28-30절 28.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 기쁘게 십자가를 지라 >  예수님은 히브리 시간으로 제3시, 오늘날 시간으로 오전 9시에 못 박혔다. 그 3시간 뒤에 해가 중천에 떴을 때도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오후 3시에 예수님이 부르짖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 27:46).” 그리고 타는 듯한 목마름으로 주님이 말씀했다. “내가 목마르다(28절).” 이 장면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사랑은 자기를 넘겨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면 ‘사랑하는 자’도 없고 ‘사랑 받는 자’도 없게 된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자와 사랑 받는 자가 하나 된다. 그처럼 사랑 받는 자와 하나 되려고 주님은 이 땅에 오셨고 그 사랑 때문에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분이 죽으셨다. 또한 그 사랑 때문에 섬김 받아야 할 분이 섬기셨고 생명수 강가를 거닐던 분이 물 없는 사막으로 피난하셨고 천지를 창조한 분이 머리 둘 곳을 마련하지 않으셨고 생수의 근원이신 분이 “내가 목마르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사랑은 참으로 ‘자기를 온전히 넘겨준 사랑’이었다.  예수님은 “목마르다!”고 하시고 바로 이어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다(30절). 예수님이 하신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기쁘게 십자가를 지라는 교훈을 준다. 십자가를 지면 겉으로는 실패한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실패하지 않는다. 성도의 피와 땀과 눈물도 결코 헛되지 않다. 하나님은 성도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아 기억해주신다(시 56:8). 십자가의 눈물에는 거짓도 없고 헛됨도 없다. 눈물을 흘린 만큼 상처 치유의 역...

희생의 길이 행복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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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요한복음 19장 17-18절 17.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18.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  기독교 신앙의 생명은 말씀에 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말씀이 있을 때는 흥하고 말씀이 없는 때는 쇠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연구해도 내면에 진리의 말씀이 없다면 생명력이 없다. 반면에 망해도 말씀이 있으면 망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쓰는 비밀은 바로 말씀에 있다. 아브라함, 야곱, 모세, 다윗 하나같이 잘못이 많았지만 왜 하나님이 그들을 사용했는가? 그들보다 위대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을 쓴 것은 그들 속에 진리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말씀이다.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다. 어떤 교회는 성공을 강조하고, 어떤 교회는 귀신 쫓아냄을 강조하고, 어떤 교회는 축복을 강조하고, 어떤 교회는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로는 충분하지 않다. 신앙생활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는 바로 말씀이다. 말씀이 존중되는 강도에 따라 은혜와 능력의 강도가 좌우된다.  예수님은 스스로 “진리에 대해서 증거하러 왔다.”고 했다(요 18:37) 그때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으며 예수님의 결백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을 석방하려고 백성들에게 제의했다. “내가 유월절마다 한 사람을 석방하는 전례가 있는데 예수를 석방할까? 아니면 강도 바라바를 석방할까?” 바라바는 흉악한 강도였기에 당연히 “예수!”란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백성들은 바라바를 석방하라고 소리쳤다.  결국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 판결을 받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히브리말로 해골을 뜻하는 골고다로 가셨다(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