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18의 게시물 표시

The Release of Fear 두려움에서의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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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bodies react to our feelings of dread and fear. A weight in the pit of our stomachs, along with our hearts pounding as we gulp for breath, signal our sense of anxiety. Our physical nature keeps us from ignoring these feelings of unease. 우리의 몸은 두려움과 공포감에 반응합니다. 가슴에 무거운 돌을 얹고 있는 듯한 느낌, 심장이 요동치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 등은 우리의 두려움을 보여주는 신호입니다. 이런 본능적인 몸의 반응은 우리로 불안감을 쉽게 떨치지 못하게 합니다. The disciples felt shockwaves of fear one night after Jesus had performed the miracle of feeding more than five thousand people. The Lord had sent them ahead to Bethsaida so He could be alone to pray. During the night, they were rowing against the wind when suddenly they saw Him walking on the water. Thinking He was a ghost, they were terrified(Mark 6:49–50). 예수님이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베푸신 날 밤, 제자들은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은 홀로 남아 기도하시기 위해 제자들을 벳새다로 먼저 보내셨습니다. 한밤중에 바람에 맞서 노를 젓던 제자들은 갑자기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주님을 유령으로 착각한 제자들은 큰 두려움에 빠졌습니다(막 6:49-50). But Jesus reassured them, telling them not to be afraid and to...

존귀하게 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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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이사야 52장 13-15절 13.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14.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놀랐거니와 15.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이사야>에는 4편의 <고난당한 종의 노래>가 있다. 본문은 넷째 노래가 시작되는 부분이다. 고난당한 종인 메시야는 십자가를 지지만 결국 부활하심으로 지극히 존귀한 분으로 높이 들리신다(13-14절). 그런 극적인 승리의 역사를 보면 사람들은 너무 놀라서 말문이 닫힌다(15절). 본문의 노래처럼 사람이 존귀하게 되고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겸손하게 되라  예수 믿고 겸손해지는 삶은 예수 믿고 능력 받는 삶보다 더 복된 삶이다. 능력을 받아도 그 후에는 겸손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겸손한 삶은 명예나 권세나 부요를 가진 삶보다 더 복된 삶이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능력과 실력을 가진 사람보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겸손한 사람이다. 예수님의 마음이란 ‘빈 마음’보다 ‘비운 마음’이다. 하나님은 비운 마음을 통해 역사하신다. 사람끼리도 비운 마음들이 만날 때 역사가 일어나고 행복을 얻는다.  어느 날 한 부유한 여성이 딸을 위해 일등 신랑감을 찾는데 세상적인 기준의 일등 신랑감은 대개 아파트 열쇠와 자가용 열쇠 등을 요구했다. 그래도 딸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돈을 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신랑감을 찾아서 결국 일등 신랑감을 만났다. 한참 결혼을 진행시키는데 신랑 될 청년이 신부 될 처녀와 커피숍에서 대화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당신 어머님이 여러 개의 열쇠를 해준다고 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 말을 듣고 그녀는...

Buckling Up! 안전띠를 매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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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st of the time, life doesn’t warn us of the unsettling experiences coming our way. But our loving Father knows and cares about our struggles, and He invites us to bring our cares, hurts, and fears to Him. The Scriptures tell us, “This High Priest of ours understands our weaknesses, for he faced all of the same testings we do, yet he did not sin. So let us come boldly to the throne of our gracious God. There we will receive his mercy, and we will find grace to help us when we need it most”(Hebrews 4:15–16 NLT). 우리의 앞길에 불안한 일들이 닥칠 때 대부분의 경우 인생은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힘들어하는 것을 아시고 도와주시며, 우리의 염려나 상처, 두려움을 그분께로 가지고 오라고 권면하십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5-16). In seasons of turbulence, going to our Father in prayer is the best thing we can do. The phrase “grace to help us when we need it”—means that in His presence we can be “buckled”...

회복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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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회복시켜주시는 은혜를 보면서 무엇을 느끼는가? 아무리 절망적인 사람도 희망이 있음을 느낀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는 늘 새로운 기회가 있다. 현재 모습에 문제가 많아도 상관없다. 하나님은 회복의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 안에서는 하자인생에게도 넘치는 희망이 있다. 자신의 부족한 환경에 대해 실망하지 말라. 완벽하게 조건을 다 갖춘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세상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면 하나님은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골라서 사용하신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Not Enough? 충분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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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ing is hard. It is easier to hold onto what we see in front of us. Perhaps we do the calculation and reason there is simply not enough for everyone. And the assumption is that if I give, I will be left wanting. Paul reminds us that all we have comes from God, who wants to enrich us “in every way so that [we] can be generous”(2 Corinthians 9:10–11). The math of heaven isn’t a calculation of scarcity but of abundance. We can share joyfully because God promises to care for us even as we are generous to others. [Lisa Samra] 나누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 앞에 있는 것들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 더 쉽습니다. 아마 우리는 헤아려보고 나서 나누어줄 만큼 충분하지 않다고 이유를 댈 것입니다. 그리고 남에게 주고 나면 내가 부족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이 “[우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상기시켜줍니다(고후 9:10-11). 천국의 계산법은 풍부함의 셈법이지 부족함의 셈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남에게 넉넉하게 베풀더라도 부족함이 없도록 우리를 돌보아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즐겁게 나눌 수 있습니다. [ Our Daily Bread 20180219 "Not Enough?" ] [ 오늘의양식 20180219 "충분하지 않나요?" ]

Fleeing to Strength 주님의 능력에로의 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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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mediate action guards against compromise. Small compromises can lead to devastating defeats. An unrestrained thought, a glance in the wrong place on the Internet, a flirting friendship when you’re already married—each are steps that take us where we shouldn’t go and put distance between us and God. When we flee temptation, God also provides a place to run. Through Jesus’s death on the cross for our sins, He offers us hope, forgiveness, and a new beginning—no matter where we’ve been or what we’ve done. When we run to Jesus in our weakness, He sets us free to live in His strength. [James Banks] 즉각적인 행동은 타협을 방지해줍니다. 작은 타협도 치명적인 패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무절제한 생각, 나쁜 인터넷 사이트 잠깐 보기, 이미 결혼 했음에도 유혹하는 친구관계 등, 이런 것들은 모두 우리가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거리를 두게 만드는 발걸음들입니다.   우리가 유혹을 피해 도망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도망할 곳을 마련해주십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주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었고 또 무엇을 했더라도 우리에게 소망과 용서,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주십니다. 우리가 약한 중에 예수님을 향해 달려갈 때, 주님은 우리를 주님의 능력 안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게 해주십니다. [ Our Dail...

The Advance Team 선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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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 in the midst of our own dark hours, we can trust Him to lead us forward to a place of goodness. As we walk with Him, we too will learn to trust increasingly in His faithfulness. [Kirsten Holmberg] 우리 자신의 어두운 시간들 가운데서도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선한 곳으로 이끌어주실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동행할 때, 우리 역시 주님의 신실하심을 점점 더 신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Our Daily Bread 20180214 " The Advance Team 선발대" ]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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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부모가 어린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욱 사랑해서 그분의 자녀들을 손바닥에 새기고 또한 앞에 있는 성벽을 늘 지켜볼 정도로 잊지 않으신다(이사야 49:15-16절). 사랑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랑을 모르고 사랑을 믿지 않는 것이 문제다. 성도의 고난과 시련은 하나님이 그를 버리신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께 더욱 가까워지라는 은혜의 통로다. 하나님은 적절한 때에 회복의 은혜를 허락하신다(이사야 49:17절). 힘들어도 소망을 품고 감사하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소망과 행복의 원천이다. 구름 너머에 태양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암담할 때도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다시 벌떡 일어나 꿈과 비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하나님의 생기가 내면에 유입되면 헛된 자아로부터 해방되어 남을 사랑하는 여백이 생기고 참된 감사가 나온다. 주식과 집값과 땅값이 올라서 감사하지 말고 욕심으로부터 해방되어 매일 삶의 신비를 맛보고 누군가의 이웃이 되어주려는 마음을 가진 것으로 인해 감사하라.  살다 보면 큰 고난을 만나 앞이 캄캄해질 때도 있고 절실했던 도움을 받지 못해 하나님이 없으신 것처럼 생각될 때도 있다. 또한 예수 정신으로 살아도 열매와 보상이 별로 없는 것 같은 때도 있다. 예수 정신으로 살면 십자가의 길로 가는 것이기에 더욱 고독을 느낄 수 있다. 그런 고독한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나님이 여전히 사랑이라고 믿을 수 있는가? 그런 질문이 생길 때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고독을 생각하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 깊은 고통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결코 실족하지 말라. 성도에게 고통과 고독은 그를 하나님께 더욱 단단히 붙들어 매는 기회다. 믿음 안에 있으면 넘어지는 곳이 오히려 일어서는 곳이 되고 많이 넘어질수록 더욱 영적으로 부쩍 성장한다. 때로 인생의 밤이 찾아와도 믿음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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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면서 내 뜻과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너무 실망하지 말라. 감사하는 믿음 안에 있으면 결국은 더욱 좋은 것을 얻는다. 나의 뜻에 몰입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나의 계획이 이뤄지지 않을 때 하나님은 더 좋은 계획을 구상해 펼쳐주신다. 모든 일과 모든 길을 다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 이해가 안 되는 일이 생겨도 사랑의 하나님이 나의 모든 길을 가장 선하게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가지라.  실망스럽고 불공정하고 이해되지 않는 일을 만나면 낙심되지만 그때도 하나님은 멋지게 일하신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후퇴 같아도 나중에 보면 전진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나의 축복 계획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의 축복 계획에 동의하는 믿음을 가지라. 사랑의 하나님은 나를 손바닥에 새겨놓고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로 품어주시고 내 모든 발걸음을 인도하신다. 실망되고 부당한 것 같은 일도 복 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 하에 펼쳐진 일이다.  어떤 사람은 묻는다. “목사님! 왜 이런 상처와 시련을 겪어야 합니까?” 그때 필자는 가끔 심오하게 대답한다. 그 심오한 대답이란 “저도 잘 몰라요.”라는 대답이다. 시련의 이유는 잘 몰라도 사랑의 하나님이 성도의 발걸음을 선하게 인도하신다는 사실만은 알라.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새롭게 일어나 믿음으로 전진하면 잘못된 일 이상의 놀라운 보상을 허락하실 것이다.  힘들면 가끔 하나님께 탄원한다. “하나님! 지금 저를 기억하시나요?” 왜 그를 기억하지 못하겠는가?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를 결코 잊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잃지 말라. 하나님이 시련과 기도제목을 주시는 것은 망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른 길로 가게 하기 위해서다.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망각하지 말라. 슬픈 일은 잘 잊어버리되 받은 축복은 오래 기억하고 감사하라.  힘든 일이 생기면 하나님의 은혜를 더 기억해내라. 어떤 병에 걸렸든지, 어...

삶 자체를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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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스타시스의 믿음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행동가가 되게 해서 멋진 작품 인생도 만들지만 그 믿음이 커지면 삶 자체를 감사하면서 범사에 감사하게 된다.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은 최고의 믿음이다. 하나님이 나를 귀하게 여기고 지켜주시는 것도 감사하지만 기본적으로 자기 존재와 삶 자체로 인해서 감사하라. 수많은 감사제목 증 지금 건강하게 잘 살아있는 것 자체가 최대의 감사제목이다. 살아있기에 매일 가족을 보고 매주 교우를 볼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인생에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살아있음의 감격을 잠재우지는 못한다.  마가복음 8장 36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생명보다 큰 것은 없다. 책임적인 존재라면 아무리 큰 문제가 닥쳐도 그 문제로 인생을 비관하지 말라. 살아있기만 하면 축복과 반전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기회가 있는 것이 축복이다. 가장 중요한 생명을 남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만 잃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앞길을 멋지게 열어주실 것이다.  현재 힘들어서 기뻐할 일이 없다고 하지 말고 현재의 삶 자체를 기뻐하라. 사형수가 남긴 수기들을 보면 구구절절 삶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특히 극적으로 사형을 모면한 사람의 글을 보면 삶의 감격이 더욱 생생히 느껴진다. 그에게는 숨 쉬는 호흡마다 감격이고 내딛는 발걸음마다 감격이다. 살아있기만 하면 자신의 위대성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까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과 특권인지 모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반역죄로 총살되기 1분 전에 황제의 특사로 살아났다. 그는 나중에 수기에서 살아난 감격을 이렇게 적었다. “3천년을 노예로 살아도 좋다. 아니 외로운 섬에서 영원히 살아도 좋다. 다만 살아있기만 하면 된다.” 그 고백처럼 살아있기만 하면 된다. 살아있기만 하면 축복과 재기와 반전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어떤 문제도 생명보다 크지...

믿음을 뜻하는 3가지 헬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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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은 과정을 생략하고 기적과 복을 단번에 얻으려는 기복주의가 아니다. 기독교 믿음을 오해해서 일확천금의 기적을 노리며 살지 말라. 믿음이 무엇인가? 헬라어에는 믿음을 뜻하는 3가지 단어가 있다. 1. 피스토스(πιστος)  ‘피스토스(πιστος)’란 ‘염려하는 감정을 버리고 의지적으로 기뻐하는 힘’을 뜻한다. 본문 22절에서 예수님은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신앙생활에서 죄가 아닌 것 같지만 죄가 있다. 그것은 염려다. 염려는 불신의 결과로 생긴다. 결국 믿음이란 염려하지 않는 것이다. 왜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가? 들풀도 입혀주시는 하나님께서 들풀보다 귀한 성도를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이다(눅 12:28절). 또한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잘 아시기 때문이다(눅 12:29-30절).  염려는 습관적이고 감정적인 것이다. 피스토스의 믿음은 감정대로 살지 않는 것이다. 힘들 때 감정과 기분과 환경대로 살지 말고 믿음으로 살라. 염려되는 일이 있어도 염려에 빠지지는 말라. 염려에 빠지면 더 비관적인 생각이 든다. 그때 염려를 떨쳐버리고 이렇게 믿음의 고백을 하라. “집사님! 괜찮아요.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앞으로 더 좋아질 겁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감사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렇게 좋게 말해버리면 신비하게 영적인 파동이 변하면서 생각도 좋게 바뀌고 환경도 좋게 바뀐다. 2. 후포스타시스(υποστασις)  ‘후포스타시스(υποστασις)’란 ‘미래에 이뤄질 일을 예감하고 여는 힘’을 뜻한다. 믿음은 ‘실상과 증거’를 소유하게 함으로 한발 빠른 인생을 만든다(히 11:1-2). 한발 빠른 안목을 가진 사람이 크게 성공한다. 그의 성공을 보고 뒤늦게 많은 사람들이 따라가지만 뒤늦게 따라가는 사람에게는 성공의 문이 크게 좁아진다. 그러면 뒤따라가는 사람은 탄식한다. “저 사람은 저렇게 길이 잘 열려 성공하는데 왜 나는 이렇...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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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당한 청탁은 대개 미래의 배신을 낳는다. 누군가에게 부당한 청탁을 하면 자신의 인성과 인격도 깎이지만 자신의 청탁을 들어준 사람에게 얽매이면서 자유와 떳떳함을 잃는다. 부당한 청탁을 하면 나중에 그 청탁을 들어준 사람이 거꾸로 부당한 청탁을 할 때 꼼짝없이 들어주어야 한다. 그때 안 들어주면 배신자가 되는 셈이다. 결국 부당한 청탁을 하면 배신자의 길을 가거나 부정에 연루되는 길로 갈 가능성이 커진다. 그런 청탁을 죄의식 없이 행하던 것이 지금 전환기 시대의 한국 사회에 각종 진통을 낳고 있다.  배신이 없는 삶을 원하면 청탁하지 말라. 공짜 점심은 없다. 순수하게 남을 힘써 돕고 반대로 순수하게 남이 도우면 기꺼이 도움 받으라. 다만 부정한 청탁은 하지 말고 특혜가 될 것 같으면 부탁조차 삼가라. 부탁할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부탁하라. 성도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마 16:19). 믿음의 기도는 축복의 열쇠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정정당당히 스스로 일어서려고 해야 하나님께서 기회의 문도 열어주시고 자발적으로 돕는 사람도 붙여주신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The Problem with Pride 자만심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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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who achieve an extraordinary level of fame or reputation while they are still alive are often called “a legend in their own time.” A friend who played professional baseball says he met many people in the world of sports who were only “a legend in their own mind.” 살아 있는 동안 대단한 수준의 명성이나 평판을 얻은 사람들은 흔히 “그 시대의 전설”이라고 불립니다. 프로야구 선수였던 한 친구는 스포츠계에서 단지 “자신의 마음속에서만 전설”인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고 말합니다. Pride has a way of distorting how we see ourselves while humility offers a realistic perspective.  The writer of Proverbs said, “Pride goes before destruction, a haughty spirit before a fall”(16:18). Viewing ourselves in the mirror of self-importance reflects a distorted image. Self-elevation positions us for a fall. 겸손은 우리 자신을 보는데 사실적인 관점을 제공해주는 반면, 자만심은 그것을 왜곡해서 보여줍니다.  잠언의 기자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16:18)라고 했습니다. 교만의 거울에 비쳐 보이는 우리 자신의 모습은 왜곡된 이미지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높이는 것은 우리를 넘어지게 만듭니다. The antidote to the poison of arrogance is true humility that comes from God. “...

A Blanket for Everyone 모두를 위한 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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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us Van Pelt, better known as simply “Linus,” was a mainstay in the Peanuts comic strip. Witty and wise, yet insecure, Linus constantly carried a security blanket. We can identify. We have our fears and insecurities too. 간단히 “라이너스”로 더 잘 알려진 라이너스 밴 팰트는 〈피너츠〉라는 코믹 연재만화의 주요 등장인물입니다. 재치 있고 현명하지만, 한편 불안정한 라이너스는 항상 안정감을 주는 담요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우리 모습도 그와 같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두려움과 불안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Have you ever needed that kind of “blanket”? I have! After saying or doing something I later regretted, I have felt the chilly draft of guilt and shame. I have needed to be “covered” in the manner that Jesus covered disgraced, shame-filled people in the Gospels. To followers of Jesus, love is a blanket to be graciously and courageously given away for the comfort and reclamation of others. As recipients of such great love, let us be givers of the same. [Arthur Jackson] 혹시 당신도 그런 종류의 “담요”가 필요한 적이 있었습니까? 나에게는 있었습니다! 나중에 후회가 되는 어떤 말과 행동을 한 후에, 나는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차가운 기운을 느꼈었습니다. 예수님이 복음서에서 수치스럽고 부끄러움으로 가득...

Praising Through Problems 고난 중에 찬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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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cancer.” I wanted to be strong when Mom said those words to me. But I burst into tears. You never want to hear those words even one time. But this was Mom’s third bout with cancer. After a routine mammogram and biopsy, Mom learned that she had a malignant tumor under her arm. Though Mom was the one with bad news, she had to comfort me. Her response was eye-opening for me: “I know God is always good to me. He’s always faithful.” Even as she faced a difficult surgery, followed up by radiation treatments, Mom was assured of God’s presence and faithfulness. How like Job. Job lost his children, his wealth, and his health. But after hearing the news, Job 1:20 tells us “he fell to the ground in worship.” When advised to curse God, he said, “Shall we accept good from God, and not trouble?”(Job 2:10). What a radical initial response. Though Job later complained, ultimately he accepted that God had never changed. Job knew that God was still with him and that He still cared. For mos...

자신을 대견스럽게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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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pixabay ] 이사야 49:4-7 어떻게 메시야가 맡겨진 사역을 잘 감당했는가? 하나님 안에서 강한 자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메시야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품으로 이끄는 목적을 이루려고 할 때 하나님은 메시야를 영화롭게 하고 힘이 되어주셨다(5절). 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는가? 이스라엘을 이방의 빛으로 삼아 온 인류에게 구원을 전하기 위해서였다(6절). 그런 구원의 역사를 보고 마침내 열방 사람들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경배한다(7절).  이 구절에 묘사된 메시야의 모습은 복된 삶을 살려면 하나님 안에서 강한 자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나를 이 땅에 보냈다는 의식을 가지고 자신을 가치 있게 보라. 그때 하나님은 그를 영화롭게 하고 그의 힘이 되어주신다. 왜 사람이 실망하고 비관하는가? 자기 가치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자주 죽고 싶다고 하던 청년에게 애인이 생겼다. 그때부터 죽고 싶다는 말이 쑥 들어갔다. 자신의 가치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 후 둘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 그러자 죽고 싶다는 말이 더 없어졌고 오히려 “이 아이를 두고 죽을 수 없어.”라고 했다. 70억 인류 중에서 그 아이를 아가페의 사랑으로 키울 사람은 자기 밖에 없음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치를 깊이 인식하면서 도저히 죽을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하찮은 물건도 주인이 귀하면 귀해진다. 같은 벼루도 세종대왕이 썼던 벼루는 보물이고 같은 만년필도 링컨이 썼던 만년필은 보물이다. 물건 자체가 귀해서가 아니라 물건의 주인이 귀하기 때문이다. 성도는 자신의 주인이 존귀하신 하나님이시에 자기를 더욱 가치 있게 봐야 한다. 그런 의식을 가지면 본문 5절의 고백이 나온다.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  자신을 가치 있고 대견스럽게 보고 함부로 살지 말라. 요즘 자살이 빈번해졌다. 누가 싫다고 ...

How to Change a Life 삶을 바꾸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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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우리의 삶은 다른 사람들의 강력한 영향으로 순식간에 바뀔 수 있습니다. 로큰롤 음악의 전설 브루스 스프링스틴에게는, 그것은 힘들었던 유년기와 끊임없는 우울증과의 싸움을 거치는 동안 그를 도와주었던 음악가들의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진실, “알맞은 노래로 3분 안에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자신의 작업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Sometimes our lives can change in a moment through the powerful impact of others. For rock ’n’ roll legend Bruce Springsteen, it was the work of musical artists that helped him through a difficult childhood and a persistent struggle with depression. He found meaning in his own work through the truth he’d experienced firsthand, that “You can change someone’s life in three minutes with the right song.” 마음을 사로잡는 노래처럼, 누군가의 정선된 말은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도 있고, 심지어 우리 삶의 과정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꿔주었던 선생님의 말씀이나, 자신감을 회복시켜 준 격려의 말들, 힘든 시간을 견디게 해준 친구의 따뜻한 말들처럼, 나는 우리 대부분이 우리의 삶에 영원한 영향을 준 대화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Like a compelling song, others’ well-chosen words can also give us hope, even change the course of our lives. I’m sure most of us could share stories of a conversation ...

최상의 날을 꿈꾸며 열심히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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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pixabay 무료 일러스트 ]  하나님의 자녀는 늘 희망 가운데 살아야 한다. 아직 내게 최상의 날은 오지 않았다. 최상의 날을 꿈꾸며 열심히 살라.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루가 지날 때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몇째 날이다.”라는 기록이 반복된다. 일반적인 하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지만 성경적인 하루는 저녁에 시작해서 아침으로 끝난다. 성경적인 하루는 처음보다 나중이 좋아지고 앞으로 더 좋은 날이 펼쳐질 성도의 삶을 상징한다.  오늘은 실패했어도 내일은 승리할 것이고 지금은 어두운 인생길을 걸어가도 내일은 찬란한 아침햇살이 펼쳐질 것이다. 어떤 어둠 중에도 절망하지 말라. 왜 열심히 믿고 봉사했는데 어둠이 계속되느냐고 하지 말라. 믿음은 투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삶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꿈에 동참하는 것이다. 복이란 수익에 너무 관심을 두지 말라. 밤도 품고 살겠다고 하라. 어두운 밤일수록 별빛이 더욱 빛나듯이 삶이 어두울수록 더욱 빛나는 믿음을 가지라. 인물은 어두운 시대에 나온다. 인격도 어두운 때에 나온다.  이사야는 장래에 고레스란 인물이 천하를 제패하고 그의 도움으로 이스라엘은 해방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예언이 선포된 지 170년 후 고레스는 메대의 속국인 안산이란 소국에서 감비세스 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왕이 되자 메대를 격파하고 바사를 세운 후 전 소아시아와 바벨론까지 정복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겨 해방시키고 보화를 주면서 성전을 재건축하는 일까지 도와주었다. 누가 그 일을 이루셨는가? 고레스가 이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고레스를 통해 이루셨다(3절).  시대가 어두울수록 하나님이 쓰시는 인물이 반드시 나타난다. 아무리 연약해 보여도 하나님이 붙들어주시면 고레스처럼 영향력 있는 강력한 인물이 될 수 있다. 또한 아무리 해결이 힘든 문제도 하나님이 한번만 도와주시면 순식간에 해결될 수 있다. 시대가 어둡게 되면 고레스가 기다려진다. 한국 교회에...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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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ODYSSEY "Who am I" ]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 (이사야 43장 18-19절) < 새롭게 결단하라 >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시겠다고 했다(19절). 그때 전제조건이 있다. 그것은 이전 일을 기억하지 않고 옛적 일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18절). 새로운 역사를 원하면 자신도 과거의 일을 털어버려야 한다. 광야에 길이 생기고 사막에 강이 생기는 기적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 거룩한 비전을 따라 새롭게 결단해야 한다. “앞으로 내 가정, 직장, 사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열심히 선교하며 살리라.”  인생은 선택이고 결단이다. 결단을 잘 내리면 결딴나지 않고 결단을 잘 내리지 않으면 결딴난다. “언젠가 하나님이 쓰시겠지.”라고 생각하지 말라. 결단할 때는 내일이나 언젠가 하지 말고 지금 하라. 환경을 탓하지 말라. 진짜 탓해야 할 것은 결단이 없는 것이다. 인생의 역풍을 순풍으로 만드는 첫 걸음이 선한 결단을 하는 것이다.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자기 위치를 분명히 세우라. 온유와 우유부단은 다른 것이다. 우유부단한 태도나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태도를 버리고 “내가 왜 이곳에 있을까? 여기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고 자기 정체성을 굳게 확립하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찬송을 받으시려고 이 땅에 우리를 보내셨다(21절). 분명한 사명의식과 정체성이 있어야 그때부터 인생은 오르막길이 된다. 사람은 정체성이 분명한 만큼 강해지고 담대해지고 넉넉해지고 복된 인생이 된다.  왜 시련이 생기는가? 시련은 우유부단을 버리라는 중요한 신호다. 우유부단은 축복된 길을 막는 제일 대적이고 죄가 아닌 것 같은 죄다. 자기 가능성을 크게 사장시키기 때문이다. 시련 중에도 정체성을 확립하지 않으면 시련은 계속된다. 정체성이 없는 매력 없는 인생에게는 축복과 성공도 찾아오지 않는다. 역전 인생을 원하면 “내가 누구인가? 왜 여기에 있는가?”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