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자체를 감사하라





 아나스타시스의 믿음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행동가가 되게 해서 멋진 작품 인생도 만들지만 그 믿음이 커지면 삶 자체를 감사하면서 범사에 감사하게 된다.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은 최고의 믿음이다. 하나님이 나를 귀하게 여기고 지켜주시는 것도 감사하지만 기본적으로 자기 존재와 삶 자체로 인해서 감사하라. 수많은 감사제목 증 지금 건강하게 잘 살아있는 것 자체가 최대의 감사제목이다. 살아있기에 매일 가족을 보고 매주 교우를 볼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인생에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살아있음의 감격을 잠재우지는 못한다.

 마가복음 8장 36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생명보다 큰 것은 없다. 책임적인 존재라면 아무리 큰 문제가 닥쳐도 그 문제로 인생을 비관하지 말라. 살아있기만 하면 축복과 반전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기회가 있는 것이 축복이다. 가장 중요한 생명을 남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만 잃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앞길을 멋지게 열어주실 것이다.

 현재 힘들어서 기뻐할 일이 없다고 하지 말고 현재의 삶 자체를 기뻐하라. 사형수가 남긴 수기들을 보면 구구절절 삶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특히 극적으로 사형을 모면한 사람의 글을 보면 삶의 감격이 더욱 생생히 느껴진다. 그에게는 숨 쉬는 호흡마다 감격이고 내딛는 발걸음마다 감격이다. 살아있기만 하면 자신의 위대성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까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과 특권인지 모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반역죄로 총살되기 1분 전에 황제의 특사로 살아났다. 그는 나중에 수기에서 살아난 감격을 이렇게 적었다. “3천년을 노예로 살아도 좋다. 아니 외로운 섬에서 영원히 살아도 좋다. 다만 살아있기만 하면 된다.” 그 고백처럼 살아있기만 하면 된다. 살아있기만 하면 축복과 재기와 반전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어떤 문제도 생명보다 크지 않다. 내 생명에 대해서 감사하고 내 가족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감사하라. 가끔 가족들끼리 다퉈서 마음의 고통이 있어도 그런 가족이 있기에 삶이 고맙고 풍성해진다.

 옛날에 인천에서 목회할 때 어떤 일 때문에 서울로 가는데 아내가 말했다. “당신이 살아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해요. 그 하나만 가지고도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가 큰지 몰라요.” 그 말을 듣고 기분 좋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예수님을 믿는 상태에서 살아있는 한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내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오래 전에 첫째 딸 은혜가 2살이었을 때 아침에 비몽사몽간에 꿈을 꾸었다. 그 꿈에서 아내는 어딘가 우주로 멀리 사라진 채 첫딸 은혜와 해변을 거니는 꿈을 꾸었다. 그때 분위기가 슬프고 우울하고 외롭고 비참했다. 그 비참한 감정이 잠자면서도 느껴졌다. 그런데 꿈에서 깨어보니까 아내가 옆에 변함없이 살아있었다. 그때 안도감이 들면서 너무나 행복했다.

 꿈은 그대로 될 때도 있고 반대로 될 때도 있다. 꿈의 해석은 예수님이 좌우한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좋은 꿈은 그대로 되고 나쁜 꿈은 반대로 된다. 아내가 사라진 꿈을 꾸고 불길하다고 믿음 없이 행동하면 불길하게 되겠지만 “이 꿈은 아내의 소중함을 알라는 꿈이구나.”라고 믿음으로 행동하고 조금 더 아내를 이해하려고 하니까 꿈과 반대로 되어서 그때부터 부부관계가 더 좋아지고 가정이 행복해져서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좋은 꿈과 나쁜 꿈은 따로 없다. 예수님 밖에 있으면 좋은 꿈도 나쁜 꿈이지만 예수님 안에 있으면 나쁜 꿈도 좋은 꿈이다. 초상나는 꿈과 같은 불길하다는 꿈도 예수님 안에 있으면 그 꿈을 계기로 더욱 겸손해져서 그 꿈이 인생 최대의 길몽이 된다. 악덕 대부업자 스크루지 영감도 저승 유령을 만나는 꿈 때문에 인생이 바뀌었다. 결국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살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삶 자체에 대해 감사하는 삶을 기초로 삼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사명적인 삶을 살라. 본문 31절에서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말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라.”는 뜻도 있고 “마음의 천국을 이루며 살라.”는 뜻도 있다. 그러면 의식주는 자연히 따라온다. 왜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셨고 현재 하는 일을 하게 하셨고 현재 섬기는 교회를 섬기게 하셨는지를 깊이 생각하며 살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내 일과 길과 손길을 통해 보다 많은 영혼을 구하는 것에 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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