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뜻하는 3가지 헬라어
믿음은 과정을 생략하고 기적과 복을 단번에 얻으려는 기복주의가 아니다. 기독교 믿음을 오해해서 일확천금의 기적을 노리며 살지 말라. 믿음이 무엇인가? 헬라어에는 믿음을 뜻하는 3가지 단어가 있다.
1. 피스토스(πιστος)
‘피스토스(πιστος)’란 ‘염려하는 감정을 버리고 의지적으로 기뻐하는 힘’을 뜻한다. 본문 22절에서 예수님은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신앙생활에서 죄가 아닌 것 같지만 죄가 있다. 그것은 염려다. 염려는 불신의 결과로 생긴다. 결국 믿음이란 염려하지 않는 것이다. 왜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가? 들풀도 입혀주시는 하나님께서 들풀보다 귀한 성도를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이다(눅 12:28절). 또한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잘 아시기 때문이다(눅 12:29-30절).
염려는 습관적이고 감정적인 것이다. 피스토스의 믿음은 감정대로 살지 않는 것이다. 힘들 때 감정과 기분과 환경대로 살지 말고 믿음으로 살라. 염려되는 일이 있어도 염려에 빠지지는 말라. 염려에 빠지면 더 비관적인 생각이 든다. 그때 염려를 떨쳐버리고 이렇게 믿음의 고백을 하라. “집사님! 괜찮아요.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앞으로 더 좋아질 겁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감사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렇게 좋게 말해버리면 신비하게 영적인 파동이 변하면서 생각도 좋게 바뀌고 환경도 좋게 바뀐다.
2. 후포스타시스(υποστασις)
‘후포스타시스(υποστασις)’란 ‘미래에 이뤄질 일을 예감하고 여는 힘’을 뜻한다. 믿음은 ‘실상과 증거’를 소유하게 함으로 한발 빠른 인생을 만든다(히 11:1-2). 한발 빠른 안목을 가진 사람이 크게 성공한다. 그의 성공을 보고 뒤늦게 많은 사람들이 따라가지만 뒤늦게 따라가는 사람에게는 성공의 문이 크게 좁아진다. 그러면 뒤따라가는 사람은 탄식한다. “저 사람은 저렇게 길이 잘 열려 성공하는데 왜 나는 이렇게 재수가 없을까?” 그러나 재수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 부족해서 한발 뒤처지는 것이 문제다.
어떤 책이 히트하면 그 다음에 비슷한 제목의 책을 내도 대개 첫 번째 책만큼 히트를 치지 못한다. 내용이 못해서가 아니라 한발 늦은 상태에서 짝퉁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한발 빠른 것과 한발 늦은 것이 큰 차이를 만든다. “사람이 5분 앞을 정확히 내다보면 2주 안에 전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한발 빠른 힘은 어떤 힘보다 큰 힘이다. 역사는 늘 먼저 예감해 어떤 길을 선택해서 가는 환상이 있는 자의 편이 되었고 그에 의해 움직였다.
3. 아나스타시스(αναστασις)
‘아나스타시스(αναστασις)’란 ‘부활의 능력을 입어서 일어나는 힘’을 뜻한다. 부활의 믿음은 말씀대로 사는 ‘행동가’를 만든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기대하고 기도하고 시도하라. 조심할 필요는 있지만 조심주의자는 되지 말라. 조심주의자가 역사의 주역이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실패는 담대한 모험보다 지나친 조심 때문인 경우가 훨씬 많다. 무엇인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고 일어서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할 수 있는 힘과 능력도 주시고 기회와 지혜와 사람과 환경도 주신다. 필요하다면 기적도 주신다.
필자는 1996년 대학에서 신학영어를 가르칠 때 4개월간의 기도 끝에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네트영어>의 방대한 원리를 쑥 머리에 넣어주셨다. 그때 <네트영어>가 최고의 영어 공부 방법이라고 확신했지만 “목회자가 무슨 영어냐?”라는 생각과 시선 때문에 1997년 말 분당으로 목회지를 이전하면서 목회에 전념하겠다고 강의 자리를 다 포기하고 <네트영어>의 비전도 한동안 접었다. 그 후 2007년에 미션센터 공간을 만들면서 공간 활용 차원으로 <네트영어> 프로그램을 약 3년간 시행했다.
약 3년간 프로그램을 시행할 때 상당히 잘 시행되었지만 필자의 체력에 한계를 느껴서 <성경 전권강해>에 선택 집중하면서 <네트영어>의 비전에 잠시 휴지기를 가지고 있다. 앞으로 때가 되면 <네트영어>의 비전도 꽃필 때가 올 것이다. 신령함의 개념을 바꾸라.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가지고 영혼을 구원하고 변화시키고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신령함이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잘할 수 있는 텐트 만드는 일을 통해 여비와 생활비를 벌면서 선교했지만 그가 신령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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