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을 이겨내는 방법
본문말씀 : 창세기 39장 7-18절
7.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10.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 끝까지 진실하기를 힘쓰라 >
2년 전 이탈리아 여성 배우 겸 영화감독 아시아 아르젠토가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에게서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해 “나도 당했다.”고 하며 자기를 밝히는 미투(Me too) 운동을 촉발시켰다. 그 미투 고백으로 와인스틴은 인간쓰레기 성 범죄자로 낙인찍혔다. 피해당한 여성은 100명 이상으로 배우, 영화사 직원, 모델을 가리지 않고 성희롱과 성추행과 성폭행을 자행했지만 워낙 그가 거물이었기에 피해자들은 향후 커리어에 지장이 될까봐 그 사실을 숨겼다.
와인스틴은 유명한 남성 페미니스트 중 하나였는데 평소에 그의 페미니즘 옹호 발언을 언론 등을 통해 접하면서 여성 피해자들은 얼마나 그 위선에 치를 떨었겠는가? 그 미투로 인해 할리우드는 큰 충격에 빠졌다. 그는 할리우드의 거물급 제작자였기에 클린턴 부부 및 오바마 부부와도 친분이 두터웠고 오바마의 딸이 그의 영화사에서 인턴을 해서 민주당까지 불똥이 튀었다. 또한 아르젠토로 인해 전 세계적인 미투 운동이 연예계에서 정치계까지 번졌다.
아르젠토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21살 때 와인스틴에게 강제로 성폭행을 당했고 그 후로 악몽에 시달렸다고 고백했다. 그녀가 오랫동안 그 사실을 숨긴 이유는 그가 자기 요구를 거절한 많은 배우들의 커리어를 망쳐버린 것을 알고 겁났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녀의 미투 고백은 세계적인 미투 운동을 불붙이는데 큰 공헌을 했지만 얼마 후 그녀도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어 인간이 내세우는 정의가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깨닫게 했다.
그녀의 미투 고백이 있은 지 얼마 후 뉴욕타임스는 그녀가 5년 전 캘리포니아의 한 호텔에서 당시 미성년 남자이던 지미 베넷을 성폭행했고 베넷에게 38만 달러(약 4억 원)를 주고 그 일을 무마하려 했다고 보도했다. 그녀는 미성년자였던 지미 베넷과의 성관계 사실을 인정했지만 성폭행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베넷은 9살 때 영화에서 그녀와 모자지간으로 출연했는데 그로부터 10년 후 그녀가 먼저 자신을 불러내 성폭행했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아르젠토는 사건 당일 베넷이 오디션 준비를 도와달라고 요청해 만났다가 먼저 자신을 유혹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모자지간으로 출연했던 영화 후 10년간 만남이 없어서 그가 미성년자인 것을 몰랐고 성관계 후 베넷이 은밀한 영상과 사진 등을 보내고 자신을 협박하면서 350만 달러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미투 운동을 촉발시킨 여성이 미투 당한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미투 고백에 거짓과 왜곡이 있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한 쪽의 말만 듣고 공분에 사로잡히면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게 되고 그때 언론이 대서특필을 하면 공분이 증폭되면서 시청률이나 구독률이 크게 올라간다. 그러면 오히려 진짜 진실은 묻힐 수 있다. 그것이 세상과 인간의 한계다. 그래서 성경은 남에 대한 판단과 정죄를 쉽게 하지 말라고 곳곳에서 언급한다.
성경은 분노를 무조건 나쁘다고는 하지 않고 의로운 분노인 의분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예수님도 성전 청소와 관련해서 의분을 보이셨다. 다만 분노함에 있어서 자기 통제와 자기 절제를 잃으면 그것은 의분이 아니라 자기 의의 과시가 된다. 그때 사탄에게 틈을 내주게 된다. 항상 자신을 먼저 성찰하면서 여론에 무조건 휘둘리지 말고 끝까지 진실하기를 힘쓰라. 그래야 영혼도 지킬 수 있고 나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도 지킬 수 있다.
기본적으로 재판에서 내려진 판결은 승복해야 한다. 다만 그 재판 결과가 온전한 진실이 아닐 수 있다. 사람은 온전한 진실을 구현하기 힘들다. 권위가 부여된 판사의 판결을 부정하면 사회의 기본 틀이 무너지기에 그 판결에 승복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합의로 그 판결을 받아들이는 것일 뿐이다. 재판 판결도 틀릴 수 있는데 서로 주장이 다른 상태에서 재판 전에 한쪽 주장만 듣고 일방적으로 비난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미투 고백에는 자기 잘못을 가리거나 자기 과거를 감추려고 혹은 돈을 노리고 하는 왜곡된 미투나 거짓된 미투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피해자의 눈물과 감정이 증거입니다.”라고 하는 주장을 무조건 받아들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성경에도 거짓된 미투로 큰 고난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요셉이다. 그러나 요셉은 그 고난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다. 끝까지 진실하기를 힘쓰고 자기 연약함을 인정하며 겸손히 자기를 성찰하면 하나님은 고난 중에도 반드시 반전의 축복 기회를 주신다.
< 유혹을 이겨내는 방법 >
본문 앞 6절을 보면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는 말씀이 나온다. 예전의 개역성경에는 그 부분을 이렇게 표현했다.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그 표현을 보면 요셉은 외모도 탁월했지만 인품도 좋았다는 암시도 내포되어 있다. 요셉은 믿음도 좋았고 인품도 좋았고 인상도 좋았다. 좋은 인상이 좋은 인생을 만든다. 외모는 바뀌지 않지만 인상은 마음 씀씀이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요셉의 좋은 외모와 인상으로 인해 주인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집요하게 유혹하면서 생겨났다. 여주인은 처음에는 눈짓만 했지만 나중에는 동침을 청하기까지 했다(7절). 혈기가 넘치는 청년 때 여주인의 간절한 동침 요청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거절했다. 결국 요셉은 여주인을 희롱하려고 했다는 모함을 받아 옥에 갇혔지만 하나님은 결국 축복으로 함께 하셨다. 지금도 사탄은 보디발의 아내처럼 내 영혼을 무너뜨리려고 갖가지 유혹을 통해 찾아온다. 그 유혹을 이겨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마음의 각오를 굳게 하라
본문 9절을 보라.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27세의 청년 종이 왕의 시위대장 집의 최고 위치에 선 것은 요셉의 신실성과 충성심을 잘 말해준다. 요셉은 주인의 은혜를 배반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겠다는 굳은 각오를 피력했다.
마음의 각오를 굳게 하라. 그래도 내 영혼을 지키기 쉽지 않지만 요셉처럼 모든 죄는 하나님께 짓는 것이라고 여기고 유혹에 넘어가지 않겠다고 마음의 각오를 굳게 하면 하나님도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힘써 도와주실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에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스스로 굳게 선한 결단을 하는 자를 도와주신다. 진실한 자기 결단은 안수와 같은 다른 외부적인 어떤 도움보다 더 도움이 된다.
남의 도움을 너무 의지하지 말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다른 어떤 것보다 나의 선한 결단을 통해 주어진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목사님! 결단했는데 실천을 못하겠어요.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한 것 같아요.” 결단했으면 실천하고 더 이상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 그러나 현실적으로 결단한 대로 살지 못할 때도 많다. 그래도 선한 결단 자체를 포기하지 말라. 이전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새롭게 선한 결단을 하고 실천에 나서면 하나님이 그 마음을 기억하시고 유혹을 이겨낼 힘을 주실 것이다.
2. 유혹의 자리에 가지 말라
종으로서 여주인의 명령을 한 번 거절하기도 쉽지 않은데 날마다 동침하자고 청하니까 그 유혹을 물리치기는 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요셉은 아예 여주인과 함께 있지도 않았다(10절). 유혹으로부터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유혹이 있는 곳에 가지도 않는 것이다. 유혹과 싸워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예 그런 유혹에 노출되지 않도록 유혹 장소나 유혹 대상을 멀리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다른 유혹은 당당히 맞서서 대항해야 하지만 성적인 유혹에 대해서만은 “악한 유혹 마귀야! 물러가라.” 하고 맞서기보다 빨리 그 유혹 장소에서 도망치는 것이 좋다. 약하고 비겁해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내 곁에 어떤 사람을 두느냐에 따라 나의 인격과 행복과 미래가 달라지듯이 내가 어떤 장소에 있느냐에 따라서도 나의 인격과 행복과 미래가 달라진다.
열매 맺는 삶을 위해 떠나야 할 곳을 잘 떠나고 붙어있어야 할 곳에 잘 붙어있으라. 어디에 붙어있어야 하는가? 교회다. 교회와 작은 교회인 가정과 실천 교회인 일터에서 책임적인 존재로 있을 때 수많은 문제와 시험과 유혹을 이겨내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고난이 있고 상처를 입어도 교회에서 이탈하지 말고 꼭 붙어있으라. 피곤하고 힘들 때 “환경 때문이다, 누구 때문이다”라고 생각하기 전에 이렇게 생각하라. “내가 포도나무에 더 붙어있자.” 삶이 힘들면 그때를 더 하나님을 더 가까이하는 기회로 삼으라.
3. 말씀과 기도를 앞세우라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쳐 나가자 여주인이 집 사람들을 불러 무고했다(14-15절).” 또한 요셉의 옷을 곁에 두고 보디발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무고로 거짓된 미투 고백을 했다(17-18절). 그 거짓된 미투 고백을 접하고 요셉이 얼마나 기가 막혔겠는가? 고대에 종에 대한 미투 고백이 있으면 대개 종을 극형에 처했다. 결국 미혹과 미투를 잘 분별하지 않으면 한 사람의 생명을 억울하게 빼앗거나 산 채로 매장할 수 있다.
미투 증거로 내세운 것을 가지고도 쉽게 판단할 수 없다. 그녀는 요셉에 대해 미투 고백을 할 때 요셉이 도망치려고 벗어놓은 옷을 가지고 집 사람들과 보디발의 공분을 일으키는 미투 증거로 사용했다. 겉으로 보면 꼼짝 없이 걸리게 할 수 있는 미투 증거였지만 이면에는 전혀 다른 진실이 숨어있었다. 그처럼 먼저 유혹하고서 자기 뜻을 이루지 못해 자존심이 상하는 치욕으로 인해 거짓된 미투를 하고 자기 잘못을 증거하는 증거물을 남을 무고하는 증거물로 삼는 경우가 인간사에서는 종종 일어난다.
증거까지 내세워 하는 거짓된 미투 고백에 꼼짝 없이 당하면 요셉처럼 감옥에 가게 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너무 실망하지 말라.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시다. 때가 차면 혹은 천국의 삶까지 확장된 최종적인 의미에서 정의는 반드시 이뤄진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힘써 잘 지키려는 것이다. 남을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을 주의하라. 특별히 공분을 일으키는 것에 휘둘려 누군가에게 돌을 던지면 그것이 최종적으로는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것이 될 수 있기에 하나님께 분별의 은혜를 구하고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지혜롭게 잘 지키라.
사람은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사탄의 공격을 받는다. 언제 사탄이 공격할지 모르기에 늘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면 사탄의 웬만한 공격은 다 막아낼 수 있다. 전투 원리에 의하면 방어는 공격보다 쉽다. 방어자는 공격자의 절반의 힘만 가져도 이길 수 있다. 그 방어의 첫 단계가 경계다. 그래서 성경은 “깨어 있으라.”고 말씀한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지 않고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듣지 않고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가지 않으면서 매일 말씀과 기도를 앞세우며 살면 유혹자의 공격을 넉넉히 막아낼 수 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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