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자아상을 가지라

[ 렘브란트 : 예수의 초상 ]



본문말씀 : 출애굽기 13장 17-22절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20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 애굽을 온전히 떠나라 >

 성공적인 삶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애굽을 온전히 떠나는 일이다.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보낸 후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은 가까워도 하나님이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신 이유는 그 길로 갈 때 생기는 전쟁으로 후회하면서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나올까봐 염려하셨기 때문이다(17절). 그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어떤 일이 있어도 애굽으로 돌아가지 말라.

 가끔 신앙생활이 힘들다는 것을 느낀다. 진실한 믿음이 많은 유익을 준 것은 알지만 믿음 생활이 무거운 짐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도 애굽을 바라보지 말라. 때로 교회 생활을 하면서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나면 실망이 될 때도 있다. 그때 “그래도 교회가 좋다!”고 하고 세상으로 향하지 말라. 근본적인 성공은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것인데 그 근본이 흔들리면 다른 성공은 큰 의미가 없다.

 성공의 근본 개념을 분명히 하라. 성공은 부자가 되고 승진하고 성취하는 것과 같은 올라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성도는 세상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존재다. 사실상 삶에서 그처럼 성공적이고 복된 일은 없다. ‘거지에서 왕자로!’ 신분이 변하는 것이 복과 성공이지 ‘거지에서 부자로!’ 위치가 상승하는 것이 참된 의미의 성공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애굽으로 돌아가지 말라.

 복된 길에는 반드시 시련이 있다. 그 시련은 아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어떤 시험은 애굽과 같은 세상의 끈질긴 유혹으로 찾아오고 어떤 시험은 시기하고 질투하는 모습으로 찾아온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두려움이다.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자에게 복과 성공의 문을 열지 않는다. 그래서 먼저 두려움을 없애는 연단 과정을 허락하신다. 물론 그 연단 과정에는 희생이 따른다.

< 건전한 자아상을 가지라 >

 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인도했는가? 그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가나안의 성공을 취할 수 있다는 건전한 자아상을 가졌으면 광야의 시련은 없든지 그 시련 기간이 상당히 단축되었을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될 때가 많다. 자신이 메뚜기라고 생각하면 계속 메뚜기처럼 인생광야에 머물지만 어느 순간 긍정적인 자아상을 회복하면 광야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성도의 여정에 고난은 있지만 그 고난 중에 하나님은 어느 때보다 더욱 가까이해주신다. 하나님이 자녀들을 훈련할 때 광야로 돌게 하면서 그냥 내버리지 않는다. 훈련 과정으로 광야 기간을 잠시 허락하셨기에 그때 더욱 자상하게 인도해주신다. 때로는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친히 인도하신다(21-22절). 결국 성도의 시련은 하나님의 외면이 아니라 성공으로 나아가게 하려는 하나님의 훈련이다.

 무엇을 위한 훈련인가? 건전한 자아상을 가지게 하고 능력과 지혜와 용기를 얻게 하기 위한 훈련이다. 왜 그런 훈련과정을 거치게 하시는가? 나쁜 자아상을 없애기 위해서다. 나쁜 자아상으로 형성된 두려움은 가장 성공을 방해하는 요소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왜 도중에 포기하는가? 대개 문제 때문에 포기하기보다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는 것이다.

 결국 믿음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믿음이 있으면 남편의 귀가가 늦어질수록 사랑의 수온이 높아지지만 믿음이 없으면 남편의 귀가가 늦어질수록 이상한 생각이 든다. 믿음이 없어서 너무 똑똑한 것이 의심으로 발전하면 ‘불행한 똑똑’이 된다. 좀 미련해 보여도 믿으며 사는 사람에게 행복이 가까워진다. 사람은 믿는 만큼 평안을 누릴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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