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으로 돌아가라

 

[ 홍푸르메 : Again Tomorrow ]


본문말씀 : 느헤미야 8장 4-6절


4 그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고 그의 곁 오른쪽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의 왼쪽에 선 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 5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 말씀을 높이라 >

 수문 앞 광장 집회에서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섰을 때 그의 우편에는 6명의 리더들이 도열해 서 있었고 좌편에는 7명의 리더들이 도열해 서 있었다(4절). 그 장면을 보면 말씀을 높이고 경외하는 모습이 느껴진다. 그때 에스라가 두루마리로 된 하나님의 율법책을 펼 때 그곳에 모인 모든 백성이 일어섰다(5절). 그 모습도 말씀을 높이고 경외하는 모습으로서 무슨 말씀을 주시든지 순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내면이 새로워지길 원하면 자신에게서 말씀의 권위가 회복되게 하라. 또한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높이며 소중히 받으라. 말씀의 권위를 높이는 만큼 은혜의 수준도 높아진다. 참된 믿음은 말씀에 근거한 믿음이다. 이상한 신비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어느 날 기도 중에 말씀을 받았다.”라고 하면서 말씀에서 벗어난 얘기를 한다. 말씀에서 벗어난 말에 현혹되지 말라. 오직 말씀 안에만 참된 자유와 치유와 축복과 행복이 있다.

 가끔 어떤 설교자는 강단에 딱 서면 하나님이 말씀을 주신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그것은 별로 좋은 자랑거리가 아니다. 하나님은 성경 앞에 겸손하게 무릎 꿇어도 말씀을 주시고 책상에 앉아 묵상해도 말씀을 주신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사전에 준비도 없이 강단에 딱 서서 말씀을 받기만을 바란다면 위험한 일이고 게다가 그것을 자랑까지 한다면 그것은 신령한 모습이 아니라 어리석은 모습이다.

 엄밀히 말하면 준비 없는 설교는 죄악이고 기도와 땀이 농축되지 않는 설교는 말의 유희가 된다. 그것은 말씀을 가볍게 보는 태도다. 사람은 즉석에서 주일말씀을 전하는 것을 더 신령하게 보지만 하나님은 주초부터 말씀을 준비하고 전하는 것을 더 신령하게 보신다. 그처럼 말씀을 전하는 사람도 잘 준비해야 하지만 말씀을 받는 사람도 열린 마음을 잘 준비해야 한다. 말씀을 들을 때 그냥 듣기보다는 최소한 예배 10분 전에 와서 기도하며 “하나님! 오늘 말씀을 잘 받게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면 말씀이 더욱 은혜가 된다.

< 말씀으로 돌아가라 >

 에스라가 율법책을 읽기 전에 먼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자 모든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하며 반응했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했다(6절). “아멘!”이란 말은 “진실로 그렇습니다. 말씀대로 이뤄지길 바랍니다. 말씀대로 살겠습니다.”라는 다양한 뜻이 내포된 표현이다. 말씀에 “아멘!” 하고 열정적으로 반응했던 당시 백성들처럼 말씀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면 새로움의 가능성이 현저하게 커진다.

 어떤 교회는 ‘아멘 훈련’이 잘 되어 있다. 졸다가도 “할 줄 믿습니다!”라는 어투가 들리면 무조건 “아멘!”을 한다. 그러다가 엉뚱하게 “아멘!”을 할 때도 한다. 그래도 밉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 반응하는 모습이 좋게 보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제일 “아멘!”을 많이 하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말씀을 전하실 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란 말씀을 많이 하셨다. 그 말씀에서 ‘진실로’라는 말이 바로 ‘아멘’이란 말이다.

 모세도 말씀을 전하면서 백성들에게 아멘을 하라고 명령했다(신 27:16-26). 미국에 가면 흑인 교회는 대개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반응한다. 반면에 백인 교회는 대개 점잖게 예배를 드린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동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고 정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지만 말씀에 대한 반응만은 다 뜨거워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찌릿찌릿한 감정이 생긴다. 말씀을 들을 때도 그런 영적 감응이 있기를 구하라.

 한국 교회가 다시 사는 길은 한 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교회와 완벽한 성도는 없다. 사람을 너무 믿지 말라. 정직한 사람이 가끔 실수하는 것은 사람을 너무 믿는 것이다. 남이 뒤에서 딴 소리하는 것을 모른다. 사람은 믿을 대상이 아니다. 사람을 믿어주되 의존하는 믿음은 갖지 말라. 사람은 사랑의 대상은 될지언정 믿음의 대상은 아니다. 믿을 것은 말씀밖에 없다. 말씀으로 돌아가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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