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믿음을 가지라

 

[ 니콜라 푸생 : 하갈과 천사 ]


본문말씀 : 민수기 13장 30-33절


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1)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 문제를 과장하지 말라 >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후 가나안 땅으로 향할 때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의 상황을 탐지하려고 12명의 정탐을 보냈다. 그들은 40일 동안 정탐했다(25절). 가나안 땅을 남북으로 왕복하는 데 15일이면 충분한데 40일 동안 정탐했다는 말은 충분히 정탐했다는 뜻이다. 그들은 똑같은 땅을 탐지하고 똑같은 사람을 보았는데 그중 10명은 가나안 땅 정복이 불가능하다고 절망적인 보고를 했고 여호수아와 갈렙만 희망적인 보고를 했다.

 갈렙이 말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30절).” 연장자인 여호수아 대신 갈렙이 대표적으로 말한 것은 모세의 수종자 여호수아보다 갈렙이 객관적인 시각을 가졌다고 백성들이 여길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무엇이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희망적인 보고를 하게 만들었는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믿음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상황을 보는 것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현실에 하나님을 더해서 생각했다.

 믿음이 없으면 문제에 대한 과장을 하게 된다. 10명의 부정적인 정탐꾼은 말했다. “그들은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다(32절).”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과장한다. “큰 일 났어요.” 나중에 알고 보면 별로 큰 문제도 아닌데 왜 그렇게 문제를 과장하는가? 내가 어떤 일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이유를 댈 때 가장 잘 쓰는 방법이 그 문제가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가를 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를 입버릇처럼 크게 과장하면 나중에는 정말 그 문제를 큰 문제라고 믿기 시작하면서 자학에 빠진다.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는데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 같다(33절).” 지나친 자학과 열등감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이런 자학적인 말은 삼가라. “저 같이 못나고 못된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기도도 이런 자학적인 기도는 하지 말라. “하나님! 벌레만도 못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아무리 부족해도 나를 벌레만도 못하게 보지는 말라. 겸손도 너무 지나치면 또 다른 교만의 표시가 될 수 있다.

<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라 >

 좋은 날을 원하면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말하라. 사람은 꿈꾸고 생각하고 말한 대로 된다. 내 힘으로는 못해도 주님이 함께 하면 할 수 있다고 하면 정말 할 수 있게 된다. 반면에 입으로 “못한다. 안 된다. 죽겠다.”라고 하면 정말 못하고 안 되고 죽는 인생이 된다. 사람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의지적인 믿음의 고백이다. 그런 고백을 가지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반드시 꿈과 비전을 이뤄 주실 것이다.

 살다 보면 큰 장벽을 만날 때가 있지만 성도는 얼마든지 그 장벽을 극복할 수 있다. 문제 앞에서 이길 수 없다고 하면 이길 가능성이 낮아지지만 이길 수 있다고 하면 이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부정적인 생각과 말을 최대한 삼가라. 부정적인 말은 문제를 얽히게 하고 병을 들게 하지만 긍정적인 말은 문제를 풀리게 하고 병을 낫게 한다.

 어떤 말기 암 환자는 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고 말할 때마다 겸손하게 예쁜 말만 골라서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병문안을 왔다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돌아갔다. 얼마 후 그 환자가 병원에서 사라졌다. 죽은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 병이 기적적으로 나아서 퇴원한 것이었다. 긍정적인 생각과 말에는 놀라운 치유와 문제 해결의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만나도 근심에 사로잡히지 말라.

 사람의 근심 중 40%는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근심이고, 30%는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근심이고, 12%는 상상 속의 근심이고, 나머지 18%는 근심하지 않아도 될 일에 대한 근심이라고 한다. 근심은 거의 불필요한 것이란 뜻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긍정보다 부정을 좋아하지만 부정적이고 본능적인 다수의 편에 서지 말고 긍정적이고 의지적인 소수의 편에 서라. 부정보다는 긍정이 낫고 비관보다는 낙관이 낫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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