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리더가 되라
본문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2장 9-10절
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10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 눈앞의 계산을 버리라 >
옛날에 아버지를 떠올리면 권위적인 모습이 연상된다. 그러나 아버지는 권위주의와는 다른 의미의 권위(권면과 위로)에 탁월해야 한다. 자녀의 시험 점수가 나쁘면 어떤 아버지는 자기도 못했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게 점수냐! 나가 죽어라.” 그러면 자녀가 죽을 맛이다. 반면에 어떤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나도 옛날에 못할 때가 있었단다. 너무 실망하지 말라.” 얼마나 격려가 되는가? 그 말을 들으면 힘을 얻고 더 분발해서 인물이 된다.
요새 사람을 컨트롤하는 방법과 기술은 많이 개발되었다. 그러나 사람은 방법과 기술로 변화되지 않고 사랑으로 변화된다. 예전에 씨랜드 사건에서 유치원생 23명이 불에 타 죽을 때 그 중 18명이 한 방에서 전부 창가에 모여 있었다. 그때 아이들은 창문으로 나가면 사는 줄 알고 발버둥 치며 창문 앞에 모여 엄마를 불렀을 것이다. 그때 교사들은 새벽 1시에 모여 소주 파티를 하고 있었다. 교사 중 1명이라도 사랑으로 아이들과 함께 있었다면 그들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은 사랑으로 양육할 때 변화된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자녀처럼 사랑했다. 그런 사랑을 배워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주변에 좋은 교회로 소문이 났다. 당시 바울은 사랑하는 교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직접 텐트를 만들어 팔아 비용을 마련해 선교사역을 감당했다(9절).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폐가 되지 않으려는 자세는 영적인 리더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다. 좋은 리더가 되려면 계산적인 자세를 버리라.
오병이어의 기적은 ‘계산적인 빌립’을 통해서가 아닌 ‘계산을 초월한 안드레’를 통해 일어났다. 계산을 초월한 사람이 계산을 초월한 은혜를 입는다. 하나님은 계산적인 사람을 가장 싫어하신다. 사람도 싫어한다. 계산이 빠르면 하나님의 은혜는 더 늦어진다. 또한 계산에 집착하면 시야가 좁아져 그릇이 작아진다. 눈앞의 계산적인 삶을 버리고 인생 전체의 큰 계산을 할 줄 알라. 현재의 손해를 감수하며 눈앞의 성공이 아닌 전체적인 성공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좋은 리더가 된다.
< 좋은 리더가 되라 >
또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선교 팀이 거룩하고 옳고 흠 없는 모습이 되기를 힘썼는데 그것은 데살로니가 교인들도 다 인정할 정도였다(10절). 그가 도덕적으로 완벽한 존재는 아니었지만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책망 받을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바울에게도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그 부족함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겸손하게 행함으로 사람 앞에서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인정받는 존재가 되었다.
성도에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는 삶이란 도덕적인 일을 많이 완벽하게 행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죽도록 충성해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삶이다.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면 거룩하고 옳고 흠 없는 자세가 어그러진다. 오직 하나님이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충성하라. 왜 시험이 생기는가? 대개 보면 자기를 안 알아준다는 것 때문이다. 그러나 목숨까지 바쳐도 자기를 알아달라는 신앙은 이미 부실한 신앙이다.
미국에 있는 한 멋진 교회에는 의자들마다 기증자의 이름이 붙어 있다. 그 이름이 의자가 아닌 하나님의 마음에 새겨져야 한다. 왜 헌금하는가? 헌금은 습관대로 하는 것이나 남의 눈을 의식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되고 그 은혜에 압도되어서 하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것을 드려도 칭찬을 기대하지 말라. 자기가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드린 것이지 사람의 칭찬을 받으려고 드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헌신과 충성이란 자기가 받은 은혜의 분량만큼 나오는 것이기에 만약에 사람의 칭찬을 받으려고 헌신하고 충성했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성도는 자랑할 게 별로 없다. 오직 부족한 것뿐이고 하나님을 위해 못 죽어서 죄송한 것뿐이다. 성경에는 죽도록 충성하라고 했는데 아직도 못 죽어서 죄송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진짜 성도다. 충성하고 싶고 목숨까지도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결국 좋은 리더가 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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