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지속시키는 길

[ 신규인 화백 : 유월절 ]



본문말씀 : 민수기 33장 1-4절


1 모세와 아론의 인도로 대오를 갖추어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자손들의 노정은 이러하니라 2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 노정을 따라 그들이 행진한 것을 기록하였으니 그들이 행진한 대로의 노정은 이러하니라 3 그들이 첫째 달 열다섯째 날에 라암셋을 떠났으니 곧 유월절 다음 날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모든 사람의 목전에서 큰 권능으로 나왔으니 4 애굽인은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치신 그 모든 장자를 장사하는 때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신들에게도 벌을 주셨더라



< 은혜가 넘치게 하라 >

 인천에 가까운 사람의 죽음의 냄새를 잘 맡는 한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가족과 친지의 죽음의 순간을 미리 느낀 적이 많았다. 한번은 조카가 자기 방으로 “이모!” 하면서 들어오는데 그 조카의 뒤에 죽은 그 아이의 영이 선 것이 보였다. 그 후 그 아이는 3일 만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또한 그녀의 남편이 죽기 얼마 전에도 죽음의 냄새가 강하게 느껴졌다.

 죽음의 냄새를 맡는 신기한 능력을 받고 싶은가? 그런 능력에 대한 호기심은 영혼을 더 약화시킨다. 어떤 능력이 영혼을 병들게 만들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만들면 그 능력은 사실상 사탄의 능력이다. 누군가의 죽은 영이 미리 보이면 정상 생활이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알 필요가 없는 앞날은 절대 비밀로 두셨다.

 사도행전 1장 7-8절에서 예수님이 명령하셨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어떤 일이 이뤄질 때와 시기는 하나님이 비밀로 감춰두셨기에 미래를 아는 데 관심을 두기보다 주님의 증인이 되는 데 관심을 두라는 말씀이다.

 남의 죽은 영이 미리 보이는 능력은 영혼을 두렵게 만들기에 일반인은 오히려 그 능력이 사라지길 원할 것이다. 죽음을 막지도 못하면서 죽을 때를 미리 알면 얼마나 괴롭고 두려운 일인가? 그런 능력이 있기를 바라는 사람은 오직 그 능력을 이용해 돈을 벌거나 자신을 높이거나 남의 영혼을 속박하려는 사람일 것이다. 실제로 사이비 교주가 영혼을 속박하려고 내세우는 핵심 방법은 사람에게 두려움을 심는 것이다.

 사이비 교주는 영혼을 미혹할 때 먼저 두려움을 심는 작업부터 한다. 두려움에 속박된 영혼은 조종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름이 오싹 끼치게 만들려고 장소와 분위기와 얼굴 표정을 무섭게 만들고 끔직한 소리를 내고 기괴한 행동을 한다. 그렇게 영혼을 두렵게 만든 후에 “기도한다, 귀신을 쫓아낸다.”라고 하면서 자신을 의지하게 만든다. 반면에 선한 목자는 영혼을 두려움에서 해방시키고 은혜로 품어 주려고 애쓴다.

 결국 사이비 교주를 분별하는 핵심 원리는 은혜를 앞세우고 은혜가 넘치느냐를 보면 된다. 성령충만의 핵심 증거도 은혜가 넘치는 것이다. 엄격하게 ‘옳다, 그르다’의 흑백 논리로 살면 갈등이 커지지만 은혜로 이해하면 갈등이 줄어든다. 은혜가 넘치면 지혜도 넘친다. 그처럼 은혜가 넘치는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면 큰 힘이 된다. 결국 지식이 넘치는 삶보다 은혜가 넘치는 삶이 더 영혼을 변화시키고 더 힘을 준다.

< 은혜를 지속시키는 길 >

 사람에게 은혜만큼 필수적인 것은 없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사람은 한 시도 살 수 없다. 이제까지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내게 하나님의 은혜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특히 은혜를 받는 것보다 받은 은혜를 지속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은혜를 지속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은혜의 기록을 남기라

 본문에는 모세와 아론의 인도로 대오를 갖추어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자손들의 노정이 기록되어 있다(1절). 출애굽 후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광야에서의 행진 노정을 상세히 기록했다(2절). 왜 하나님은 광야에서의 행진 노정을 상세히 기록하게 하셨는가? 그 기록을 통해 인간의 연약성과 하나님의 신실성을 후대에게 교훈해서 후대들이 가나안 땅에서 선민답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라는 의미로 기록하게 하셨을 것이다. 그런 기록들이 나중에 성경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큰 문제를 만나면 용하다는 사람을 찾아 점을 치거나 기도를 부탁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용한 사람은 없다. 문제가 생기면 오직 하나님을 찾으라. 그리고 어떤 문제를 풀어 주면 어떤 헌신을 하겠다고 하나님 앞에서 쉽게 약속하지 말라. 쉽게 약속했다가 문제가 풀린 후에 이전의 약속을 외면하고 자신의 시간과 소유와 재능을 드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최소한만 드리다가 점차 그 드리는 삶도 없어진다. 그러면 언젠가 다시 이전보다 더 큰 문제를 맞이할 수 있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은혜를 잊지 말라. 나의 삶은 은혜 없이는 한 시도 지탱될 수 없다. 사람으로부터 받은 은혜도 많다. 심지어는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은혜도 많다. 그 은혜를 잊지 말고 나도 누군가에게 소리 없이 은혜를 베풀라.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잊지 말라. 하나님의 은혜는 대부분 소리 없이 주어진다. 그 은혜를 잊지 않도록 마음 판에 새기고 더 나아가 필요하다면 기록으로도 남기라.

 사도 바울은 종종 자신의 서신서에서 신실한 동역자와 후원자의 실명까지 기록했다. 언젠가 나도 <성경전권강해>를 완성하면 서문이나 후기 등에 저의 문서 선교를 후원했던 신실한 후원자를 기록하고 싶다. 그중에 상당수는 소리 없이 헌신하다가 나보다 먼저 천국에 갔을 것이다. 그처럼 자신은 소리 없이 헌신해도 그 헌신을 지켜본 누군가는 감동 가운데 그 이름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기록에 남기기도 한다. 사람의 은혜도 기록으로 남기려고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기록으로 남기려고 하라.

2.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라

 이스라엘 자손은 1월 15일에 라암셋을 떠났다(3절). 출애굽 날은 유월절인 1월 14일 다음날이었는데 그날 애굽인은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치신 그 모든 장자를 장사했다(4절). 즉 출애굽은 애굽인이 보는 데서 애굽의 모든 장자를 치신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뤄진 역사였다. 그 권능이 얼마나 놀라운지 애굽 신들에게도 벌을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기록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깨닫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라는 교훈을 준다.

 감사해야 더 감사거리가 주어진다. 다른 것은 다 잊어도 하나님의 은혜는 잊지 말고 범사에 감사하라. 하나님의 은혜는 삶의 곳곳에 미쳐 있다. 매일의 삶이 기적이고 감사의 조건이다. 나의 삶 자체에 대해서도 감사하고 힘들 때도 감사하라. 가진 것이 많아도 감사가 없으면 불행한 삶이고 가진 것이 적어도 범사에 감사하면 행복한 삶이다.

 물질을 추구할 때도 사명감을 가지고 잘 쓰려고 추구하라. 인간적인 만족을 얻으려고 물질을 추구하면 결코 만족이 없다. 만족의 핵심 기준은 물질이 아니라 은혜를 깨닫고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물질에 소유되지 말고 물질을 소유하라. 즉 물질로 만족과 행복을 저울질하지 말고 물질을 좋은 일에 사용할 도구로 여기라. 그처럼 물질에 대한 가치관이 저하되지 않도록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삶을 훈련하라.

 가끔 나의 딸들과 연락이 두절된 상태가 될 때가 있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 때로는 최악의 상황에 대한 염려가 생긴다. 그러면 기도한다. “하나님! 가족애가 너무 지나쳐도 안 되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가족을 하나님께 먼저 보내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습니다. 제가 먼저 하나님께 가는 은혜를 주시고 가족들은 안전하게 지켜 주소서.” 그런 기도를 드릴 때마다 언뜻 드는 생각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은혜라는 생각이다. 삶 자체에 대해 감사하라. 결국 범사에 감사하는 삶은 은혜를 예비하는 핵심 기초다.

3. 은혜를 앞세워 살아가라

 모세가 기록한 출애굽 이후의 구체적인 여정은 본문 다음의 5-49절에 언급된다. 왜 모세는 출애굽 이후 40년의 이동 경로를 상세히 기록했는가? 후대들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생생하게 깨닫고 감사하게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앞세워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도 승리하고 가나안에서 선민답게 살라는 교훈을 주려고 기록했을 것이다. 그처럼 모든 일에 인간적인 힘과 법과 질서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앞세워 살아가야 인생 전쟁에서도 승리하고 은혜도 지속시킬 수 있다.

 한 국립공원 입구의 플래카드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 “쓰레기를 버리려는 마음을 버려주세요.” 그 말이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라는 강요적인 글귀보다 더 효과가 좋았다. 어느 교회 예배당 입구에 붙인 “휴대폰을 잠시 꺼 놓으셔도 좋아요.”라는 글귀는 “핸드폰을 끄시오.”라는 글귀보다 더 반응이 좋았다. 율법보다 은혜가 사람을 더 움직이고 정죄보다 은혜가 사람에게 더 큰 변화를 일으킨다.

 어떤 사람은 은혜보다 법을 내세워 남을 정죄한다. 그러면 언젠가 똑같이 법에 의해 자신도 정죄된다. 혹시 세상적인 법에 의한 심판을 피할 수 있어도 나중에 하나님의 추상같은 법에 의한 심판까지 피할 수는 없다. 그처럼 법과 공정을 내세워 남을 심하게 재단하면 언젠가 법과 공정에 의해 자신도 심하게 재단된다. 은혜를 앞세워 살라. 남에게 관대하지 않으면 나도 관대함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관대한 은혜도 얻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앞세워 은혜롭게 살면 앞날은 더욱 복된 날이 될 것이다.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며 은혜를 앞세워 살라. 그래서 나의 미래가 나의 과거보다 더욱 찬란한 날이 되게 하라. 하나님은 나를 통해 새로운 놀라운 일을 하려고 계획하시고 이전보다 더 놀라운 은혜를 주려고 준비하시고 있다. 하나님이 기적적인 하나님이란 표현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전례 없는 놀라운 은혜를 주실 수 있다는 뜻이다. 앞날의 은혜는 이전의 은혜보다 더욱 클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면 전례 없는 은혜의 때가 찾아오고 지금까지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찬란한 꿈이 이뤄지는 기적적인 역사가 있을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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