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되는 비결





본문말씀 : 사도행전 4장 5-12절
5.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6.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7.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8.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9.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10.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 성령의 충만

 초대 교회 당시에 힘 있는 형식적인 유대교는 예수님 안에서 참된 자유와 평안을 전하는 기독교 복음을 배타했다. 그래서 기독교의 첫 박해자들은 메시아를 기다리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오랫동안 메시야를 기다린 그들이 막상 메시야가 오자 제일 먼저 거절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위가 올라가고 지식이 많아지고 형식이 정교해지고 기득권층이 되는 것이 겉으로는 복된 일이지만 사실상 그때 더욱 깨어 근신해야 한다.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부활의 복음을 전하자 누가 제일 반대했는가? 오랫동안 형식적인 종교로 기득권층이 된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었다(1절).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았지만 날이 저물었기에 바로 재판하지 않고 이튿날까지 가두었다.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다(5절). 관리들은 유대 최고 의결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원들 중 제사장 그룹이고, 장로들은 각 족속의 리더들이고, 서기관들은 바리새파 율법사들이다. 산헤드린 공회는 제사장 24명, 장로 24명, 서기관 22명의 총 70명으로 구성되었다.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가운데 놓고 물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7절).” 그 질문을 받고 베드로는 전혀 위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당당하고 떳떳하게 예수님을 변호했다. 어떻게 그렇게 당당할 수 있었는가? 그 비결이 본문 8절 전반부에 표현된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라는 표현에 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두려움과 우울함을 넘어선 용기와 기쁨이 생긴다. 사람이 외적인 거짓 기쁨이 아닌 내적인 참된 기쁨으로 충만하면 엔도르핀이 나오면서 건강도 급속히 회복된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아멘의 삶’이 충만해진다. 입술에서 표출되는 “아멘!”도 파워가 있지만 마음에서 표출되는 “아멘!”은 더 파워가 있다. 최상의 보약은 ‘아멘 약’이다. ‘아멘 약’은 용서하고 이해하고 순종하고 기쁘게 반응하는 삶에서 생긴다. 로마서 12장 15절을 보면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했다. 기도할 때나 말씀을 들을 때 아멘으로 응답하고 더 나아가 아멘의 삶을 실생활에서 힘써 실천하면 건강 가능성이 커진다.

 마태복음 11장 16-17절을 보면 예수님은 당대를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해도 슬퍼하지 않는 시대라고 했다. 지금도 그렇게 감격적인 반응을 잃어버린 시대다. 이런 때에 말씀에 힘써 반응하며 아멘의 삶을 다짐하면 몸에서 신비하게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기분도 좋아지고 건강해진다. 일반적인 약과는 달리 아멘 약은 부작용도 거의 없다. 감기약을 먹으면 2주일 만에 낫고 감기약을 안 먹으면 14일 만에 낫는다고 한다. 약을 너무 의지하지 말라는 암시다. 약을 적절하게 사용하되 특별히 아멘 약을 많이 사용하라.

 모든 사람에게는 원래부터 암세포 유전자가 있다. 실제로 하루에 몇 십 개의 암세포가 몸에서 생겨나지만 정상세포가 강하면 암세포가 힘을 못 쓰고 정상세포가 약해지면 암세포가 세력을 키운다. 그런데 정상세포가 약해졌을 때 “아멘!”의 심령으로 성령충만하게 살면 정상세포가 활성화되고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암세포가 약해진다. 그래서 아멘의 심령이 되면 암에 걸릴 확률도 크게 줄어든다. 늘 성령충만함으로 기쁜 마음, 아름다운 마음, 사랑하는 마음, 봉사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건강과 회복 가능성이 커진다.

2. 구원의 믿음

 베드로가 산헤드린 공회원 앞에서 예수님을 변호할 때 성령 충만한 상태에서 가장 먼저 한 말은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라는 호칭이었다(8절). 그 호칭은 반말처럼 들리지만 원어로는 최고의 경칭으로서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이여!”라는 표현이다. 베드로는 산헤드린 공회원들에게 최고의 존칭어를 사용해 그들의 권세를 인정했다. 그러나 결코 저자세로 예수님을 변증하지 않고 권세가 느껴지는 말씀으로 “너희가 예수님을 죽였지만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하며 담대하게 예수님의 이름을 증거했다(10-11절).

 그 말은 부활을 믿지 않은 사두개인들의 큰 반발을 일으키고 산헤드린 공의회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말로서 목숨을 걸어야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래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못 걷는 걸인이 건강을 찾았다고 증거했다. 그 담대한 증거에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권위가 위축되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게다가 시편 118편 22절 말씀을 인용하며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하자 그 말씀에 압도되는 느낌도 받았을 것이다. 베드로의 증거는 간단히 말하면 예수님의 이름을 믿으면 구원과 건강을 얻는다는 말씀이었다.

 믿음을 통해 마음의 평안을 얻으면 건강도 따라온다. 시편 121편을 보면 하나님은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 하나님의 보호를 확신하고 마음의 평안을 잃지 말라. 잠언 17장 22절을 보면 심령의 근심이 뼈를 마르게 한다고 했다. 그러나 마음을 아름답고 즐겁고 편안하게 가지고 욕심을 버리면 심장이 위축되지 않고 안정되고 활성화된다. 특히 구원의 믿음은 불안과 공포와 염려로부터 생기는 스트레스를 넉넉히 극복하게 만든다.

 사도 바울은 실컷 매 맞고 빌립보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도 한밤중에 찬송과 기도를 드렸다. 그는 극심한 고난과 어려움에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또한 사람으로부터도 까닭 없이 고통을 많이 받았어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오히려 고통을 준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받을 것이라고 여유 있게 생각했다.

 디모데후서 4장 14절에서 사도 바울은 말했다.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얼마나 받은 상처가 컸으면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거명하며 가슴 아픈 소리를 했겠는가? 알렉산더는 처음에는 좋은 봉사자였지만 점차 바울의 사역을 사사건건 훼방하고 괴롭히고 스트레스를 주다가 교회에서 제명된 후에는 더 악하게 행동했다. 그래도 한 맺혀 살지 않고 알렉산더의 심판을 하나님께 맡겼다.

 극심한 고난과 상처를 받아도 구원의 믿음이 흔들리지 말라. 예수님은 구원도 주셨지만 궁극적인 치유도 주셨다. 이 땅에서 까닭 없이 고난 받으면 하늘의 상급이 더욱 클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며 믿음 안에서 여유와 기쁨을 찾으라. 야고보서 1장 2절에는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면 보통으로 기뻐하지 말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다. 늘 구원의 믿음으로 평안과 기쁨을 소유해서 건강을 얻고 하나님이 주신 건강으로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라.

3. 바른 절대성

 베드로는 예수님을 변호하면서 마지막으로 단호하게 결론 내렸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12절).” 베드로는 산헤드린 공회원들을 최대한 존중하며 말했지만 그의 메시지 자체는 강력하고 단호했다. 즉 “예수님의 이름 외에 구원을 받게 할 다른 이름은 없다. 예수님만 유일한 구세주이시다.”라고 했다. 그런 확고함과 단호함과 절대성이 있어야 능력 있는 삶도 생긴다.

 며칠 전 필자를 많이 돕는 한 성도가 말했다. “목사님! 매주 한두 시간 정도 교회 세미나실을 사용해도 될까요?” 목회 초기에는 그런 요청을 받으면 깊은 생각도 없이 그냥 쓰라고 했다. 주중에 어차피 빈 공간으로 있으니까 사랑이 많은 호인처럼 보이려고 그냥 들어준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교회 공간을 사용하는 것은 상당성을 인정받기 힘들기에 요즘은 많은 도움을 준 사람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때로는 사랑과 은혜를 모른다는 소리를 들어도 그런 요청을 쉽게 수용하지 않는다.

 사실 성숙한 성도는 그런 요청 자체를 삼간다. 그런 요청은 리더에게 짐을 안기고 그 요청이 거절되면 자신에게도 마음의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성도의 마음에 조금도 상처를 남기지 않으려는 마음이 앞서서 그런 불편한 요청도 그냥 들어주었다. 그러면 대개 나중에 더 크게 상처받는 일이 생겼다. 그래서 요즘은 그런 요청자의 성숙함을 돕기 위해 또한 차후의 부작용과 더 큰 상처를 막기 위해 어떤 요청에 장벽을 놓아야 할 때는 단호하게 장벽을 놓는다.

 그때 필자가 진지한 어투로 물었다. “무슨 용도로 사용하려고 해요?” 그가 아무 말도 못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물건 판매 세미나를 위해 사용하려는가?” 그래서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집사님! 제가 수락하지 않는 것을 이해해주세요.” 옛날 같으면 그냥 사용하라고 하면서 그것을 목사의 후덕함과 따뜻함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후덕함과 따뜻함이 있는 목사라는 현재의 좋은 이미지를 위해 미래의 분란과 상처와 부작용이 뻔히 예상되는 일을 할 수는 없다. 기독교의 예언자란 미래의 문제를 대비하는 자란 의미도 있다.

 부드럽지만 단호한 거절의 어투로 말하면서 순간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이번에 거절하면 목사가 은혜와 사랑도 없이 매정하다고 생각할 텐데 조금 더 보충 설명을 잘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바로 말했다. “집사님! 만약 제가 세미나실을 개인의 이익 용도로 쓰게 한 것을 다른 성도가 알고 문제점을 느끼면 원칙의 힘과 리더십이 약해지면서 교회의 평안이 약간이라도 훼손될까 염려됩니다. 흔쾌하게 좋은 대답을 못해준 것을 이해해주세요.”

 다행히 그가 시험 들지 않고 대답했다. “목사님! 신경 쓰지 마세요. 언뜻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했어요.” 말은 그렇게 해도 시험 드는 경우가 많기에 그 대화 후 그가 정말로 시험 들지 않았나 하고 예리하게 체크했는데 괜찮아보였다. 리더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세심하게 여러 경우와 변수도 살피고 형평성도 살펴야 한다. 그래도 생각 차이가 있고 늘 돌발변수와 다른 견해도 표출될 수 있기에 기도가 필요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때로는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 단호하게 결단해야 속이 상하는 일도 없고 겉이 상하는 일도 줄어든다.

 온유와 우유부단은 다르다. 때로 단호하게 말씀대로 살아야 능력과 영향력도 생긴다. 계룡산의 한 교주는 예수님, 공자, 석가 그림을 다 걸어놓고 모두 다 섬긴다고 하지만 진리는 다다익선이 아니다. 일편단심 민들레처럼 예수님만 붙들고 나아가라. 그때 마음의 평안도 생기고 능력 있는 삶도 펼쳐지고 최종 승리도 주어진다. 그런 최종 승리의 확신이 현재의 삶에도 영향을 미쳐 건강한 삶과 건강한 몸의 토대가 된다. 늘 성령의 충만과 구원의 믿음과 바른 절대성을 앞세워 건강하고 심플하게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심령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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