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에 응답하라
본문말씀 : 누가복음 5장 27-28절
27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28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
필자는 1980년대 초부터 유학을 준비하면서 영어공부에 진력했다. 그런데 토플 점수는 높아져도 영어 구사 능력은 탁월해지지 않았다. 미국 유학 때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말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 귀국해서 신학대학에서 신학 영어를 가르치다가 <네트영어>를 개발했다. 그때부터 “영어 공부는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라는 아쉬운 마음이 생겼다. 나이가 들고 혀도 많이 굳은 상태에서 너무 뒤늦게 <네트영어>를 알았다는 것 때문이었다.
필자는 젊었을 때 책을 많이 읽고 내용을 빨리 파악하려고 하다가 저절로 속독이 습관화되었다. 그 후 영어책을 읽으면서도 속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여겼다. 그런데 <네트영어>를 개발한 이후에는 영어 속독도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네트영어> 이전에는 영어 공부를 많이 해도 많이 잊어버렸지만 <네트영어> 이후에는 영어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아도 영문을 보면서 영어가 저절로 습득되었다.
<네트영어>의 탁월성을 확신한 후부터 많은 사람들이 <네트영어>를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필자의 두 딸이 <네트영어>의 탁월성을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성경전권강해> 집필로 시간이 없어서 <네트영어> 강의를 하지 않지만 10여 년 전에는 했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네트영어>의 원리에 감탄했어도 당시에 어린 두 딸이 그 탁월성을 깨닫지 못하면 너무 안타깝고 속이 탔다.
<네트영어>에는 수많은 독특한 원리들이 많다. 또한 이제까지 쌓아놓은 방대한 자료들이 있다. 그 원리와 자료는 아직 대중에게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그 자료는 누가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팔지 않는다. 아직은 공개할 때가 되지 않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다만 지구상에서 오직 두 명에게만은 본인만 원하면 무조건 줄 수 있다. 그렇게 주면서도 전혀 아깝지 않고 다른 것도 더 주고 싶다. 그 두 명은 필자의 두 딸이다.
필자의 피땀이 담긴 <네트영어>나 <월간새벽기도(월새기)>에 대해 남들이 감탄하며 좋다고 해도 필자의 두 딸에게 그런 감탄이 없으면 왠지 허전하다. 두 딸이 <네트영어>와 <월새기>를 체득해서 성숙한 믿음을 가진 국제적인 인물로 잘 준비되었으면 하는 애타는 마음 때문이다. 그런 애타는 마음을 품을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느낀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최고의 것을 주려는데 자녀가 그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면 하나님도 크게 속이 타실 것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기대에 부응하며 살라.
<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라 >
세상의 어둠을 느낄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기대에 부응하며 사는 한 사람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는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기뻐하시는가?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이다. 본문에는 예수님이 세리 레위를 제자로 부르시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에 세리는 세금을 걷어 로마에 바치는 관원이었기에 유대인들은 세리를 동족을 착취하는 반역자요 죄인의 대명사로 여겼다. 성경을 보면 죄인을 지칭할 때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직업이 세리와 창기다. 그런 세리를 예수님은 제자로 삼아주셨다.
본문을 보면 레위가 지나가시던 예수님을 보고 먼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선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운명으로 여기며 살았는데 예수님이 “나를 좇으라.”라고 하셨다. 그 부르심은 레위를 전혀 다른 새 삶으로 인도했다. 그 부르심이 없었다면 레위는 영원히 버림받은 자로 지냈을 것이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레위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나도 사실상 세리 레위보다 나을 것이 없다. 성도 중에 부름 받을 자격이 충분한 사람은 없다. 그래도 하나님이 불러주셨다. 하나님은 종종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부족한 사람을 부르신다. 왜 하나님은 부족한 사람을 부르시는가?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부족해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쁘게 응답하면 축복으로의 대 변환의 역사가 시작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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