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길





본문말씀 : 누가복음 6장 27-36절

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29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30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3)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길 (누가복음 6장 27-36절)



<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라 >

 일전에 한 단체에서 회의할 때 대표와 총무가 설전을 벌였다. 그때 대표가 총무에게 어떤 지적을 하자 총무가 알았다는 듯이 “오케이, 오케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대표는 총무가 자기 말을 형식적으로 무성의하게 듣는 것으로 여기고 더 기분이 나빠서 언성을 높였다. “아니, 내 말 똑바로 들으세요.”

 부부간에도 아내가 무슨 말을 하면 남편이 “알았어. 알았어.”라고 할 때가 있다. 그 말이 진짜 알았다는 말일 수도 있지만 아내에게는 귀찮아서 하는 말로 들릴 수 있고 심지어는 “알았다는데 왜 말이 많아?”라는 말로 들릴 수 있다. 그러면 아내가 기분 나쁘게 여길 수 있기에 “알았다.”는 말도 귀찮다는 듯이 대충 쓰지 말고 사려 깊게 쓰라. 그런 타인 감수성이 없으면 전혀 의도하지 않은 채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다.

 하나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말씀에 형식적으로 “아멘, 아멘” 하고 실천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더 상하게 할 수 있다. 겉으로 믿음이 좋은 표시는 혼자 다 하면서 실제로는 신실한 행동이 없기 때문이다. “아멘!” 했으면 완벽하게 그대로 살라는 말이 아니다. “아멘!”을 습관적으로 하지 말고 진실한 아멘의 삶을 살려고 힘쓰고 행동하는 믿음을 보여주라는 말이다. 추상적인 믿음이 아닌 행동하는 믿음을 가지라. 말씀대로 살기 힘들다고 말씀대로 살려는 삶 자체를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이 용서하라고 말씀하실 때 “그래도 그 사람만은 용서하지 못해.”라고 미리 단정하지 말라. 이제까지 용서하지 못했어도 앞으로 용서할 수 있다고 믿고 나아가라. 안된다고 하면 안 될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된다고 하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성경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한다. 패배감과 좌절감과 의심을 버리라.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2021년에는 더욱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겠다는 비전을 가지라.


<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길 >

 본문 36절에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라는 표현이 나온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기독교의 핵심 교훈이다. 원수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 원리로 예수님은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고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고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다(27-28절). 또한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고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고 하셨다(29절). 이상과 같은 원수사랑을 위한 구체적인 삶의 실천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원수사랑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나를 포기하고 정의롭게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면 원수사랑과 용서의 능력이 생긴다. 그때부터 행복도 싹튼다. 사람이 하나님의 모습에 가장 가까울 때는 사랑하고 용서할 때다. 그때 사람은 가장 영광스럽게 되고 하나님께 가장 영광을 돌리게 된다. 가끔 마음이 너무 힘들면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 이 상황을 이기도록 저의 마음을 붙잡아 주소서.” 그런 기도는 나의 책무 포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의 표현이다.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면 어떤 힘든 상황과 미운 감정도 극복할 수 있고 자기 책무도 잘 감당할 수 있다. 가끔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부족함을 느낀다. 하나님은 그렇게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을 귀히 쓰신다. 이제까지 내가 하나님을 많이 실망시키며 원수처럼 행했어도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나의 현실 속에 이미 넘쳐 있다. 그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며 증오심을 이겨낼 때 하나님은 최고로 영광 받으시고 가장 복된 길도 열어 주신다.

2. 남을 대접하라

 본문 31절을 보라.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 구절은 기독교 윤리의 최고봉이라고 해서 흔히 황금률로 불려진다. 본문 34절을 보라.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성도 간에 꾸지도 말고 꾸어 주지도 말라. 다만 어쩔 수 없이 꾸어 줄 때는 이자 받을 것을 생각하지 말라. 간단히 말하면 이기적으로 살지 말라는 말씀이다.

 이기적인 욕심을 부리면 일시적으로는 더 얻는 것 같아도 결국은 더 잃는다. 혹시 돈은 벌어도 행복과 평안과 후대의 축복 등의 가치 있는 것들은 더 잃는다. 사람들은 누가 계산적이고 욕심을 부리는지 대략 느끼고 알기에 그런 사람을 보면 더 주고 싶지 않게 된다. 하나님은 더욱 누가 계산적이고 누가 헌신적인지를 잘 아신다. 그래서 계산적인 사람에게는 덜 주시고 헌신적인 사람에게는 더 주신다. 계산하면 더 잃고 헌신하면 더 얻는다.

 어떤 교회에서 10명의 선교사를 후원할 때 교회는 각 선교사의 지역과 사역과 활동에 따라 공평하게 후원한다. 그런데 어떤 선교사가 사적으로 교인을 접촉해 기도 제목을 알리고 후원받으면 교회로부터는 인식이 안 좋아져서 선교사 후원이 끊기는 경우가 많다. 그때 겉으로 보면 교회가 야박하고 사랑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사적으로 따로 후원받으면 열심히 사역을 홍보하고 기도 제목을 알리는 사람은 이중삼중의 지원을 받고 홍보 없이 조용히 사역에만 전념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덜 지원받는 부조리한 상황이 생긴다.

 저희 기독교선교연맹(C&MA)에서는 선교사가 개인적으로 가족이나 지인의 후원을 받는 것은 상관하지 않지만 소속 교회 내의 교인에게서 사적으로 후원받지 못하게 한다. 그 규정을 자주 어기면 품행 위반으로 교단의 공식 선교사 리스트에서 제외시킨다. 감동적으로 선교 말씀을 전하고 사역 홍보를 잘하고 기도 제목을 다급하고 애절하게 잘 나누는 사람에게만 후원이 집중되는 것을 막고 후원금이 실제 사역에 따라 공평하게 배분되게 하기 위해서다. 또한 선교사의 사적인 교인 접촉으로 교회에 분란이 생기는 상황을 최대한 막기 위해서다.

 미국 시애틀에서 한인 교회를 섬기는 A 목사와 모 국가로 파송된 B 선교사는 형제처럼 지냈다. A 목사는 B 선교사에게 매월 상당한 후원을 했고 미국에 올 때마다 극진히 대접하며 10년 이상 후원했는데 어느 날 후원을 끊고 심지어 둘은 완전히 등을 돌렸다. B 선교사가 A 목사도 모르게 A 목사 교회 교인들을 사적으로 접촉해 이중삼중의 후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더 후원받고 더 대접 받으려다가 교회의 지원이 끊겼다.

 대접과 후원과 축복보다 사명과 사역에 집중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오히려 더 채워주신다. 어떤 사역자는 몇 년 동안 교회로부터 사역비를 받지 못했어도 대접받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구차하게 남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러자 모든 상황을 아시는 하나님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누군가를 감동시키고 후원하게 하셔서 그의 사역과 생활의 필요를 채워주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신묘한 방법이다. 대접받기보다 대접하려고 하는 것을 삶의 중심 틀로 삼고 계산적으로 살지 않으면 오히려 계산을 초월한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가 주어진다.

3. 자비를 베풀라

 본문 36절을 보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같은 평행 본문인 마태복음 5장 48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나님을 마태는 온전하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했고 누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했다. 그것은 자비로운 삶이 온전한 삶이라는 암시다.

 자비는 불교 용어만이 아니다. 온전한 삶이란 죄를 짓지 않는 삶을 뜻하기보다 자비로운 삶을 뜻한다. 죄를 짓지 않음으로 온전함을 나타내기보다 자비로운 행동으로 온전함을 나타내라. 요새 점차 성 인지 감수성과 타인 감수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것이 자비로운 마음이다. 자기 특성을 따라 사는 독립심도 중요하지만 남의 특성을 인정하는 자비심은 더 중요하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너무 치열하게 열심히 살면 영혼이 메말라진다. 부부가 다 치열하게 살면 가정도 너무 치열해진다. 그래서 사회에는 치열하게 살면서 차가워진 마음을 녹여줄 따뜻한 사람도 필요하다. 지금 세계적인 한류 문화를 선도하는 BTS나 블랙핑크 멤버들은 어렸을 때부터 피나는 노력으로 그 자리에 올랐다. 대단한 승리자들이지만 사회에는 그런 사람들만 필요하지 않다.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 느끼는 내면의 허전함과 외로움을 달래주고 높은 자리를 지키려고 애쓸 때 생기는 스트레스를 풀어줄 따뜻한 사람도 필요하다.

 나는 어렸을 때 두 딸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면서 딸들 성향에 맞춰서 학교 성적 1등보다는 따뜻한 마음 1등으로 키우기로 방향을 잡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교육 방향이 크게 틀리지 않은 것 같다. 물론 가끔 이런 생각도 든다. “딸들이 너무 승부욕이나 독립심이 없는 것은 아닌가?” 옛날에는 ‘여필종부’를 내세우며 아내가 남편만 바라보며 사는 것을 좋게 여겼지만 요새는 남편도 아내가 독립적으로 자기 커리어를 쌓고 돈을 많이 벌어오는 것을 점차 좋아하는 추세다. 그러나 독립심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자비심이다.

 사회에는 치열한 경쟁에서 1등을 하는 산 같은 사람만 필요하지 않고 음지에서 삶과 가정의 토대가 되어주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대지 같은 사람도 필요하다. 자비로운 마음을 품고 어느 누구도 차별하거나 비하하는 마음을 가지지 말라. 누군가의 잘못된 행동은 냉철히 평가하되 그로 인해 그의 영혼까지 무시하지는 말라. 리더의 꿈을 품은 사람에게 특히 필요한 것은 영혼을 다 소중하게 여기고 공평하게 대하는 자비심이다.

 타인 감수성을 길러서 공평한 사랑을 주는 데 힘쓰라. 자비로운 마음이란 사랑을 베푸는 마음이란 뜻도 있지만 공평하게 사랑을 베푸는 마음이란 뜻이 더 강하다. 사람을 경시하지 말라. 그래야 하나님도 나를 경시하지 않으신다. 나의 높아진 마음을 더욱 낮추고 영혼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삶을 굳게 결단하라.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를 펼치는 성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여겨주시고 사람의 생각을 초월해서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이다. 2021년에는 사랑과 대접과 자비가 넘치는 삶을 통해 더욱 복 받는 한 해를 만들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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