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된 공동체를 만드는 길

 

[ 지거 쾨더 : 성찬 ]


본문말씀 : 민수기 1장 2-4절


2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3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 4 각 지파의 각 조상의 가문의 우두머리 한 사람씩을 너희와 함께 하게 하라



< 복된 공동체를 만드는 길 >

 인간 사회에서 ‘우리 의식’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지나쳐 ‘패거리 의식’이 되지 않게 하라. 대의(大義)를 따르고 남을 생각하면서 나도 잘 되고 너도 잘 되는 복된 공동체를 꿈꾸라. 복된 공동체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공동체 의식을 키우라

 본문 2절을 보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중 20세 이상의 남자만 계수하라고 했다. 여자와 어린이를 사람 취급도 안 해서가 아니라 출애굽 후 전쟁에 임할 군사 수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계수하게 한 것은 차별을 조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 의식과 공동체 의식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공동체 의식이 있어야 공동체가 건강해진다. 남을 생각하고 더 나아가 전체를 생각하는 공동체 의식을 갖추라. 요즘 이성 감수성이 강조되듯이 공동체 감수성을 기르라. 가족과 교우와 동료에 대해 조심스러움을 가지고 남을 깎아내려 웃기는 저급 유머를 삼가라. 힘이 생기면 힘을 과시하지 말라. 힘 과시는 일시적으로는 사람을 이끌어도 장기적으로는 사람을 멀어지게 한다. 하나님이 쏘시는 역사의 화살은 늘 사랑과 정의의 방향으로 날아간다. 그러므로 인간의 힘자랑은 곧 있을 추락의 전조다.

 공동체 의식이 없으면 결국 공멸한다. 차이는 존중하되 차별은 삼가라. 과학 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공동체 의식이 발전해야 미래가 희망이 있다. 경제성이 사회성과 병행되어야 세상이 안정을 찾는다. 홀로 비둘기처럼 순결하면서도 함께 뱀처럼 지혜롭게 살라. 공동체에서 상처를 입으면 말씀과 기도로 나를 더 살피면서 공동체 의식을 기르는 반면교사로 삼으라. 공동체 감수성을 가지면 지금은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나중에는 손해 이상의 보상을 얻는다.

2. 주님의 강한 군사가 되라

 본문 3절을 보라.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 민수기 1장에는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만한 자’란 표현이 14번 나온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낭비된 표현은 하나도 없기에 반복된 표현은 그만큼 깊은 의미가 있다. 그것은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만한 자’라는 계수 기준은 매우 엄격한 기준이라는 뜻이다.

 20세 이상의 남자지만 중병에 걸렸거나 신체가 허약하거나 장애인은 계수하지 않았다. 결국 그 표현에는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강한 군사가 되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지금도 성인 기준이 20세지만 사실상 육신적인 성인보다 정신적인 성인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신적인 성인이란 책임적인 사람을 뜻한다.

 무한한 자유를 얻기 원하면 무한한 책임을 지려고 하라. 책임을 떠맡으려는 책임감이 없이 자유만 누리려고 하면 주어진 자유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내가 누리는 자유가 방종이 아닌 책임적인 자유가 되도록 하는 정신적인 성인이 되어야 그리스도의 강한 군사가 될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만군의 하나님(여호와 체바오트)’이란 호칭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강한 군사를 원하신다는 암시가 담긴 호칭이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힘입고 세상을 압도하는 능력과 실력을 키워 세상을 이끌려고 하라.

 고대에 하나님의 일을 하는 제사장들은 사회의 최고 엘리트였다. 그들은 천문학, 지리학, 철학, 시문학 등에 능했다. 심지어는 이방 종교의 천관들도 당시 사회의 최고 석학들이었다. 모세는 왕자였을 때 애굽 제사장들로부터 여러 분야의 학문을 깊이 배워서 1세기 유대 역사가인 필로는 모세가 음악, 수학, 과학, 예술 등에도 뛰어났다고 묘사했다. 모세가 말을 못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모세가 말했다. “주님, 저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합니다. 저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합니다(출 4:10).” 그러나 사도행전 7장 22절을 보면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라고 되어 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과정의 고난대학을 졸업한 후 겸손해져서 자신이 혀가 둔하다고 한 것이지 실제로는 말에 능했다. 지혜로운 언변도 실력이다. 그처럼 내 재능에 합당한 실력을 키워 내가 속한 공동체가 힘 있는 공동체가 되도록 일조하라.

3. 조직을 체계적으로 세우라

 본문 4절을 보라. “각 지파의 각 조상의 가문의 우두머리 한 사람씩을 너희와 함께 하게 하라.”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과 함께 할 족장 한 사람씩을 각 지파마다 선택하게 하셨다. 당시에 수많은 민사 소송 처리를 위해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 같은 부장 중심의 행정 체계는 갖췄지만(출 18:13-26) 광야의 행진과 가나안 정복 전쟁을 위한 조직적인 군사 체계는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조직적인 군사 체계를 갖추려고 각 지파의 족장 한 사람을 세우게 한 것이다.

 조직과 체계도 필요하다. 은혜롭게 공동체를 이끌겠다면서 조직을 만들지 않으면 오합지졸이 된다. 은혜롭게 하자면서 조직도 없이 대충 공동체를 이끌면 그리스도의 강한 군대가 될 수 없다. 탁월한 사람도 필요하지만 그를 잘 뒷받침할 탁월한 조직도 필요하다. 경영 능력과 리더십의 상당 부분은 조직력과 조직 장악력에서 나온다. 체계적인 조직력과 조직 구성을 위한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라.

 사도 바울은 조직화의 천재였다. 그는 교리도 잘 조직화했고 교회도 잘 조직화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운 것은 그가 조직화의 천재였다는 암시다. 그의 선교 여행을 살펴보면 목표 장소로 갈 때 빠른 길보다 돌아가는 길을 선택할 때도 많았다. 이전에 세운 교회를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곳에 가면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이 곳곳에 있는 줄 알면서도 그렇게 한 것은 교회 조직을 굳건히 하기 위해서였다.

 리더의 위치에 있다면 조직 장악력의 은혜와 지혜를 구하라. 모세의 조직 장악력으로 출애굽의 역사가 가능했다. 여호수아의 조직 장악력으로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승리했다. 바울의 조직 능력으로 복음과 교회의 기초가 든든히 닦였다. 위대한 역사를 이루려면 비둘기 같은 순수함과 뱀 같은 지혜로움을 겸비하라. 사람도 중요하고 콘텐츠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조직이 뒷받침되면 훨씬 큰 역사가 나타난다.

 내가 몸담을 조직을 체계적으로 세우면서 내가 몸담은 조직에 책임적으로 임하라. 그런 기본에 충실해야 내가 속한 공동체도 충실해진다. 어떤 대형 교회 목사는 총회 전체 모임은 등한시하고 자꾸만 자기 주도적인 모임을 만들어 이끌려고 한다. 새로운 모임을 만들고 싶으면 먼저 전체 모임에 참여하는 책임성부터 보이라. 성도가 주일예배를 소홀히 하면서 소그룹 기도회만 참석하는 모습도 복된 모습이 아니다. 기도회 참석이 잘못은 아니지만 더욱 책임적인 모습으로 기도할 때 그 기도가 능력 있게 된다.

 리더는 제자를 선택할 때 공동체의 기본 모임에 힘써 참석하는 책임감을 믿음과 인격의 핵심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하나님도 기본에 충실한 책임감을 보고 복을 내려 주신다. 기본 모임에 충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각종 변명을 삼가라. 공동체 생활의 기본에 충실한 후 겸손하고 지혜롭게 변화를 추구하라. 겸손한 종의 자세를 가지고 공동체 모임에 충실할 때 공동체가 건강해지고 튼튼해진다.

4. 중간 리더를 잘 세우라

 조직도 중요하지만 그 조직에 어떤 중간 리더를 세우느냐는 것도 중요하다. 좋은 리더를 만나는 것은 최상의 복이고 최종 리더가 좋은 중간 리더를 만나는 것도 복이다. 조직을 실제로 운용하는 존재는 사람이다. 결국 누가 리더인가에 따라 조직의 미래와 가능성이 크게 달라진다. 최종 리더만큼 중간 리더도 중요하다. 리더를 잘 세우라. 리더 한 사람 때문에 공동체가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더 나아가 리더로 세운 후에는 하나님이 그를 잘 이끌어 달라고 기도하라.

 또한 중간 리더를 잘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동체의 거룩한 뜻을 따라 선한 영향력을 확대시킬 좋은 후대를 잘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 교회가 고속 성장기에 잘못했던 점은 숫자적인 성장에만 몰두하고 인물을 키우지 못한 것이다. 조선은 태조가 창건했지만 초창기 왕조의 토대는 태종과 세종이 닦았다. 그래서 오래 왕조가 유지되었다. 공동체에서도 태조 역할을 하는 인물만 있으면 안 되고 태종과 세종 역할을 하는 인물도 있어야 선한 영향력을 오래 미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제자와 좋은 후대를 잘 키우는 것은 핵심 과제다.

 자녀가 선대의 비전을 계승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선대의 권력이나 금력을 물려받으려는 것이 잘못이지 선대의 좋은 뜻과 선한 비전을 받들어 계승하려는 것은 오히려 장려할만한 것이다. 선대가 마련한 기반에 후대의 인물이 좋은 비전을 확장시켜야 선한 영향력이 오래 지속된다. 나쁜 세습과 좋은 계승은 구분해야 한다. 권력적인 세습은 공동체를 타락시키지만 헌신적인 계승은 공동체를 복되게 만든다.

 현재를 위해 중간 리더를 잘 세우고 미래를 위해 인물 리더를 잘 키우라. 내가 현재 가진 것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그 일을 잘 계승시킬 좋은 리더와 후대도 키우라. 어떤 부모는 성공적으로 살았는데 욕심 많은 자녀를 남겨서 한을 품은 채 이 땅을 떠나고 어떤 목사는 목회를 잘 했는데 후임 목사를 잘못 두어서 한을 품은 채 이 땅을 떠난다. 그런 한이 없도록 좋은 인물 리더와 후대를 잘 키우고 복된 공동체를 만드는 꿈이 후대까지 오래 지속되도록 좋은 씨를 뿌리는 좋은 선배 성도가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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