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부터 시작하라

[ 지거 쾨더 : 착한 목자 ]



본문말씀 : 출애굽기 23장 6-9절


6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 하지 말며 7 거짓 일을 멀리 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8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9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



< 율법의 바탕은 사랑이다 >

 구약의 율법이 겉으로는 엄중한 정의감이 바탕을 이루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랑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율법의 핵심 정신 중 하나가 사랑이다. 사랑이 없는 정의는 참된 정의가 아니고 사랑이 없는 율법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본문에는 재판관이 어떻게 정의롭게 판단해야 할지에 관한 율법이 나오는데 이 율법의 근간을 이루는 바탕도 사랑이다. 구체적으로 재판관에게 어떤 태도가 필요한가?

 첫째, 매사에 공정해야 한다(6절). 가난한 자를 부당하게 대우해도 안 되지만 과도하게 보호해도 안 된다. 만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재판관은 바르게 판단해서 참과 거짓을 분별하고 의인과 악인을 분별해서 무죄하고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아야 한다(7절). 그처럼 재판관은 진실과 지적인 능력을 겸비해야 한다.

 둘째, 뇌물을 받지 말아야 한다(8절). 재판관은 뇌물의 유혹에 노출되기 쉽다. 그 유혹을 이기고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되지 않도록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바른 지적인 능력을 가지며 유혹을 힘써 물리치려고 해야 한다. 그처럼 지정의를 겸비한 바른 인격을 갖춘 사람만이 좋은 재판관이 될 수 있다.

 셋째, 이방인을 압제하지 말아야 한다(9절). 나쁜 재판관들은 이방인들을 부당하게 취급할 가능성이 많다. 그런 폐쇄적인 국수주의를 배격하고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고 사랑해야 한다. 구약시대의 율법은 한마디로 보복의 율법으로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는 것이 그 기본을 이룬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구약 시대의 율법이 추상같은 정의만 내세우는 줄 알지만 실제로는 구약시대의 율법에도 사랑이 그 바탕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그것을 예수님이 새로운 사랑의 계명으로 요약하셨다.

< 사랑으로부터 시작하라 >

 마태복음 5장 38-42절에 다음과 같은 예수님 말씀이 나온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상상을 초월한 높은 차원의 사랑으로 인도하는 이 예수님 말씀은 비폭력주의지만 무저항주의는 아니다. 불의에 저항해야 한다. 물론 폭력이 아닌 사랑으로 저항해야 한다. 오른 뺨을 칠 때 왼 뺨을 돌려대고, 속옷을 가지고자 하면 겉옷까지 주고, 오 리를 가자고 할 때 십리까지 가주라는 말은 사랑으로 정복하라는 말씀이다. 원수가 달라는 대로 다 주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아니고 줄 것은 주되 사랑으로 그를 정복해야 한다. 결국 새 계명은 원수를 사랑으로 정복하는 차원 높은 사랑의 계명이다.

 오늘날 팔레스타인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 하나를 죽이면 정의를 실현한다고 이스라엘 사람은 날이 새기 전에 상대 열 명을 죽인다. 그런 무서운 보복 원칙 때문에 싸움이 그치지 않는 것이다. 원수를 정복하려면 하나의 미움에 하나의 사랑으로 맞서지 말고 열 개의 사랑으로 맞서라. 그것이 바로 새 계명이다. 기독교의 사랑은 ‘소극적인 무저항주의’가 아니라 ‘적극적인 사랑 저항주의’다. 그처럼 사랑으로 원수와 미운 사람을 정복하고 늘 사랑을 삶의 바탕화면으로 깔고 거기서부터 모든 일을 시작하라.  

 사랑스런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했다. 하나님도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똑같이 비취시며 비도 똑같이 내려주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을 볼 때 사람 시각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서 모든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차원 높은 사랑으로 하나님의 더욱 큰 은혜와 사랑을 예비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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