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리더가 되는 길

 

[ 백두리 : 빛의 자리 - 여수, 오동도 ]



본문말씀 : 열왕기하 2장 19-25절


19 그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우리 주인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20 엘리사가 이르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21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22 그 물이 엘리사가 한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에 이르렀더라 23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24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 25 엘리사가 거기서부터 갈멜 산으로 가고 거기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더라



< 인물 리더가 되는 길 >

 성도에게 위기는 기회이고 끝은 시작이다. 엘리야가 이 땅의 사역을 끝내고 승천한 것은 막다른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의 사역을 이어받은 후계자 엘리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야나 엘리사처럼 인물 리더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세상의 소금이 되라

 엘리사의 후계 위임이 마무리될 무렵 여리고 성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했다. “우리 주인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집니다(19절).” 그 말을 듣고 엘리사가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가져오게 한 후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그 소금을 물 가운데 던지며 여호와의 말씀을 전했다.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그 말대로 신기하게 나쁜 물이 좋은 물로 변했다(22절).

 이 장면에서 나쁜 물에 던져진 소금은 예수님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문제 해결을 위해 꼭 필요한 분이고 인생과 세상을 썩지 않게 만드는 제일 요소다. 예수님처럼 썩어져가는 나쁜 세상에 던져진 소금이 되어 세상을 고동치게 하는 맥박 같은 존재, 세상에 생명력을 전하는 거룩한 비타민 같은 존재,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 같은 존재가 되라.

 어디서든지 책임감이 넘치고 고난 중에 비굴하지 말고 선택 앞에서 담대하고 실패 앞에서 좌절하지 말라. 일할 때는 열정적으로 하고 위기 중에는 더 태연해지고 하나님의 일은 용기 있게 해내고 장벽을 만나면 지혜와 인내로 이겨내라. 또한 작은 가능성이 보이면 그 가능성을 불쏘시개로 삼아 큰불을 일으키라.

 삶의 어느 순간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지 말라. 지금 행복의 기초를 놓으라. 주머니는 비었어도 가슴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넘치게 하라.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잘 다스리면서 깊이 사색도 하고 힘써 노력도 하라. 높이 보고 멀리 보라. 때로 실패해도 낙담의 병에 걸리지 말라. 믿음으로 살아도 인생에서 몇 번쯤은 크게 실패한다. 실패했을 때 믿음과 인생에 회의를 품지 말라. 살면서 불면의 순간이나 배신의 순간을 맞이해도 그 순간을 잘 버텨내라. 그러면 개인의 어둠이 물러가면서 세상의 어둠도 물러간다.

 세상의 소금이 되려면 늘 시간과 함께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라. 오늘의 현실이 나를 삼킨다고 생각하면서 절망하지 말고 내일 더 낫게 될 나의 모습을 생각하라. 모든 상황을 판단할 때는 내일에 대한 희망찬 기대를 덤으로 얹고 판단하라. 찬란한 꿈은 대개 온전히 실현되지 않는다. 그 꿈 자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꿈이 현실화되지 않아도 꿈을 가진 것이 꿈을 잃은 것보다 낫다. 늘 꿈을 크게 가지고 시야는 넓게 가지라. 특히 하나님을 붙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소금 리더의 꿈을 가지라.

2. 앞선 리더를 존중하라

 엘리사가 여리고에서 나쁜 물을 고친 후 벧엘로 올라갈 때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했다.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엘리사가 그 조롱을 참지 못하고 뒤로 돌이켜 놀리는 아이들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자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 사십이 명을 찢었다(24절). 그 사건은 엘리사의 인간적인 연약함을 드러낸 사건이면서도 리더를 존중하라는 교훈을 주는 예표적인 사건이다.

 한 목사 아들이 반바지를 즐겨 입었다. 아버지 목사는 그것을 기뻐하지 않았다. 아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자기 친구들이나 사촌들이 다 반바지를 즐겨 입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차 자라면서 그는 아버지의 뜻대로 반바지를 멀리했다. 아버지에게 존경심을 표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그가 나중에 행복한 가정의 핵심 기둥이 되었다.

 자기 생각에 어떤 일이 맞지 않은 것 같아도 부모와 리더의 뜻을 존중하면 잘못되는 일이 없다. 리더가 바른 리더라는 전제 하에서 리더의 잘못된 지침에 순종해서 자신이 더 곤란을 겪게 될지라도 자신이 뿌린 순종과 존경의 씨앗만은 언젠가 반드시 선한 열매를 맺는다. 존경심이 있는 곳에 전진과 승리도 있다.

 한 아내는 남편이 주방의 수도에서 손 씻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남편은 아내가 왜 그렇게 편한 것을 싫어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 날 그가 아내의 눈을 피해 손을 주방에서 씻을 때 하나님이 내적인 음성을 주셨다. “아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 주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해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때부터 아내의 사소한 잔소리까지 존중해 들으면서 하나님 존중하는 법을 훈련했다. 그에게 행복한 가정이 주어진 것은 당연했다.

 가족이 내가 싫어하는 것을 요구할 때 내 생각에 탐탁지 않아도 그 요구를 하나님의 요구로 알고 들어줌으로 그에게 존경심을 표하라. 또한 리더가 공동체 전체를 잘 이끌려고 어려운 부탁을 해도 그 부탁이 나쁜 부탁이 아니면 이런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으라. “얘야, 나를 위해 그것을 해주겠니?” 그 음성에 순종해서 하나님을 명예롭게 하는 사람을 하나님도 명예롭게 해 주신다. 그처럼 리더를 존중하며 기도하면 그 기도가 막히지 않는다. 인물 리더가 되길 원하면 팔로워 때 힘써 리더를 존중하며 따르라.

3. 산 위로 올라가라

 비록 하나님의 심판으로 생긴 일이었지만 암곰 둘이 42명의 아이들을 찢은 사건은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던 엘리사에게 큰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자기 말이 그렇게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지 예상하지 못했다. 그 일로 인해 마음을 굳게 잡으려고 해도 자꾸 죄책감이 들면서 선지자 사역을 포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후계 위임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일을 겪으면서 얼마나 상처와 고민이 깊었겠는가?

 엘리야를 만난 후부터 엘리사는 집요하게 엘리야를 따랐지만 그 사건 후로 사명이 무서워졌을 것이다. 수많은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자신이 무서워졌고 자신을 그런 지경으로 몰고 가도록 만든 사람들이 무서워졌고 사람들이 모인 도시도 무서워졌을 것이다. 그때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마음의 안정을 찾아 사람들로부터 떨어져서 며칠 간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간 곳이 갈멜산이었다. 그때 왜 그는 고향인 요단 동편의 아벨므홀라가 아닌 요단 서편 지중해 쪽의 갈멜산으로 갔는가?

 갈멜산은 엘리야의 주된 활동지로서 거기서 엘리야의 지인들에게 엘리야의 승천 사실도 알리고 엘리야가 남긴 영적인 향취를 느끼려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거기서 엘리사는 기도하면서 엘리야의 후계 위임을 받았던 때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때 마음의 위로를 받고 안정을 찾으면서 사명이 새로워지는 체험을 했을 것이다.

 엘리사가 갈멜산 위로 오른 삶은 하나님께 가까워져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하는 삶을 상징한다. 기도하면 어떤 시험도 극복할 수 있다. 진실하고 겸손하게 간절히 기도하면 무서운 시험도 은혜로운 체험으로 승화된다. 기도는 사탄의 공격을 이겨내게 하는 최대 무기다. 산 위로 올라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기도하거나 골방으로 들어가 하나님과 깊이 대화하며 기도하면 어떤 위기도 극복해내는 인물 리더가 될 수 있다.

4. 산 아래로 내려가라

 엘리사는 갈멜산에서 깊이 기도하면서 마침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 그 뜻은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처럼 산 위로 올라 기도하는 이유는 산 밑으로 내려가기 위한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엘리사는 다시 갈멜산을 떠나 사마리아로 돌아왔다(25절). 그리고 사마리아에서 자신의 사명을 따라 선지자 사역을 수행했다. 결국 은둔하며 선지자 사역을 수행한 엘리야와는 달리 엘리사는 북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선지자 사역을 수행했고 나중에는 왕의 조언자 역할도 했다.

 산 위로 오르는 것도 잘하고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것도 잘하라.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금욕적으로 사는 세례 요한에게는 귀신들렸다고 비난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예수님에게는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세리와 죄인의 친구란 딱지를 붙이면서 비난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들과 어울리는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산 위의 삶만큼 산 아래의 삶도 중요함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였다.

 세상이 어지럽다면서 입산하는 뒷모습보다 어둔 세상에 작은 빛이라도 비추려고 하산하는 앞모습이 더 아름다운 모습이다. 신실한 종교인의 진실한 영성 추구와 율법 중시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와 더불어 한 가지가 그에게 더 필요하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에게 다가가 그들을 빛으로 이끄는 것이다. 산 위에서 산 아래의 일들을 판단만 하는 태도는 결코 복된 태도가 아니다.

 엘리사도 갈멜산에 계속 있으면서 욕심 없이 평안하게 살고 싶었겠지만 그에게는 남다른 사명이 있었다. 그것은 죄악의 소굴인 사마리아로 가서 빛을 비추는 것이다. 그 사명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결국 산 아래로 내려갔다. 그처럼 산 위에서 은혜를 받았으면 산 아래로 내려가서 실천적인 믿음의 삶을 살고 주일에 교회에서 예배를 잘 드렸으면 주중에 세상으로 나가 열심히 소금과 빛의 삶을 살라. 그래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엘리사처럼 왕에게까지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복된 인물 리더가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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