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으라

 

[ 김귤이 작가 : 솟아오름 드로잉4 ]


본문말씀 : 시편 43편 1-5절


1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2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3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4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라 >

 가끔 보면 신실한 성도들도 낙심과 불안에 빠진다. 그것은 현실이다. 믿는다는 것은 고통이 없다는 말이나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다. 고통이 있을 때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고통이 있을 때 고통을 느끼고 어려움이 생기면 잠깐 실망하고 낙심할 수 있다. 고통 중에 고통이 없는 척하는 것은 위선이고 만약 진짜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면 그것은 큰 위험 신호다.

 믿음은 눈물을 없애주는 것이 아니다. 눈물은 슬픔의 정화 장치로 주어진 선물이다. 감정과 욕망 자체도 나쁜 것은 아니다. 감정과 욕망의 표출에 대해 너무 죄책감을 가지거나 실망하지 말라. 누구에게나 연약한 모습은 있다. 문제는 감정과 욕망 문제에서 통제력을 잃는 것이다. 힘들 때 울고 슬퍼하고 분노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감정을 극복하고 자기 사명을 다하려고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의 능력이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믿지만 극심한 고난으로 낙심과 불안에 젖어 있었다(5절). 그처럼 살다 보면 낙심과 불안에 빠져서 믿음에 회의가 생기고 기도할 의욕을 잃고 삶이 회색빛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경험은 신실한 성도에게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낙심과 불안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낙심과 불안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려면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시편 43편에는 ‘나’란 단어가 많이 나온다. 시인이 자기 문제에 집착하고 있었다. 자기에 집착하면 더 깊은 수렁에 빠진다. 자기에 집착할수록 자기 죄와 허물과 모순과 상처가 크게 보이면서 갈등과 연민에 빠져 모든 것을 버리고 싶은 생각도 커진다.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라. 사람에 대한 기대를 가지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원대한 뜻과 계획과 섭리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면 낙심과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

<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으라 >

 시인은 질문했다.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 왜 원수의 억압 때문에 이렇게 슬프게 다닙니까?” 이 질문은 비생산적인 질문이다. 왜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는가? 성도가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지 하나님이 성도를 버리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찾으려고 멀리 갈 필요도 없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다. 낙심과 한탄의 질문을 할 때도 하나님은 함께 계신다.

 사람들은 종종 정확한 대답도 얻기 힘들고 전혀 유익도 없는 질문에 몰두한다. 그런 질문들이 철학자는 되게 해도 복된 성도가 되게 하지는 않는다. 비생산적인 질문에 몰두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으라. “하나님! 제가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라고 질문할 때 하나님이 그 질문에 잘 대답해주신다고 해서 그 답이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해답’이 아닌 ‘해결’이다. 즉 ‘앤서(answer)’가 아닌 ‘솔루션(solution)’이다.

 암 환자가 의사에게 질문한다. “선생님! 왜 제가 암에 걸렸습니까?” 그때 의사는 암의 발병 원인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그때 원인을 알고 고개를 끄덕거려도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기에 낙심과 불안은 계속된다. 만약 그때 최고 명의가 이렇게 말한다고 가정해보라. “암에 대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그 분야의 전문가니까 얼마든지 치료합니다.” 그런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사람의 말을 듣고 믿음이 생길 때 낙심과 불안이 사라진다.

 사람은 고통을 잘 분석해주는 ‘해답의 말’을 듣고 낙심에서 벗어나기보다 고통 중에도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을 믿을 때 낙심에서 벗어난다. 정말로 필요한 것은 ‘설명’보다 ‘약속’이다. 사람들이 “내게 미래가 있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고 고민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게 계획이 있다. 나를 신뢰하라. 나를 의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그 약속을 의지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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