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삶을 사는 길

 

[ 김귤이 작가 : 나는 어떤 예쁜 돌덩이가 되기로 했다 ]


본문말씀 : 마태복음 27장 57-66절


57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58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 59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60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61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62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63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64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65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66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 하나님의 사명을 앞세우라 >

 고려 26대 충선왕 때 A라는 충성스러운 신하가 있었다. 그즈음에 원나라가 고려를 원나라의 한 성으로 만들려는 입성책동을 꾀하자 A는 원나라 황제에게 주청해 그 계획을 무산시켜서 1등 공신이 되었다. 그리고 28대 충혜왕 때 정승에 올랐고 31대 공민왕 때는 오늘날의 총리인 문하시중에 올랐다. 점차 그의 가문은 가세가 올라서 그의 아들은 병조판서를 지냈고 그의 손자는 고려의 마지막 34대 왕인 공양왕 때 왕의 교육, 외교문서 작성, 과거 관장, 서적 편찬을 맡은 한림학사를 지냈다.

 그 후 이성계에 의해 고려가 망하자 한림학사였던 A의 손자는 두 왕을 섬길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 자신이 살던 집을 불사르고 자손들을 낙향시킨 후 자신은 관과 옷을 찢고 개성 두문동(杜門洞) 서원에 들어가 바깥세상으로 나오지 않고 조선의 모든 벼슬을 거절했다. 그래서 두문불출(杜門不出)이란 단어가 생겼다.

 자신이 충절을 내세워 두문불출하는 것까지 좋지만 그 한림학사는 후손들에게 지나친 유지를 내렸다. 조선 왕조에서는 절대 과거를 보지 말라는 유지였다. 충절 가문이란 명예를 중시한 후손들에게 그 유지는 무서운 족쇄였다. 결국 조선왕조 5백 년 동안 A 가문의 후손들은 학문이 높았어도 한 명도 과거를 치지 못했고 그저 선비로서 시골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동몽교관 등을 하며 특출한 인물도 배출하지 못했다.

 조선왕조 개국 5백 년쯤 지났을 때 A 가문 출신의 한 소년이 부친에게 말했다. “아버님, 급변하는 국제정세에서 나라가 위태한데 시골에서 학문만 쌓고 있으면 됩니까? 세상을 위해 쓰임 받지 못하는 학문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조선 왕조에서 과거를 보지 말라는 조상의 유지를 받드는 것보다 과거에 급제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물이 되는 것이 더 소중한 대의일 것입니다. 과거를 보게 해 주십시오.”

 옛날에는 가문에서 쫓겨날 불충이었지만 평소에 그 부친도 같은 생각을 가졌기에 결국 아들에게 과거를 보도록 허락했다. 마침내 그 소년은 17세 때인 고종 28년(1891년)에 과거에 급제했다. 조선왕조 개국 499년 만에 A 가문에서 배출된 첫 과거 급제자였다. 그런데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물의 꿈이 얼마 후 일제의 침략으로 꺾였다. 결국 그 소년 등과자도 오래 전 선조처럼 두 나라에 충성할 수 없다면서 두문불출에 들어갔다.

 다만 그 등과자는 오래 전 선조와는 달리 아들들에게 나라를 잃었다고 은둔한 채 지내지 말고 잘 준비된 후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물이 되라는 유지를 남겼다. 그중의 한 아들이 부친의 뜻을 받들어 일제 강점기 때 북한에서 최고 고등교육을 받고 해방 후 남하해서 인물의 꿈을 펼쳤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대신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아들 목사에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물이 되라고 당부했다.

 그 후 아들 목사는 수시로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특출한 능력도 없고 이재에도 밝지 않고 마음이 약해 남을 잘 부리지도 못하고 세상 변화에 대한 적응도 느린데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물이 됩니까?” 그때 하나님이 마음속에 이런 음성을 주시는 것 같았다. “네 사명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너의 꿈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마음이 평안해졌다. 어떤 자리를 말없이 지키는 것만은 비교적 잘했기 때문이다. 그 후 열심히 자기 자리를 지켜 쓰임 받는 인생으로 준비될 수 있었다.

 후대에게 시대의 변화를 무시한 완고한 유지나 의를 빙자한 미움을 남겨서 후대의 인물의 꿈에 대못을 박지 말고 부활의 믿음을 남겨서 복의 문을 열어 주라. 세상에 실망했으면 더 배우고 정진한 후 세상에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물이 되라. 나의 감정보다 하나님의 사명을 앞세우라. 선거 후에 내가 원하지 않는 리더가 세워졌어도 두문불출하지 말고 더 준비한 후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는 인물 성도가 되라.

< 부활의 삶을 사는 길 >

 세상이 어둡다고 세상과 담을 쌓지 말고 잘 준비된 후 세상에 들어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부활의 삶을 살라. 그처럼 내 안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예비하고 세상에서 부활의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은밀하게 제자로 준비되라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금요일 저녁 6시쯤 안식일이 막 시작될 때 갑자기 등장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었는데 알고 보니까 그도 예수님의 제자였다(57절). 그는 오늘날의 국회의원인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다(막 15:43). 그는 예수님의 숨겨진 인물 제자로서 소리 없이 예수님을 후원했고 선하고 의로운 공회원으로서 예수님을 죽이려는 산헤드린 공회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않았다(눅 23:50-51).

 거의 모든 공회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할 때 그는 예수님을 구하려고 노력했지만 그 노력은 허사가 되었다. 당연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류 구원을 위한 예정된 수순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질 때 자신을 지키려고 은밀하게 애썼던 그에게 고마워하면서도 세력 과시를 위해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 같은 공회원들도 내 제자다.”라고 하지 않고 그들이 스스로 커밍아웃을 할 때까지 그들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었다.

 아리마대 요셉 같은 은밀한 예수 제자의 꿈을 품고 음지에서 천국 확장에 일조하라. 소리 내고 헌신해도 되지만 소리 없이 헌신하면 더욱 극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이 이뤄진다. 그처럼 소리 없이 헌신하는 인물이 되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서 힘과 영향력을 키우라. 아리마대 요셉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이 준비된 것처럼 준비된 인물 제자를 통해 예수님의 재림이 준비되고 인생과 세상과 사역에 부활의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월새기(월간새벽기도)> 사역도 지금까지 소리 없는 후원자로 인해 지속될 수 있었다. 요즘 경제난으로 발행 비용은 늘고 후원은 줄어드는 이중고의 상황이 <월새기> 사역에도 닥쳤다. 지금까지 그런 위기가 몇 번 있었다. 이번의 위기도 잘 극복될 것이다. 더 나아가 아리마대 요셉 같은 인물 후원자가 등장하면 <월새기 영어판> 사역도 시작될 것이다. 그런 극적인 반전의 역사를 통한 보람과 기쁨은 소리 없는 헌신자의 것이다.

2. 제자임을 세상에 드러내라

 예수님의 제자가 된 후 아리마대 요셉은 계속 음지에서 예수님을 후원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당시의 반대 세력이 겁나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을 꼭 필요로 하는 결정적인 때에 자신을 과감히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그때가 바로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였다. 그때 그는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다. 그런데 어떤 감동을 받았는지 신기하게도 빌라도는 예수님의 시체를 내 주라고 명령했다.

 빌라도의 허락 명령이 떨어지자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갔다(59-60절). 십자가형을 받고 죽은 사람을 신분 높은 부자 공회원이 자신의 새 무덤에 장사하는 모습은 당시 주변인들에게 신비함 경외감을 자아냈을 것이다. 그처럼 은밀하게 잘 준비된 후 때가 되어 하나님이 부르면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고 변화의 역사와 부활의 역사를 감동적으로 이끌라.

 잘 준비되지도 않고 때가 되지도 않았는데 자신을 드러내고 과시하면 대개 영광스러운 삶보다 오히려 수치스러운 삶이 펼쳐진다. 자랑과 과시를 삼가라. 자랑하고 과시하면 성령님이 함께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도 멀어지지만 은밀한 선행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이 다 기억해 주시고 냉수 한 그릇의 대접까지 기억해 주신다. 또한 은밀한 기도도 하나님은 다 듣고 최선의 응답을 내려주신다.

3.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라

 예수님이 장사된 다음 날인 안식일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와서 요청했다.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았을 때 사흘 후 다시 살아나리라고 했습니다.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도록 명령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시체를 도둑질해 가서 백성에게 그가 부활했다고 하면 사람들이 더 크게 속을 것입니다(63-64절).”

 그 요청을 듣고 빌라도가 말했다.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그러자 교권주의자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켰다(66절). 그런 엄중한 경비 상황에서도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그 부활이 제자들이 꾸며낸 소문이 아닌 확실한 사실임을 나타낸다. 예수님은 확실히 부활하셨다. 그 부활을 확신하면 내 인생에도 부활의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면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도 확신하면서 삶에 놀라운 여유가 생긴다. 그때 미움도 사라진다. 즉 의인에겐 영생의 부활이 있고 악인에겐 영벌의 부활이 있음을 확신하면서 악인과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이 오히려 불쌍하게 보이는 사고의 대전환이 이뤄진다. 그렇게 미움과 상처가 극복되면 모든 면에서 회복의 역사가 이뤄진다. 그때 건강과 가정도 회복되고 관계와 사명도 회복되기에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 순종이 충분히 가능해진다.

 왜 헛된 미신에 빠지는가? 죽음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 때문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더 죽을 일만 생기고 불행의 사자가 신나게 찾아온다. 그러나 죽음 이후의 부활의 영광을 믿고 기뻐하면 죽음과 불행의 사자가 범접하지 못한다. 결국 인생의 궁극적인 복과 행복의 최대 원천은 부활의 확신이다. 죽음의 문제를 애써 외면하지 말고 직면하라. 그와 동시에 부활의 확신을 가짐으로써 죽음을 영생으로 통하는 웜홀로 삼으라.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그 부활을 확신하고 성도의 부활도 확신하면서 늘 성도답게 자신감 있고 멋지게 살아가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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