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와 위치를 지키라


 

본문말씀 : 민수기 2장 16-17절

16 르우벤 진영에 속하여 계수된 군인의 총계는 십오만 천사백오십 명이라 그들은 제이대로 행진할지니라 17 그 다음에 회막이 레위인의 진영과 함께 모든 진영의 중앙에 있어 행진하되 그들의 진 친 순서대로 각 사람은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들의 기를 따라 앞으로 행진할지니라





순서와 위치를 지키라 (민수기 2장 17절)

< 이스라엘 지파의 행군 순서 >

 민수기 2장은 이스라엘 각 지파의 진영 배치와 행군 순서에 관해 기록된 장이다. 성막 동편은 성막 출입구가 있는 쪽으로 유다 지파를 중심으로 잇사갈, 스불론 지파가 진을 쳤다(유다 군단). 성막 남쪽에는 르우벤 지파를 중심으로 시므온, 갓 지파가 진을 쳤다(르우벤 군단). 성막 서편에는 에브라임 지파를 중심으로 므낫세, 베냐민 지파가 진을 쳤다(에브라임 군단). 성막 북편에는 단 지파를 중심으로 아셀, 납달리 지파가 진을 쳤다(단 군단).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중심에 있었다. 행군을 할 때는 동쪽의 유다 군단이 행군대열의 제일 앞에 서서 선봉의 역할을 했고 북쪽의 단 군단은 제일 뒤에 서서 후방의 수비를 담당했다. 제2대로 행진했던 르우벤 군단에게 맡겨진 중요한 사명은 제2대로 행진하면서 뒤에 따라오는 성막과 성막을 관리하는 레위 지파를 보호하는 일이었다. 회막(성막)은 레위인의 진영과 함께 모든 진영의 중앙에 두었다(17절). 결국 네 군단 중 유다와 르우벤 군단은 회막 앞에서 행진했고 에브라임과 단 군단은 회막 뒤에서 행진했다.

 하나님은 진을 성막을 중심으로 치게 했고 행군할 때도 성막 보호를 위해 성막을 가운데 두게 하셨다. 무능한 사람이 어떻게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호하는가? 결국 사람이 하나님을 보호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이름을 지키라는 말이다. 사람은 입는 옷에 따라 행동도 상당히 달라진다. 신사복을 입으면 신사 행동이 나오고 예비군복을 입으면 이류 행동이 나온다. 말씀의 옷과 경건의 옷을 입고 하나님이 무서운 줄 알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때 하나님 영광과 이름을 지킬 수 있다.


< 순서와 위치를 지키라 >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진 친 순서대로 각 사람은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들의 기를 따라 앞으로 행진하라고 하셨다. 즉 행진할 때 순서와 위치를 지키라는 뜻이다. 40년 광야생활 동안 2백만 명이 움직일 때 순서와 위치를 지키지 않으면 뒤죽박죽이 된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불의한 것이 아니라면 기득권도 존중하고 앞선 사람도 존중하고 법과 규칙과 일반상식도 힘써 지키려고 해야 점차 앞서 나아갈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

 민수기 2장에서는 전체 행군 순서가 유다 군단, 르우벤 군단, 레위 지파, 에브라임 군단, 단 군단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실제 행군 순서는 유다 군단, 성막 물품들을 운반하는 레위 지파의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 르우벤 군단, 성막 성물들을 운반하는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 에브라임 군단, 단 군단이었다(민 10:11-28). 왜 그렇게 순서와 위치를 지켜 행군했는가? 질서를 지켜야 공동체의 생명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사실상 모든 생명체는 질서와 위치를 지킬 때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그 질서를 하나님이 부여하셨다.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생명의 질서 가운데 자유를 누린다는 것이지 무제한적인 자유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작은 생명의 씨앗만 봐도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그 작은 씨에 함축된 하나님의 질서가 대단하다. 그 작은 것이 자라 산소를 내뿜으면서 지구도 살리고 사람도 살린다. 씨앗은 오래두어도 잘 썩지 않는다. 씨가 어떻게 그 위대한 성장을 하는가? 하나님의 자연적인 섭리에 저항하지 않고 자신을 맡기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에 나를 편승시키는 것이 믿음이다. 나의 힘을 하나님 앞에 굴복시키라. 초라한 씨앗도 하나님의 거대한 창조적인 능력에 저항하지 않고 맡길 때 수만 배의 자기 형상을 만드는데 뭘 좀 배우고 안다고, 잘났다면서 하나님의 뜻을 거부한다면 하나님이 안타깝게 보실 것이다. “너희들은 이 씨만도 못하구나!” 자녀를 기를 때 사랑스러운 자녀가 미워질 때가 있다. 언제인가? 온전히 맡기지 않을 때다. 아기 때는 다 맡기다가 점점 커지면 안 맡긴다. 그럴수록 부모의 은혜도 줄어든다.

 하나님께 맡겨야 은혜를 입는데 사람만은 유독 무엇이 되기만 하면 잘 안 맡긴다. 처음에는 맡기지만 점차 “내가 해야지.”라고 하는 순간 하나님 앞에 무익한 존재가 된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말씀의 자리다. 나의 위치를 벗어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나를 조율하라. 하나님 안에서 나의 위치를 분명히 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나를 조율하며 나아갈 때 사람은 궁극적인 의미에서 후퇴가 없고 잠깐 후퇴가 있어야 곧 전진의 역사가 펼쳐질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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