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이 정의다
본문말씀 : 갈라디아서 2장 8-10절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 소명의식을 가지라 >
바울은 하나님이 베드로를 유대인의 사도로 삼으셨고 자기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다고 믿었다(8절). 그런 소명의식이 뚜렷했기에 온갖 시련과 오해에도 흔들림 없이 자기 사역을 수행할 수 있었다. 삶의 목적을 “돈을 벌겠다! 유명해지겠다!”라는 것이 되게 하며 나를 위해 살기보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따라 살라. 그러면 하나님이 나의 삶을 책임져 주신다. 그 삶의 목적을 위해 물질과 은혜와 축복이 필요하다면 물질과 은혜와 축복을 주실 것이다.
사람들이 왜 비상을 주저하는가? 불편과 오해와 공격을 감수하며 그렇게 비상하려고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또한 남들이 높이 비상하는 사람을 따돌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높이 날면 하늘의 신비와 기쁨을 누릴 수 있는데 현실에 안주하면서 이상을 그냥 이상으로만 간직하며 살면 불행한 일이다. 믿음 생활을 할 때 가장 달라져야 할 것은 삶의 목적과 사명이다. 사명을 따라 살 때 책임적인 삶과 복된 삶도 극대화된다.
신약 성도는 이방인으로 예수님을 믿고 천국 백성이 되어 혈통적인 아브라함 자손보다 더 큰 복을 얻었다. 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고 감격하고 기억하며 남은 생애를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빛을 비추며 살라. 그런 소명의식을 가지고 사람과 사회의 변화의 동인이 된다면 그 인생이 얼마나 복된 인생이 되겠는가? 늘 소명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려고 힘쓰라.
< 나눔이 정의다 >
바울이 뚜렷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힘 있게 사역하자 초대 교회에서 기둥 같이 여기는 지도자들인 야고보, 게바(베드로), 요한은 뒤따라 은혜 받은 바울과 바나바에게 친교를 악수를 청하며 그들을 인정해 주면서 서로 맡은 영역을 존중해 주었다(9절).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이자 예루살렘 교회의 초대 감독이었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고, 요한은 예수님의 가장 사랑 받는 제자였다. 그들이 서로를 인정하는 모습은 복된 모습이다.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바울과 바나바의 영역을 존중해주면서 다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가난한 자들을 잘 돌봐달라고 특별히 부탁했는데 바울은 자기도 가난한 자 돌보는 일에 본래부터 힘썼다고 말했다(10절). 당시 가난한 자는 복음 전파의 핵심 대상이었고(마 11:5), 예수님은 영생의 진리를 추구하던 부자 관원 청년에게 자기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셨다(마 19:21). 초대 교회에서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바울과 바나바에게 구제를 부탁했고 바울도 구제를 중시하며 가르쳤고 힘써 행했다.
삶에서 두 가지 편견을 버리라. 첫째, 부자에 대한 편견을 버리라. 많은 사람이 어떻게 벌었는지에 대한 고려도 없이 부자에 대해 무조건 좋게 생각하든지 아니면 무조건 나쁘게 생각한다. 둘 다 잘못된 태도다. 둘째, 빈자에 대한 편견을 버리라. 그를 무조건 나태한 존재로 여기지도 말고 무조건 편들지도 말라. 물질 유무와 상관없이 바르게 판단하는 편견 없는 자세를 가지라. 동시에 가난한 자들과 사회적 약자를 힘써 살펴주라.
가난한 사람과 사회적인 약자를 돌보는 삶이 빠지면 교회의 큰 부분이 빠진 셈이 되고 믿음생활과 말씀생활에서도 큰 부분이 빠진 셈이 된다. 성경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많다. 추수할 때 밭 한 모퉁이는 남겨두고 희년에 빚을 탕감해주라는 계명은 가난한 약자들의 살 권리를 보장하려는 계명이다. 하나님은 세상에 잠시 나그네로 온 자들이 혼자 다 차지하기보다 나눔을 통해 서로 지친 삶을 위로해주며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나눔은 선행이 아닌 정의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언약을 따라 회개 기회를 주시고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그런 은혜의 흐름이 성도를 통해 흘러내려가 사회적 약자를 살펴주고 진심으로 그를 받아줄 때 비로소 복된 세상이 열린다. 자비의 사회화를 꿈꾸고 실천하라. 예수님이 꿈꾸셨던 세상은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중하는 세상이다. 갈 길이 멀어도 낙심하지 말라. 가야 할 길을 찾은 사람은 낙심할 수 없다. 하나님이 그 길에 늘 동행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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