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을 위해 추구할 5가지

[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 양 ]



본문말씀 : 누가복음 18장 18-34절


18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20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1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3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24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6 듣는 자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27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 영생을 위해 추구할 것 >

 사람들은 병들면 치유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지만 치유가 영원한 것이나 최종 목표는 아니다. 치유는 이 땅에서 체험하는 영생의 맛보기다. 중요한 것은 영생을 준비하고 영생을 얻어 누리는 것이다. 영생의 은혜를 얻기 위해 추구할 것이 무엇인가?

1. 영생 진리

 어느 날 한 청년 관리가 예수님께 ‘선한 선생님’이란 존칭을 쓰며 “제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라고 물었다(18절). 그는 율법을 잘 지키는 것만으로는 영생을 얻지 못함을 깨달은 것 같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19절).” 예수님은 청년이 가지고 있던 인간적인 선에 대한 자부심을 낮추시려는 의도로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사람은 법을 잘 지키면 자기 의에 대한 자부심을 지나치게 가질 수 있다. 그런 율법적인 태도와 영성을 자랑하는 태도를 삼가라.

 예전에 누군가가 한 목사에게 질문했다. “목사님! 축복이란 한자로 ‘복을 비는 것’이란 뜻인데 ‘하나님의 축복’이란 표현은 하나님이 복을 달라고 빌 하나님보다 더 큰 신이 있다는 말이니까 잘못된 표현이고 ‘하나님의 복’이라고 표현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이란 말은 ‘하나님이 더 전능한 신에게 복을 비는 것’이란 뜻보다 ‘하나님이 복을 빌어 주고 약속하고 내리는 것’이란 의미로 통용되어 쓰이기에 한자 뜻풀이에 집착한 그런 질문은 질문 형식을 빈 은근한 지식 과시다.

 질문에 나의 지식과 영성 자랑이 섞이지 않게 하라. 전체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않고 지엽적인 표현으로 진리 유무를 엄밀히 따지면 따질 것이 너무 많다. 성경에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예수님이 말씀하신다’는 표현은 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표현은 틀린 표현이라고 이렇게 물을 수 있다. “하나님이 사람처럼 입을 가지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표현은 잘못된 표현 아닙니까?”

 사소한 행동이나 표현 하나를 꼬투리로 잡아 비판하며 나를 은근히 드러내지 말라. 언어 표현은 시대상과 문맥에 따라 뜻과 개념이 달라진다는 시인 의식을 가지라. 시인은 짧은 말로 사실과 사물과 사상을 감동적으로 표현해내는 사람이다. 영성이 있어도 자랑을 삼가는 영적인 시인이 되라. 소모적인 논쟁에 집착하면 영적인 시인이 될 수 없다. 영성 자랑을 추구하지 말고 영생 진리를 추구하라. 영생은 겸손히 진리를 추구하는 자의 것이다.

2. 이웃 사랑

 예수님은 율법을 잘 지킨다는 자부심이 충만한 청년 관리에게 왜 영생 조건으로서 십계명의 하나님관계에서 지켜야 할 1-4계명은 말씀하지 않고 십계명의 순서를 달리한 채 인간관계에서 지켜야 할 5-9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나(20절)? 아마 당시 종교인들이 하나님 사랑에만 집중하고 이웃 사랑은 소홀히 하는 위선을 지적하려는 의도도 있으셨을 것이다. 그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가 대답했다.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21절).”

 그의 자부심이 넘치는 말을 듣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22절).” 물질에 집착하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암시다. 또한 나눔만 있고 따름이 없어도 안 된다는 뜻이다. 나눔과 따름이 병행될 때 주님의 온전한 제자가 될 수 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사실상 하나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웃을 사랑하게 되고 이웃 사랑은 하나님 사랑의 표식이다.

 어떤 사람은 탄식한다. “하나님과 이웃을 기쁘게 하고 싶은데 돈이 없네요. 나중에 돈이 생기면 하나님의 뜻과 이웃을 위해 잘 사용할게요.” 그 ‘나중’은 영원히 오지 않을 수 있다. 돈이 많아야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돈이 적을 때부터 나눔을 훈련하라. 하나님은 꿔서 나누거나 많이 나누거나 미래에 나누라고 하지 않고 지금 가진 것을 겸손히 나누라고 하신다. 나중에 주면서 살아도 좋지만 지금부터 나중까지 주면서 살면 더 좋다. 형편이 부족해도 나눔을 실천하면 마음이 풍성해진다.

 나눔의 도구가 물질만은 아니다. 마음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 이해와 배려도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타인 감수성을 길러 바르게 사랑하라. 사랑도 남이 수긍할만한 사랑 방법을 가지고 배려하며 사랑하는 것이 진짜다. 옛날에는 남자의 박력을 멋으로 착각하고서 박력 있고 멋지게 한다고 했던 남자의 언행에 여자가 상처 받고 신음하는 경우도 많았다. 박력도 조심스럽게 행하지 않으면 천박이 된다. 시대 흐름을 읽는 성숙한 시야로 타인 감수성을 키워 이웃 사랑이 발전적인 모습이 되게 하라. 참된 이웃 사랑이 참된 하나님 사랑이다.

3. 하나님 은혜

 예수님의 나눔을 도전하는 말씀을 듣고 청년 관리가 큰 부자였기에 심히 근심했다(23절). 그 모습을 보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24-25절).” 당시에 불가능한 일에 대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간다.”라고 표현했다. 즉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말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때 예수님이 진짜 들려주기를 원했던 핵심 메시지를 말씀하셨다.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27절).” 하나님 안에서는 부자도 얼마든지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결국 영생을 얻으려면 다른 어떤 것을 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사람의 힘만으로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 하나님이 은혜의 문을 기적적으로 열어 주셔야 결국 구원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의 문은 사람의 상상을 초월해 열린다. 내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고 주일성수를 하는 것도 큰 기적이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통해 그리고 누군가를 통해 구원의 문을 여신 것이다.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구원뿐만 아니라 현재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혼자 힘으로 서려고 하면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사탄의 노리개가 된다. 일생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유지되고 영생은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얻어진다.

4. 복음 전파

 예수님이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라고 말씀하자 베드로가 자부심이 넘쳐 말했다.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28절).” 그때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르는 삶의 참된 의미와 축복을 교훈하려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29-30절).” 그만큼 복음 전파의 축복이 큰 축복이란 뜻이다.

 로마서 8장 28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합력하여 선이 이뤄지는 기독교적인 만사형통의 역사를 이루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어떤 현상이 생기는가? 자꾸 자랑하고 싶다. 전도를 어렵게 여기지 말라. 전도는 하나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나고 체험한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다.

 입으로 예수님을 시인도 하고 자랑도 하라. 복음 전파는 성도의 선택 사항이 아닌 필수 사명이다. 예수님이 정말 내 구주라면 남에게도 구주가 되도록 힘쓰라. 남도 은혜 받도록 힘써야 내게도 은혜가 임하고 남도 천국에 들어가도록 힘써야 내가 진짜 천국 백성이다. 성도의 핵심 사명을 복음 전파로 여기고 힘쓸 때 삶의 방황이 끝나면서 천국 역사도 강하게 나타나고 마침내 영생을 얻을 것이다.

5. 말씀 지식

 예수님은 희생의 축복을 말씀하신 후 제자들만 희생시키는 거짓 교주가 아니셨다. 그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앞서 예루살렘으로 가면서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다(32-33절). 그 말씀을 당시 제자들이 하나도 깨닫지 못했다. 왜 깨닫지 못했는가?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34절). 3년간 함께 했던 제자들조차 예수님 말씀을 잘 깨닫지 못한 것을 보면 사람의 말씀 지식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잘 알 수 있다. 말씀 지식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

 어떤 사람은 말씀 지식과 성경 공부는 중시해도 신학 지식은 경시한다. 그러나 정상 교단은 아무리 성경 공부를 깊이 천 날을 해도 목사 안수를 해 주지 않고 신학 공부를 할 때만 목사 안수를 해 준다. 그것은 신학의 가치를 잘 말해 준다. 왜 이단 교주들은 대개 신학을 폄훼하고 멸시하는가? 성경을 자기 뜻대로 해석하고 싶은데 신학이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역설적으로 신학의 가치를 잘 말해 준다. 신학은 성경을 바탕으로 다양한 체계를 세운 것이기에 말씀을 중시하는 사람은 신학도 중시한다.

 말씀을 외면한 죄보다 말씀을 방해한 죄가 크고 말씀을 방해한 죄보다 말씀을 왜곡한 죄가 크다. 바른 말씀 지식을 추구하라. 말씀에서 멀어지면 심판이 가까워진다. 듣기 싫은 말씀도 바른 말씀이면 듣고 듣기 좋은 말도 바른 말이 아니면 듣지 말라.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다(마 5:6). 말씀에 목마른 삶은 영혼의 바이러스를 막아주는 거룩한 백신이다. 손해가 예상되어도 말씀을 추구하고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축복과 행복과 영생을 얻어 누리는 복된 심령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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