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안에 있으라
본문말씀 : 갈라디아서 5장 10-12절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 이별 상황도 감수하라 >
율법주의가 심해지면 육신과 정신이 병든다. 더 나아가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율법주의자를 심판하신다고 했다(10절).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에만 맡기지 말고 필요하다면 교회도 합당하게 심판 조치를 취하라고 하며 이렇게 말했다.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11-12절).”
바울이 말한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면서 십자가의 걸림돌이 되는 자들’을 뜻한다. 그들이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한다는 말은 스스로 교회를 떠나라는 뜻이다. 혹자는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한다.”라는 표현이 일부 거짓된 종교 영성주의자가 내세우는 정결 방법처럼 차라리 생식기 두피를 베기보다 생식기 전체를 베라는 식의 풍자적인 표현으로 유대 율법주의자들을 질책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또한 이 표현에는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스스로 교회를 떠나지 않으면 출교를 시키는 교회의 심판에 대한 권고도 내포되어 있다. 사랑을 내세우는 사도와 교회가 어떻게 출교를 권하는가? 출교의 목적은 육체의 이별을 통해 영혼을 잘되게 하기 위한 조치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필요하다면 이별 상황도 감수하라. 무조건 껴안고 있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다. 사랑함이 변함없고 이미 용서한 채 전략적이고 일시적으로 누군가를 외면하고 떠나보내는 것은 때로 더 큰 사랑의 행위가 된다.
당시 전후사정을 보면 바울이 왜 그렇게 강력하게 권고하는지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당시 ‘다른 복음’을 내세운 사람들은 온전히 구원받으려면 믿음에 더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말은 율법을 다 지켜야 한다는 말로서 속박에서 벗어나 기뻐하는 사람에게 다시 족쇄를 채우는 것과 같다. 믿음으로 기쁨과 자유를 얻은 사람을 다시 율법의 종살이로 만들려고 하니까 바울은 분노하며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저주 받는다고 했고(갈 1:9) 심지어는 교회를 떠나도록 권고까지 한 것이다.
< 은혜 안에 있으라 >
지금 교회에서 선포되는 많은 복음도 일종의 ‘다른 복음’이다. 요새 교회가 쇠퇴하는 핵심 이유는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지금 교인들에게 형성된 하나님 이미지는 자신이 부르면 달려오는 ‘비서 하나님’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어떤 행위를 입력하면 세상적인 축복을 내놓는 즉석자판기처럼 인식한다. 기도할 때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이런 말이다. “하나님! 주소서.” 그러나 하나님을 욕망의 통로로 이용하면 악한 세상을 이길 수 없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사소한 일에도 진노하시고 바른 길로 가지 않으면 즉시 일일이 심판하시는 분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십자가를 지게 하신 하나님은 성도가 끝없는 죄책감을 가지도록 몰아가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성도가 하나님 안에서 기쁨과 평안을 마음껏 누리며 살기를 원하시지만 다른 복음을 내세우는 사람은 성도의 마음을 두렵게 해서 그들을 지배하려 한다.
왜 많은 사람이 왜곡된 ‘다른 복음’에 빠지는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율법주의자가 더 영성 있게 보이기 때문이다. 영성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영성은 일상의 삶을 떠난 거룩함이 아니다. 물론 신앙 체험은 일상의 삶을 초월한 것일 수 있지만 체험 이후의 삶은 일상적인 것이 되게 하라. 성도의 실제 삶은 그의 내면에 있는 믿음을 잘 보여준다. ‘다른 복음’을 따르는 사람은 영성이 있어 보이지만 이기적이고 편협하고 배타적인 경우가 많다.
다른 복음을 따르는 사람을 멀리하라. 필요하다면 그를 공동체에서 떠나보내라.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서 율법주의를 과감히 끊어내는 것이다. “나는 주일에 아무 것도 사먹지 않아. 나는 불신자와 결혼하지 않아.”라는 식으로 자신을 과시하는 것은 영성이 있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결국 자신도 병들게 하고 공동체도 망가뜨린다. 항상 내가 은혜로 구원받은 자임을 잊지 말고 은혜 안에 있기를 힘쓰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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