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보다 은혜를 앞세우라

[ 렘브란트 : 그리스도, 그리고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 ]



본문말씀 : 갈라디아서 3장 19-22절


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4)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20 그 중보자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 율법의 3가지 개념 >

 율법의 존재 이유는 최종 판단을 위해서가 아니라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죄를 짓지 않도록 경고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성도의 임무와 책임을 다 수행한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 율법에는 세 가지 개념이 있다. 첫째, ‘문자상의 율법’이다. 성경에 나와 있는 “우상숭배 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라는 계명 자체가 문자 그대로의 율법이다.

 둘째, ‘해석상의 율법’이다. 예를 들어 “살인하지 말라는 실제 뜻은 무엇일까?”에 대해 해석해야 한다. 전쟁터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것은 살인죄로 여기지 않았다. 정당방위에 의한 살인도 어느 정도 용납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살인인가? 그래서 해석이 필요하다. 즉 살인하지 말라는 더 깊은 뜻은 생명은 하나님께 속했음을 믿고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라는 것이다. 법 자체도 중요하지만 법 해석은 더 중요하다.

 셋째, ‘하위법인 율법’이다. 율법보다 더 높은 상위법이 있기에 때로는 율법 위반도 정당화된다. 예를 들어 안식일을 지켜야 하지만 안식일에 구덩이에 양이 빠지면 구해야 한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법을 지키겠다고 죽어가는 생명을 외면하면 그것이 오히려 죄가 된다. 죽어가는 환자가 있는데 안식일이라고 치료하지 않으면 그것은 간접살인이다. 죽어가는 응급환자를 치료하려고 안식일을 범하면 그것으로 정죄되지 않는다. 그처럼 율법보다 상위의 법이 적용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율법은 행위의 최종판단의 기준이 아니다. 하물며 그 율법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하나님의 상위 언약을 깰 수는 없다. 율법의 목적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부각시키고 하나님의 은혜의 중요성을 더 깨닫게 하기 위한 통로로서의 역할이 주목적이다.

< 율법보다 은혜를 앞세우라 >

 율법의 목적이 무엇인가? 범법이 무엇인지를 나타내려고 더해졌다(19절). 율법만 가지고서는 영혼을 살게 하지 못한다(21절). 또한 율법은 약속하신 자손인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있다고 했다. 그 말은 예수님이 오신 후에는 믿음에 의한 은혜의 법이 율법을 대치할 것이란 뜻이다. 결국 ‘율법과 은혜’라는 주제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려는 것이 믿음생활의 기본이다.

 두 종류의 약속이 있다. 아가페적인 약속과 에로스적인 약속이다. 아가페는 ‘신적인 사랑’이고 에로스는 ‘인간적인 사랑’이다. 아가페는 보답을 계산하지 않는 사랑이고 에로스는 보답을 계산하는 사랑이다. 보통 연애는 에로스로 이뤄지면서 상대로부터 사랑을 받아내려고 한다. 그래서 에로스는 질투를 수반하고 불평과 원망이 생기게 한다. 결국 사랑이란 이름으로 사람을 피곤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에로스다.

 신적인 사랑인 아가페는 사랑을 무조건 주려고 한다. 성경 진리는 그 바탕이 아가페에 있고 세상 철학은 그 바탕이 에로스에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율법 관계는 에로스적인 관계이고 은혜 관계는 아가페적인 관계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아가페의 사랑과 믿음과 은혜의 원리를 앞세워 살기를 원하신다. 결국 믿음, 은혜, 구원, 사랑, 그리고 성도라는 개념은 한 개념과도 같다.

 율법보다 은혜가 먼저 있었지만 은혜를 바르게 받아들이지 못해서 율법이란 부정적인 통제수단이 생겼다. 율법의 목적은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부각시켜 주는 반면교사로 주어진 것이다.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는 율법주의자가 되지 말라. 인간적인 에로스의 사랑보다 신적인 아가페의 사랑을 앞세워야 하듯이 율법보다 은혜를 앞세우라. 율법을 존중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앞세워 살 때 하나님의 은혜도 넘치게 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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