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내일을 소유하라

 

[ 니콜라 푸생 : 만나를 줍는 이스라엘 사람들 ]


본문말씀 : 룻기 4장 1-6절


1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2 보아스가 그 성읍 장로 열 명을 청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하니 그들이 앉으매 3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 4 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 5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6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 인색하게 살지 말라 >

 타작마당에서 밤에 이불 속으로 들어온 룻이 보아스에게 기업 무를 자가 되어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정식 결혼 전에 기업 무를 자의 권리를 정식으로 넘겨받겠다고 하고 그 밤에 룻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그 얘기를 룻으로부터 전해 듣고 시어머니 나오미는 그가 모든 일을 잘 처리할 줄 알고 룻에게 그저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했다. 나오미의 예상대로 보아스는 룻과의 결혼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폈다.

 보아스는 성읍 장로들은 모은 후 그들 앞에서 기업 무를 우선권을 가진 사람에게 나오미가 팔려는 땅을 사라고 하고 그 땅을 사지 않으면 자기가 사겠다고 했다. 그때 그 권리자는 계산기를 두드려 본 후 처음에는 사겠다고 했다가 룻과 계대 결혼을 해서 룻의 전 남편 이름으로 그 기업의 땅을 잇게 해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원래 결정을 번복해 자신의 기업 무를 권리를 보아스에게 넘겨주었다.

 그 친족 권리자의 모습을 통해 계산적으로 살면 결국 손해 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물질적인 손해를 이유로 자기 권리를 포기했지만 결국은 훨씬 더 많이 잃게 되었다. 무엇을 잃었는가? 자기 명성을 잃었다. 그도 엘리멜렉 가문의 땅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베들레헴에서 비교적 재산과 명성이 있는 사람으로 추정되지만 그의 이름은 룻기의 저자까지 본문 1절에서 “아무개여!”라고 실명을 밝힐 수 없을 정도로 수치스럽게 되었다.

 또한 룻처럼 아름답고 현숙한 여인을 아내로 얻는 기회를 잃었고 나중에 다윗의 조상이 되고 메시야의 가문이 되는 놀라운 영광도 잃었다. 결국 그는 오늘의 재산은 지켰지만 내일의 축복을 잃었다. 그것이 계산적인 삶의 비극적인 결말이다. 하나님 앞에서 약삭빠른 사람이 되지 말라. 물질 좀 더 얻겠다고 자기 책임을 회피하면서 주일을 범하지 말고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삶이 없는 인색한 사람이 되지 말라.

< 오늘보다 내일을 소유하라 >

 자기를 드리지 않고 좋은 작품 인생이 될 수 없다. 소금이 맛을 내려면 녹아져야 하고 등불이 빛을 내려면 기름이 자기를 온전히 불살라 없애야 한다. 계산하면서 일부만 불사르면 빛도 나지만 따라 나오는 연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한다. 하나님은 나의 희생과 헌신과 사랑이 끝까지 순수하기를 원하신다. 희생하고 헌신하면서 내게 돌아올 보상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라.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삶이 없어야 시험에 덜 빠지고 비전이 더욱 가치 있게 되면서 하나님의 초월적인 은혜가 임한다.

 지방의 한 가문은 몇 백 년 동안 12대 만석꾼 가문으로 유명했다. 아무리 부자라도 3대쯤 가면 망하기 쉬운데 어떻게 12대 만석꾼으로 지낼 수 있었는가? 그것은 최초로 부의 문을 열었던 12대 선조가 이런 유언을 남겼기 때문이다. “내 땅과 인접한 100리 이내에는 거지가 없게 하라.” 그처럼 베푸는 가문이었기에 더 얻는 가문이 되었다.

 오늘을 희생하고 내일을 소유하라. 흘려내야 흘러들어온다. 계산적으로 살면 자신도 불행해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자란 자녀도 불행해진다. 반대로 헌신하며 살면 자신도 행복해지지만 자녀도 행복해진다. 왜 어떤 사람은 감사하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불평하는가? 그것은 그가 희생과 헌신이 없이 계산적으로 살고 있다는 표식이다. 계산하며 살면 추수를 끝낸 가을 들판이 쓸쓸하게 느껴지지만 헌신하며 살면 추수를 끝낸 가을 들판이 풍성하게 느껴진다.

 인생의 가을과 겨울에 쓸쓸함을 벗어버리고 마음이 풍성해지는 축복의 옷을 입으려면 계산적으로 살지 말고 헌신적으로 살라. 인생의 시련은 감사를 잊고 계산적으로 사는 것은 아닌지를 살피고 천국 길로 향하라는 표지판과 같다. 가끔 힘든 현실이 펼쳐져도 자세히 삶을 되돌아보면 죄와 허물이 많은 내게 하나님의 은혜는 늘 생각보다 풍성했다. 삶에 위기도 있었지만 그 이상의 위로가 있었음을 생각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희생적인 삶을 새롭게 다짐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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