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보다 뿌리가 중요하다
본문말씀 : 룻기 2장 17-18절
17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18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어머니에게 그 주운 것을 보이고 그가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어머니에게 드리매
< 날개보다 뿌리가 중요하다 >
한때 한국 교회에 ‘교회 성장’이란 주제로 세미나가 성행했다. 특히 한국 교회의 성장이 정체되면서 세미나가 더욱 성행했지만 사실상 세미나를 너무 다니면 샘이 나서 목회를 더 못할 때가 많다. 세미나 강사들이 어떤 방식으로 교회 부흥에 성공했다고 하면 듣는 사람들은 샘이 나면서 자기도 그 방식으로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다. 그러면서 자기의 고유한 달란트와 특성과 사명과 위치를 잃어버릴 때가 많다.
요새 세미나는 물고기에게 비행을 가르치고 새에게 달리기를 가르치는 식의 세미나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에는 정형이 없다. 이 사람은 이 길을 가고 저 사람은 저 길을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획일적인 사고를 가지고 창공으로 날면 제대로 날지도 못하고 추락할 가능성이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교회를 보면 교회 성장 세미나가 성행하는 시점과 교회 성장이 정체 시점이 맞물려 있다.
외형주의를 부추기는 교회 성장 세미나는 신중히 고려해서 참석하는 것이 좋다. 그런 세미나에서 배우는 방법들은 대개 날아오르게 하는 날개를 다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이런 말이 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강한 날개로 높이 나는 것은 기분은 좋지만 그 날개 때문에 추락할 수도 있다. 날개도 중요하지만 뿌리는 더 중요하다. 지금 한국교회의 정체는 강한 날개보다 강한 뿌리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일시적 시련이다.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려면 ‘방법의 날개’보다 ‘영성의 뿌리’를 앞세워야 하고 사회도 건강해지려면 보이는 날개 역할의 인물보다 보이지 않는 뿌리 역할의 인물이 많아져야 한다. 잘 보이려고 화장과 옷치장을 하고 명예와 자리로 자기 존재를 드려내려고 하면 내가 가진 소중한 가치들을 잃어버리면서 내면은 점차 텅 비어간다. 보이지 않는 내면을 채우고 뿌리를 깊게 해야 내 영혼도 복을 받고 내가 속한 공동체도 복을 받는다.
< 사랑과 희생을 앞세우라 >
어떻게 해야 뿌리 깊은 사람이 되는가? 사랑과 희생을 앞세우라. 나오미는 귀향 전에 두 며느리에게 자유의 날개를 달아주려고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 모습에서 남에게 날개를 달아주려고 어둔 흙 속을 더듬는 뿌리의 고독을 느낀다. 고통 중에 어떤 사람은 더 나만 알고 날개를 팔딱거리지만 어떤 사람은 더 남과 공감하며 뿌리를 키운다. 뿌리가 없이 날개를 키우면 후반전이 약해 결국 역전패하지만 나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뿌리를 키우면 후반전이 강해 결국 역전승한다.
시어머니의 권고에 오르바는 날개를 펄럭이며 훌훌 날아가지만 룻은 날기를 거부하고 시어머니에게 뿌리를 내렸다. 시어머니의 상처와 눈물을 두고 도저히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초는 자기 몸을 태우면서 빛을 발하지만 사람은 남을 위해 애태우면서 빛을 발한다. 왜 행복이 없는가? 희생이 없다면 행복도 없다.
상대를 통해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상대를 위해 무엇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라. 불행의 핵심 원인 제공자는 어느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가장 큰 문제는 내게 사랑과 희생이 없는 문제임을 자각할 때 점차 불행이 사라지고 행복이 찾아오면서 아름다운 삶의 열매도 넘치게 된다. 사람은 희생할 때 가장 빛나는 인생이 되고 그때 남들도 감동하면서 할 말을 잃고 불평과 잔소리도 잊어버린다.
요새 한국의 가정 문화가 달라지면서 남편이 아내에게 예전보다 많이 죽어지내는 편이다. 특히 아내가 헌신적인 모습을 보일 때는 남편이 아내 앞에서 더욱 잔소리를 하지 못한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사와 감동이 스스로에게 침묵을 재촉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희생에 감동한다. 룻의 희생적인 삶이 동네 사람들과 보아스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국 나오미 가문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었다. 희생할 때 영혼의 뿌리와 축복의 뿌리가 깊어진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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