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의 인물이 되는 길

 

[ 에밀놀데 작품 ]


본문말씀 : 누가복음 23장 46-56절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47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48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49 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50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51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52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53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54 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55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56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



< 좋은 이름으로 기억되라 >

 복되게 살려면 소유욕과 명예욕을 잘 극복하라. 칭찬도 너무 좋아하지 말라. 모든 칭찬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누가 칭찬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좋지 않은 사람의 과한 칭찬을 들으면 오히려 싫다. 그의 과한 칭찬에 다른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이 칭찬하면 하늘을 나는 듯이 기쁘지만 좋지 않은 사람이 칭찬하면 좋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자기 감정과 자기에게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남을 칭찬했다가 비판했다가 하는 사람이 칭찬하면 기분이 유쾌하지 않고 괜히 이용만 당하는 것 같다. 그렇게 칭찬을 이용하는 사람은 칭찬이란 명목으로 아부하는 경우도 많다. 결국 바른 리더가 되려면 누군가의 칭찬에 너무 기분이 업 되지 말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지만 리더가 칭찬에 너무 춤을 추면 바른 리더십을 잃는다. 사람의 칭찬을 너무 기대하지도 말라. 내 이름이 나지 않아도 좋다고 여겨야 시험에 잘 들지 않고 마음도 편하다.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 좋은 것을 지켜 가려는 것에 좀 더 관심이 많은 보수적인 사람이다. 이런 사람도 필요하다. 둘째, 더 좋게 변화시키려는 것에 좀 더 관심이 많은 개혁적인 사람이다. 이런 사람도 필요하다. 셋째, 내게 손해가 되고 이름이 빛나지 않아도 바르고 좋은 편에 서려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가장 필요하다. 넷째, 내게 좋게 하면 좋다고 하고 내게 나쁘게 하면 나쁘다고 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신조어로 ‘관종(관심 종자)의 길’로 가는 가장 불필요한 사람이다.

 왜 자기중심적인 관점으로 남을 비판하는 일에 자주 끼어드는가? 그래야 대중의 관심을 얻기 때문이다. 관심을 받고 이름을 날리려고 유명인을 노골적으로 조롱하며 비판하는 모습을 보면 남들은 그 처절한 열등감을 느끼면서 속으로 비웃는다. 반면에 좋은 일을 음지에서 하면서 이름을 날리는 데 연연하지 않으면 더욱 좋게 기억된다. 전도서 7장 1절에는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다는 말씀이 있다. 음지의 인물이 되어 화려한 이름은 날리지 못해도 하나님과 사람에게 그저 좋은 이름으로 기억되라.

< 음지의 인물이 되는 길 >

 본문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거나 숨은 제자들이 나온다. 그들은 나중에 초대 교회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음지에서 감당했을 것이다. 그런 음지의 인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두려워도 도망치지 말라

 마침내 예수께서 큰 소리로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신 후 숨지셨다(46절). 그 모습을 보고 백부장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말했다.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47절).” 백부장은 당시 예수님의 십자가형을 집행하던 책임자였을 것이다. 그는 사형을 집행하면서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는데 예수님이 돌아가시는 장면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이 의인이었다고 자기도 모르게 고백했다.

 그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장면을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갔다(48절). 그리고 예수님을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았다(49절). 왜 그들이 멀리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장면을 보았는가? 예수님의 일당이라고 잡힐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완전히 외면하고 도망치지는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라면 힘들어도 그 자리에서 도망치지 말고 힘써 지키라. 썰물 때에는 힘들어도 반드시 다시 찾아올 밀물 때를 기다리면서 자기 자리를 굳게 고수하라. 다만 자기 자리를 고수할 때 자기 변화도 없이 고수하면 헛된 고집이 되고 선한 변화도 생기기 힘들다. 자기 자리를 고수하면서도 계속 자신을 성찰하며 자신의 선한 변화를 추구해야 선한 상황 변화도 이뤄진다. 그처럼 나를 선하게 변화시키면서 나의 자리를 굳게 고수하면 행복과 성공 가능성은 커진다.

 현실이 힘들어도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꼭 붙잡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과 은혜를 주실 것이다. 그러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혹시 일이 이뤄지지 않아도 변함없이 감사하면 합력하여 선이 이뤄지고 실패 후에 오히려 참된 성공을 얻는다. 힘든 현실에서 도망치지 말고 묵묵히 내가 해야 할 일을 감당하고 눈앞의 작은 문제부터 해결하며 나아가면 영력도 깊어지고 실력도 커지고 험한 세상을 이기기에 충분한 분별력도 생기면서 인물의 길이 펼쳐진다.

2. 용기 있게 의를 행하라

 당시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로써 예수님의 십자가형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않았다(50-51절). 마태에 의하면 그는 부자였고 예수님의 은밀한 제자였다(마 27:57). 그는 제자들이 다 도망간 상황에서 예수님을 장사하려고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다(52절). 그런 행위로 대중으로부터 욕을 먹고 소외와 핍박을 당할 수도 있었지만 용기 있게 나서서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한 것이다.

 빌라도의 허락을 받고 요셉은 예수님의 시체를 내려 유대인의 전통적인 시체 처리 방식에 따라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었다(53절).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은 부자들을 장사지내는 고급 무덤으로써 요셉은 그 무덤을 자기 가족 무덤으로 조성해 놓았을 것이다. 요한복음 19장 39-42절에 따르면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갖고 와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싸고 유대법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고 했다.

 지금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공회 의원들인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음지의 인물 제자들이었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에 용기 있게 자신을 드러내어 예수님을 장사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준비했던 인물들이었다. 그처럼 평소에 조용히 힘을 기르고 자기가 잘하는 분야에서 인물로 준비되어 꼭 필요한 결정적인 때에 멋지게 쓰임 받으라. 남이 쓰임 받기만 바라거나 기도하지 말고 부족한 나도 얼마든지 멋지게 쓰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기도하고 준비하라.

 많은 사람이 어두운 현실을 바꿀 인물로서 능력과 학력이 있는 인물, 카리스마와 웅변술이 넘치는 인물, 다양한 경력과 돈이 있는 인물을 기다리거나 찾아다닌다. 그렇게 남만 바라보지 말라. 인물이 필요성을 느낄 때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 “얘야, 너도 인물이 될 수 있다. 너도 늦지 않았다. 네가 드린 작은 것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세상을 변화시키는 광풍으로 변할 수 있다. 남을 드리거나 네 자녀를 드리려고 하기 전에 너를 드려라. 그래서 너 자신을 기억될만한 존재로 만들라.”

 그 하나님의 음성에 맞서서 현실적인 나의 음성이 들린다. “솔직히 말해 네 실력이 떨어지지 않니? 너는 카리스마도 없고 가진 것이 없잖아.” 그때 하나님의 약속에 다시 귀를 기울이라. “얘야, 내가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너를 세상에 보내기로 이미 계획했다. 네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하지 않는다. 네게 필요한 것을 충분히 구비해 두었다. 용기를 가지고 일어서라.” 그 음성을 듣고 믿음 가운데 나 자신을 드리는 길에 나서면 점차 하나님의 약속은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있는 것이라는 믿음이 실체화될 것이다.

 나의 간절한 축복 기도에 대한 응답 대상이 남 이전에 나임을 기억하라. 내 꿈을 이루려고 남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찾아다니지 말라.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지금의 현실을 극복할 존재로 선택되었음을 믿고 용기를 내어 계속해서 의의 편에 서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꿈과 약속은 이미 지나가버린 꿈과 약속이 아니다. 그 꿈과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다. 찬란한 꿈과 비전을 새롭게 하라. 일시적인 눈앞의 일은 혹시 포기해도 전체적인 찬란한 비전은 결코 포기하지 말라. 그러면 결정적인 때에 쓰임 받는 음지의 인물로 준비될 수 있다.

3.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라

 누가는 예수님의 죽음과 장례가 매우 급박하고 정신없이 이뤄졌음을 강조하려고 장례 과정에 꼭 필요한 향료와 향품을 준비하지 못한 것처럼 묘사했다. 그래서 갈릴리에서 예수님과 함께 온 여자들이 요셉의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고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었다(55-56절). 그때의 흑암과 같은 안식일도 부활의 축복이 준비되는 과정으로서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하나님 안에서 쉬면서 하나님과 깊이 만나는 구별된 날로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지만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안식 후 첫 날인 주일을 지킨다. 구약의 안식일이나 신약의 주일은 하나님과 말씀 안에서 나를 새롭게 조율한다는 기본 의미는 같다. 현악기 연주 전에 최고의 하모니를 내도록 기준 음에 맞춰 악기를 조율하듯이 주일을 지키는 삶은 성도가 최고의 삶을 만들려고 세상에 나아가기 전에 율법에 맞춰 나를 조율하는 삶이 안식일을 지키는 삶이고 예수님에 맞춰 나를 조율하는 삶이 주일을 지키는 삶이다.

 주일을 지킬 때 주일을 지키는 형식도 중요하지만 형식을 너무 강조하면 형식주의가 된다. 주일에 주님의 뜻을 깨닫고 주님의 삶을 배우고 주님처럼 닮아가야 주일을 지키는 삶이 형식이 되지 않는다. 결국 주일을 지키는 삶의 핵심 의미는 주일을 철저히 지키면서 주님의 삶이란 내용을 영혼에 채워가는 삶이다. 내가 누구를 닮아 가는가에 따라 삶의 질과 모습은 크게 달라진다. 예수님에 대해 배워서 알려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예수님을 배워서 살려고 하라.

 히브리서 5장 8-9절에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이란 말씀이 나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순종함을 배워 온전하게 되셨다고 했다. 순종함에 대해 배우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예수님처럼 순종함을 배워야 온전해진다. 주일예배 말씀을 통해 순종함에 대해 배우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순종함을 배워서 점차 온전해지는 것이 주일을 지키는 삶의 참된 의미다. 이제 평생토록 주일성수에 힘쓰며 세상에 소금과 빛으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복된 심령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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