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우상화하지 말라
본문말씀 : 사무엘상 2장 17-21절
17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18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19 그의 어머니가 매년 드리는 제사를 드리러 그의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20 엘리가 엘가나와 그의 아내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다른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 바친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니 그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매 21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 사람을 우상화하지 말라 >
몇 년 전 하버드 출신 젊은 스님이 무소유를 주장하며 한국 사회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의 책은 엄청나게 팔렸고 방송도 많이 타면서 한국 최고의 셀럽이 되었다. 그러나 불교계 인사들은 그가 불교 교리에서 벗어난 주술, 무속, 최면, 점 등으로 대중을 미혹한다고 염려했다. 또한 그는 방송과 책에서는 무소유를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소유에 너무 집착하고 많아서 풀소유 OO이란 별명을 들을 정도로 이미지가 완전히 추락했다.
일시적인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셀럽화하고 우상화하는 것은 문제다. 더 큰 문제는 무소유가 아닌 풀소유의 증거가 명백해도 여전히 그 셀럽 이미지에 갇히거나 가스라이팅 당한 채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그처럼 우상화 본능은 사람을 무지로 이끄는 무서운 것이다. 가끔 정신을 차리고 내가 어떤 사람을 무분별하게 추종하며 몰상식적이고 저열한 얘기를 듣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피고 폐쇄된 인식의 동굴을 벗어나라.
최근에 유튜브 기반 언론사의 한 기자가 탐사 취재로 유명한 셀럽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의 탐사 취재에 열광했고 그 언론사로 후원금도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왔다. 점차 그 기자의 대중적인 영향력이 커졌고 언론사 내의 영향력도 커졌다. 그러다가 얼마 전 그 언론사 대표가 미국으로 출장을 간지 한 달 만에 그 기자가 이사회를 열어 대표를 해임시키고 생방송으로 그 대표를 파렴치범으로 만든 후 자신이 대표에 올랐다.
처음에 사람들은 셀럽 기자의 방송만 보고 그 대표를 욕했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셀럽에 대한 맹신을 거부하고 그 대표 해임 과정에 의문을 품었다. 그 대표도 죽음의 구렁텅이를 헤매다 정신을 차리고 팩트를 들이대며 반격해서 그 셀럽 기자의 치부도 하나씩 드러났다. 특히 그 셀럽 기자가 언론사 대표를 출장 한 달 만에 쫓아내고 그 언론사로의 출입까지 금지시킨 것은 한국인의 일반 정서에 반하기에 그 대표 편에 서는 사람도 점점 늘고 있다. 그 사건도 셀럽 추종을 경계하라는 교훈을 준다.
왜 많은 한국 교회 담임목사가 안식년을 잘 가지지 못하는가? 그때 교인들 마음이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부목사가 설교를 잘해 교인들에게 셀럽처럼 되면 담임목사가 안식년을 떠났을 때 부목사와 교인들이 가까워지면서 교회가 심리적 분립 상태로 빠져들기 쉽다. 그 후 셀럽 부목사가 담임목사를 비방해 몰아내거나 핵심 교인들을 이끌고 새로 교회를 개척하기도 한다. 그때 서로에 대한 비방전이 벌어지면 결국 셀럽 부목사의 치부도 드러난다. 그처럼 사람을 셀럽화해서 추종하면 언젠가 저주의 그림자가 덮친다.
다윗의 셋째 아들 압살롬은 다윗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온 한 맺힌 백성들에게 자신이 대신 정의를 베풀어 주겠다면서 안아 주고 입을 맞추며 그들의 마음을 훔쳤다. 당대의 최대 미남 왕자가 그러니까 백성들은 압살롬을 열렬히 추종했다. 압살롬의 부드러운 허그와 달콤한 키스로 인해 점점 가스라이팅 당한 것이다. 마침내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에 대항해 반역을 일으켰다. 처음에 그 반역은 추종자들의 열렬한 지지로 쉽게 성공한 것 같았지만 하나님의 진노로 압살롬의 머리가 상수리나무에 걸려 허무하게 죽임 당함으로 결국 실패로 끝났다.
압살롬의 겉사람은 정의의 사도였지만 속사람은 권력의 화신이었다. 그처럼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셀럽을 맹신하지 말라. 이단 교회에서는 교주를 우상화하지만 바른 목사는 “저를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세요.”라고 하면서 스스로 셀럽화를 거부한다. 사회생활을 할 때도 인간 셀럽을 바라보지 말고 진실을 추구하라. 셀럽을 맹신해서 그 셀럽의 사고 안에 갇히는 것은 영혼에 큰 위협이 된다. 사람은 다 부족한 존재임을 깨닫고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겉사람이 아닌 속사람을 분별해 추구하라.
< 겉사람과 속사람의 차이 >
본문에는 육적인 삶을 추구하는 엘리의 두 아들과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무엘이 나온다. 엘리의 두 아들은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는 큰 죄를 저질렀지만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흰색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신실하게 섬겼다. 그처럼 겉사람과 속사람은 예배 태도에서 큰 차이가 있다. 예배 시간을 힘써 지키라. 또한 복장에도 신경을 쓰라. 중요한 사람을 만날 때는 시간도 잘 지키지만 복장도 최고로 한다. 그런 마음으로 예배 시간에 나오라. 그처럼 주일 예배를 최고의 예배로 만들고 더 나아가 주중에 삶으로 드리는 예배에서도 뛰어나라.
또한 겉사람과 속사람은 후일의 보상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사무엘의 겸손한 섬김은 그의 가족에게도 복의 열매로 나타났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무엘을 바친 한나에게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주셨다(21절). 아들 한 명을 하나님께 바치고 후일에 다섯 명의 아들딸을 얻은 것이다. 결국 엘리의 두 아들 같은 겉사람은 오늘보다 내일이 못하게 되면서 점차 길이 막히지만 사무엘 같은 속사람은 오늘보다 내일이 낫게 되면서 점차 길이 열린다.
또한 현재의 시간을 손에 쥔 겉사람과 달리 속사람은 미래의 시간을 손에 쥐었고 후일의 보상을 믿기에 오늘의 손해를 넉넉히 감수하고 용서도 잘 한다. 물론 용서한다고 해서 정당한 법 호소도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의를 굳게 세울 필요성이 있다면 미워하지 않고 용서하면서도 정당하게 법에 호소하라. 또한 용서는 상대의 계속된 공격을 허당처럼 무조건 맞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강하게 대처하면서 멀리하더라도 상대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미워하지 말라. 진심으로 용서하면 하나님의 더 큰 용서를 받는다.
또한 겉사람과 속사람은 행동에서도 차이가 있다. 겉사람은 말이 앞서고 좋은 일을 잘 지속시키지 못하고 약속도 잘 깨지만 속사람은 꾸준히 자기가 한 말을 실천하고 약속을 잘 이행한다. 또한 겉사람과 같이 있으면 에너지를 빼앗기지만 속사람과 같이 있으면 에너지가 충전된다. 겉사람인 10명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없다고 할 때 속사람인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다고 했다. 늘 속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서 셀럽이 아닌 갈렙처럼 척박한 헤브론(Hebron) 땅을 축복의 헤븐(heaven) 땅으로 만들라.
<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라 >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너무 믿지 말라. 특히 신천지를 약속하고 정의를 찾아주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스스로를 셀럽화하는 사람이나 교주는 더 경계하라. 정의로운 셀럽은 적절하게 응원해 주는 정도로 그치라. 그를 극단적으로 추종하면 나중에는 셀럽이 명백한 잘못을 해도 무조건 감싸는 가스라이팅 상태에 이른다. 그처럼 가스라이팅 되면 영혼을 빼앗긴 좀비처럼 된다. 셀럽이 자신을 우상화하는 것도 나쁜 것이지만 그런 셀럽을 추종해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도 나쁜 것이다.
사람을 판단할 때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대중 앞에서가 아닌 소수의 동역자에게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를 오랜 시간에 걸쳐 보고 판단하라. 셀럽의 겉모습에 열광하다 보면 때로는 돈까지 퍼준다. 그러다가 나중에 셀럽의 실체를 알고 사기를 당한 것 같아도 그때까지 자신이 바친 열정과 물질로 인해 오히려 잘못된 셀럽을 두둔까지 한다. 그래야 자신이 바친 열정과 물질이 덜 아깝고 덜 상처 받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끝까지 진실을 외면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면 자기를 잃어버린 불행한 인생이 된다.
교주들이 처음부터 사기를 치려고 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점차 추종자가 많아지고 그 중 일부는 열광적으로 따르니까 점차 변질되면서 사람이 만만해보이고 “사람 속이는 것이 아주 쉽네.”라고 하면서 점차 스스로를 셀럽화하고 우상화하며 사기를 치는 것이다. 군중을 배경으로 셀럽 놀이에 취하면 나중에는 그 군중에 의해 독배를 마신다. 그처럼 셀럽 놀이에 취한 셀럽에게 만만하게 보이지 않도록 냉철함을 잃지 말라. 셀럽의 교만만 탓하지 말고 그가 나를 만만히 보게 한 나의 지적인 태만과 영적인 태만을 반성하라.
교주나 위선적인 셀럽은 추종자들을 겉으로는 위하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개돼지처럼 여긴다. 왜 그런가? 만만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이란 돈이 많은 나라보다 선진국민이 있는 나라다. 즉 만만하지 않은 시민들이 두터운 시민 층을 형성한 나라가 선진국이다. 그래서 선진국민은 시민의 이름으로 주입된 셀럽의 논리에 맹목적으로 빠져들면서 셀럽에게 너무 쉽게 열광하거나 너무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셀럽의 거짓이 오래 가지 못한다.
사람을 우상화하지 말고 교주나 셀럽의 논리와 주장을 무조건 따르지 말라. 그들에게 만만하게 보이지 않도록 나를 성장시키라. 나를 만만하게 보기에 교주나 셀럽이 말도 안 되는 변명과 핑계를 내세워 나를 미혹하려고 하는 것이다. 내 것을 드릴 때도 바른 곳에 드리라. 잘못된 곳에는 많이 드릴수록 그 잘못된 곳의 잘못에 같이 빠져들고 나중에는 돌아서고 싶어도 더 상처가 커지기에 돌아서기가 더 힘들어진다.
잘못된 길로 가는 이단 추종자들에게 정신을 차리라고 하면 그들은 자신이 바른 길로 간다고 여긴다. 심지어는 교주와 셀럽의 명백한 잘못이 팩트로 드러나도 인지 부조화로 인해 “그는 그럴 리가 없어.”라고 하면서 오히려 팩트를 밝힌 메신저를 공격한다. 그 공격은 자기 방어를 위한 무분별한 공격이다. 그처럼 자기 반성이나 자기 교정을 할 줄 모르면 이단과 사이비에 빠지기 쉽고 자기 맹신의 사슬과 회로에 갇혀 불행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사람의 우상화를 지극히 경계하며 말씀과 기도와 배움과 경청으로 감정을 넘어선 냉철한 사고를 배우고 키우라. 한국인의 큰 병폐 중 하나가 ‘너무 정이 많은 것’이다. 적절하게 믿어 주는 것은 필요하지만 특정한 사람을 너무 맹신할 정도로 무분별하게 정이 많은 것은 잘못이다. 내가 한쪽 편으로 치우쳐 나타내는 무분별한 애정과 신뢰가 상대편에게는 진실을 가리는 야만적인 폭력과 행패가 될 수 있다. 그처럼 애정이 진실을 은폐하지 않도록 사람 간의 갈등과 다툼이 첨예할 때는 냉철하게 사태를 등거리에서 바라보고 하나님의 지혜와 개입을 위해 기도하라.
내편을 힘써 응원하되 내편이 무조건 옳다고 맹신하지는 말라. 옳은 길로 가려고 애쓰는 사람은 칭찬하며 박수를 쳐 주는 정도에서 끝나고 그를 칭송하며 우상화하지는 말라. 그런 선진 의식이 훈련되어야 우상을 깨뜨리겠다고 하다가 또 다른 우상에 미혹되는 일을 막을 수 있고 나를 만만하게 보는 교주나 셀럽에 의해 하찮은 존재로 취급받는 믿음의 배신도 막을 수 있다. 이제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추앙하지 말고 속사람을 보는 능력을 키우고 사람이 아닌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내일을 복을 예비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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