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 에마 알머슨 : full of flowers ]



본문말씀 : 베드로전서 4장 12-13절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

 1993년 A 선교사는 괌 아래의 축(Chuuk)이란 섬으로 선교를 갔다. 찌는 듯이 덥고 습도가 높은 곳에서 냉장고도 없이 3년 동안 살며 그의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의사가 계속 선교지에 있으면 1년 이상 살지 못한다고 해서 결국 원래 살던 뉴욕으로 철수했다. 그때 기도했다. “하나님! 월세를 살기보다 차라리 장기 모기지로 집을 사겠습니다. 매달 1000불 이상 낼 능력이 없으니 1000불 이하를 내는 살만한 집을 주세요.”

 어느 날 뉴욕 퀸즈의 베이사이드에 쓰리 베드룸 2층 집이 27만 불이란 싼 가격에 나왔다. 그렇게 싼 이유는 귀신이 나오는 폐가로 소문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사로서 귀신이 나온다고 해도 전혀 무섭지 않았기에 곧 흥정에 들어갔다. 그 집을 유산으로 받은 주인 청년은 빨리 집을 팔고 라스베이거스로 달려가고 싶어서 많이 깎아 주었다. 결국 흥정 끝에 그 집을 18만 불에 구입했다. 그때 매달 내는 모기지 비용이 998불이었다.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정확하게 들어주신 것이었다.

 그 후 그는 건강 회복을 위해 틈틈이 직접 잔디를 깎고 집수리를 했다. 집수리에 거의 1년 걸렸다. 집이 깔끔해졌다. 동시에 집을 수리하면서 건강도 거의 회복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흉가라고 했던 집이 그에게는 목숨을 살려준 생가가 되었고 귀신이 나오는 집이 말씀과 기도로 충만한 집이 되었다. 그 집값이 나중에 크게 올랐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비결이 있다. 남이 회피하는 블루오션에서 승부를 내면 된다. 남이 회피하는 곳이 장기적으로는 기회의 땅이다. 남들이 귀신이 나오는 불길한 집이라고 회피하면 성도는 그런 곳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성도는 귀신을 능히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고난이 와도 고난을 이기는 믿음이 있으면 고난은 축복의 산실이 된다. 그러므로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라 >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이 6일간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매일을 이렇게 묘사한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몇 째 날이니라.” 하루의 시작을 밤부터 말하는 것을 보면 밤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밤은 무익한 시간이 아니다. 고난의 밤도 무익한 시간이 아니고 오히려 꼭 필요한 시간이다.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베드로는 곧 다가올 네로의 대 박해를 예견하고 불 시험이 와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했다(12절).

 불 시험은 순금과 찌꺼기를 분리하는 시험이고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시험이다. 그 시험을 감사와 기쁨과 믿음으로 잘 통과하는 사람이 진짜 성도다. 진실한 성도는 가시밭에 핀 백합화 같은 존재다. 동풍이 불면 서쪽 가시에 찔리고 서풍이 불면 동쪽 가시에 찔리지만 그럴수록 예수님의 향기가 나와 주변에 퍼진다. 그러므로 고난은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고난이 올 때 당황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생각하라.

 베드로는 성도의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했다(13절). 고난은 고통스럽지만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다고 여기고 즐거워하라는 뜻이다. 사람은 함께 고생하면 더 가까워진다. 잘 나갈 때 함께한 사람들은 쉽게 잊어도 고난의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은 쉽게 잊지 못한다. 교회도 작고 연약할 때 함께하면 더 관계가 깊어진다. 인간관계도 고난 중에 함께 할 때 더 깊어지듯이 주님관계도 주님의 고난에 참여할 때 더 깊어진다. 그러므로 성령의 임재를 생생하게 느끼면서 살기를 원하면 예수님의 고난에 힘써 동참하라.

 더 나아가 고난 중에 “주님의 고난에 참여한다.”라고 생각하는 수동적인 수준에서 머물지 말고 능동적으로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도록 주님과 교회를 위해 더 헌신하라. 헌신해야 작품이 나오고 좋은 일이 이뤄진다. 사도 바울은 영광을 받으려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고 여겼기에 고난 중에도 낙심치 않고 계속 전진해서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었다. 하나님은 고난 없이 영광을 주시지 않고 고난을 통해 영광을 주신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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