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실인의 서원 종료 율법(2)
본문말씀 : 민수기 6장 18-20절
18 자기의 몸을 구별한 나실인은 회막 문에서 자기의 머리털을 밀고 그것을 화목제물 밑에 있는 불에 둘지며 19 자기의 몸을 구별한 나실인이 그의 머리 털을 민 후에 제사장이 삶은 숫양의 어깨와 광주리 가운데 무교병 하나와 무교전병 하나를 취하여 나실인의 두 손에 두고 20 여호와 앞에 요제로 흔들 것이며 그것과 흔든 가슴과 받들어올린 넓적다리는 성물이라 다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니라 그 후에는 나실인이 포도주를 마실 수 있느니라
3. 머리털을 밀고 불태우라 (계속 헌신하라)
나실인 서원 기간이 끝나면 평범한 삶으로의 회복을 공식적으로 알리려고 머리털을 밀고 그 머리털을 화목제물 밑에 있는 불에 두어 태웠다(18절). 그것은 하나님께 자기 삶을 온전히 드리고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 가운데 있기를 원하는 다짐의 의미로 그렇게 했다. 또한 일정 기간의 금욕생활 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기쁘고 즐겁게 누리며 사는 것이 잘못이 아님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다.
나실인 서원 종료 의식을 끝낸 사람은 그때부터 그동안 엄격히 금했던 포도주를 마실 수 있었다(20절). 아마 그 의식 후에 전제물로 드려진 포도주를 한 잔 마시게 하면서 나실인 서원 종료 의식이 끝났음을 공표했을 것이다. 기독교인의 결혼식 후에 신랑신부에게 포도주를 한 잔 마시게 함으로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를 늘 기억하며 나를 희생하며 살겠다는 의미로 결혼식이 끝났음을 공표시키는 것도 의미가 있다.
원칙적으로 성경은 포도주를 금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가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자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첫 표적을 행하셨다(요 2:11). 바울은 디모데에게 물만 마시지 말고 그의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했다(딤전 5:23). 디모데는 유대인의 금욕 율법대로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물만 마셨지만 중동 지방의 오염된 물과 소심한 성격으로 위장병에 자주 걸렸기에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했다.
술을 마음대로 먹고 취해도 좋다는 말이 아니라 치료 목적이라면 술을 조금 마셔도 괜찮다는 것이다. 헌신하는 삶의 본질만 잃지 않으면 된다. 예전에 한 목사가 맥주를 취할 정도로 마시고 동료 선교사에게도 권했다. 담석 치료를 위해서였다. 담석 치료에는 이뇨성분이 있는 맥주가 효과가 크다고 하면서 의사의 권고로 둘 다 거의 20년 만에 처음으로 맥주를 마셨다. 겉모습만 보고 혹은 율법주의로 헌신 유무를 판단하지 말라. 본질이 중요하다. 시간이 지나면 본질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성도의 적절한 누림을 헌신의 결핍으로 정죄하지 말라.
4. 제물을 제사장에게 돌리라 (물욕을 극복하라)
나실인의 서원을 종료할 때 최종 의식으로서 제사장이 삶은 숫양의 어깨와 광주리 가운데 무교병 하나와 무교전병 하나를 취하여 나실인의 두 손에 두고 제사장은 제물이 놓인 나실인의 두 손을 밑에서 받쳐 들고 여호와 앞에 요제로 앞뒤로 흔들어 드렸다(19-20절). 제물이 놓인 손을 앞으로 내미는 행동은 하나님께 제물을 바침을 상징하고 제물이 놓인 손을 뒤로 이끄는 행동은 하나님이 받은 제물을 다시 되돌려 주심을 상징한다. 그때 요제로 드린 제들은 화목제물로 드린 흔든 가슴 및 넓적다리와 함께 제사장 몫으로 돌려졌다.
나실인의 서원 종료 의식에 드려진 제물을 제사장이 취하게 한 것은 제사 의식을 수행한 제사장들에게 수고의 대가로서 생활상의 필요를 채워 주시려는 목적도 있지만 하나님의 일을 맡은 제사장에게 제물을 돌리면서 물질 욕심을 극복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과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의 중요성을 체감시키려는 목적도 있었다. 성도가 하나님의 일꾼의 생활상의 필요를 채우는 일은 가치 있는 일이고 복된 일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일꾼을 위해 예물을 드리면서 배우고 체질화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물욕을 극복하는 삶이다. 그 삶은 복된 인생을 위해 매우 중요한 것이다. 돈의 주인이 되어 돈을 잘 쓰고 관리하는 지혜를 구하라. 돈을 잘 관리하지 못해서 돈의 종이 되면 단순히 돈의 종으로 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돈은 악마처럼 변해 나를 파멸로 빠뜨린다.
내면에 숨겨진 욕심을 잘 극복하면 남의 시선과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당당하게 살 수 있다. 또한 자기 파괴를 통해 자기 창조가 이뤄진다. 파괴되는 삶을 겁내지 말라. 하나님 안에서 파괴되는 것은 더 좋은 것이 새로 세워지기 때문이다. 욕심을 버리고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정직하게 심은 대로 정직하게 거두는 역사가 있다. 드리는 삶이 이기는 삶이다. 드리는 삶을 통해 욕심과 온갖 패배의식을 극복하고 인물로 준비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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