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로 온전히 들어서라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 사울의 회심 ]


본문말씀 : 갈라디아서 2장 20절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행복을 노래하며 살라 >

 신실한 성도에게 삶의 목적이 뭐냐고 물으면 대부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목적을 이루려고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지만 정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면 하나님의 일을 하기 전에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일하는 사람’보다 ‘은혜 받는 사람’을 통해 더 영광을 받으신다. 일도 은혜를 받고 해야 그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내 힘으로 하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지 않는다.

 옛날 신학교에서 강의할 때 가끔 신학생들이 말했다. “목사님! 목사님 교회에서 사역을 돕겠습니다.” 처음에는 그 학생들을 다 환영했지만 사역을 목적으로 온 학생들은 꾸준히 출석하지 못했다. 그리고 찾아올 때는 좋았지만 떠나갈 때는 부작용과 상처가 컸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나중에는 신학생들이 사역을 도우러 교회에 오겠다고 하면 사역을 도우러 오지 말고 은혜 받으러 오라고 했다.

 일보다 은혜가 우선이다. 교회는 일하러 오는 곳 이전에 은혜 받으러 오는 곳이다. 일은 은혜 받은 후 감격해서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일손이 부족해서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겠는가? 은혜보다 일을 앞세우지 말라. 돈도 앞세우지 말라. 요새 많은 교회가 돈 때문에 시험에 든다. 돈이 교회 출석의 목표가 되어도 안 되고 교회에서는 돈 자랑을 해도 안 된다. 하나님 앞에서 돈 자랑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교회에서는 특별히 3가지 자랑을 주의하라. 영성 자랑, 돈 자랑, 그리고 봉사 자랑이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오해하지 말라. 하나님은 나의 일을 통해 영광을 받기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을 노래하며 범사에 감사할 때 더욱 영광을 받으신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것은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라 은혜 받을 대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 십자가로 온전히 들어서라 >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십자가 고백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경에 나오는 가장 위대한 고백 중 하나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려면 십자가를 앞세워 살라. 십자가는 죽음을 상징한다. 죽어야 진짜 사는 길이 열린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왔다. 그러나 광야가 최종 목적지가 아니기에 광야에서 자꾸만 애굽을 바라보지 말고 죽음의 요단강을 건너 속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한다.

 오늘날 많은 성도가 일주일에 한 번 예배 때 만나를 배급받는다. 그리고 교회를 나서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 영적인 공복감을 느낀다. 왜 그런가? 죽음의 요단강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십자가로 온전히 들어서라. 자꾸 세상을 돌아보면 인생 낭비가 심해진다. 부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부부가 되었으면 옛사랑을 깨끗이 잊고 현재 배우자에게 몸과 마음을 확 주라.

 어떤 여성은 결혼 전에 사랑하는 애인이 있다가 복잡한 상황으로 결혼하지 못하고 결국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그런데 의외로 행복하게 잘 살았다. 결혼 전 사정을 잘 아는 친구가 물었다. “너 대단하다. 어떻게 과거의 상처를 잊고 그렇게 잘 사니?” 그때 그녀가 대답했다. “이미 베린 몸이잖아. 돌이킬 수 없으면 마음을 확 주고 살아야지. 그렇게 살아보니까 현재 남편도 좋은 점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예수님께 마음을 확 주라. 몸은 예수님께 왔어도 마음이 여전히 세상에 있으면 복된 역사가 나타날 수 없다. 은혜 생활에 기복이 심한 것은 좋지 않다. 어떤 사람은 감성이 풍부해서 말씀을 듣고 눈물도 잘 흘리지만 눈물이 그치면 금방 현실을 보고 탄식한다. “하나님! 이제 어떻게 사나요?” 십자가 안에 온전히 들어오지 않고 기쁨과 탄식의 기복이 심하면 축복도 받지 못한다. 그저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십자가 안에 온전히 들어서야 축복의 문이 열린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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