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마음을 가지라
본문말씀 : 스가랴 11장 1-3절
1 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 2 너 잣나무여 곡할지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쓰러졌음이로다 바산의 상수리나무들아 곡할지어다 무성한 숲이 엎드러졌도다 3 목자들의 곡하는 소리가 남이여 그들의 영화로운 것이 쓰러졌음이로다 어린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남이여 이는 요단의 자랑이 쓰러졌음이로다
< 열린 마음을 가지라 >
사람들이 왜 근거 없는 편견을 가지게 되는가? 자기의 부족함을 감추려고 역으로 남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것이다. 편견자들은 자기의 진짜 모습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보지 않으려고 한다. 반면에 남의 잘못은 용납하지 않는다. 그처럼 자기 존재의 빈곤이 심각할수록 자기가 무엇인가 낫다는 것을 역으로 증명하려고 편견을 가지게 된다.
사람은 다 죄인인 상황에서 근거 없는 편견을 가지면 소중한 것을 잃는다. 즉 “그는 죄인이고 나는 의인이다.”란 착각에 빠진다. 그러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자신을 의인이라고 착각하면 진리가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정죄도 나쁜 것이지만 편견은 더 나쁜 것이다. 정죄는 근거를 가지고 “너 나쁜 사람이다.”라고 하는 것이지만 편견은 뚜렷한 근거도 없이 “너 나쁜 사람이다.”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을 이유 없이 폄하하면서 못난 나를 감추려고 편견을 이용해 남을 낮추려는 인생은 비겁한 인생이다. 인간은 다 죄인이기에 “어떤 죄를 지었는가?”라는 문제보다 “죄를 지은 후 남 탓으로 돌리는 비인격적인 사람이 될 것인가? 자기 잘못을 떳떳이 인정하는 인격적인 사람이 될 것인가?”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 자기 존재를 높이려고 남을 편견의 희생물로 만들지 않고 자기 잘못을 떳떳이 시인하는 용기를 가져야 위대한 인격체가 된다.
단순히 잘못하는 것은 누구나 그럴 수 있기에 쉽게 용서될 수 있다. 그러나 잘못을 반복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더 나아가 잘못을 정당화하려고 남을 편견의 희생물로 삼는 것은 심각한 죄이다. 편견으로 남을 쉽게 판단하지 말라. 사람의 판단은 겉보기에는 정당하게 보여도 오류가 있을 수 있기에 다양한 사람이 사는 다양한 사회에서 자기의 판단과 경험을 지나치게 신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편견의 수렁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가? 진리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라.
< 열린 마음의 유익 >
왜 레바논의 백향목, 잣나무, 바산의 상수리나무 같은 고급 나무들이 불타고 곡하고 넘어지고 쓰러지는가? 교만하게 메시야를 배척했기 때문이다. 교만이 무엇인가? 자기에게 있는 것을 자랑하는 것도 교만이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이해해 줄 수 있다. 진짜 교만은 하나님이 필요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삶이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고 하지만 닫힌 마음을 가지고 편견이 심한 것도 일종의 교만이다.
열린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겸손하게 사방에서 진리를 구하려는 마음이다. 진리는 스승에게서도 오지만 원수에게서도 올 수 있다. 열린 마음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라고 외치지 않는다. 그처럼 마음이 열려야 진리와 행복도 더 많이 얻는다. 닫힌 창고보다는 열린 뒤주가 낫다.
열린 마음을 가지면 어떤 유익이 있는가? 첫째, 많은 진리를 얻는다. 진리는 실제적으로 무한하다. 그래서 크고 분별력 있는 수용성을 가져야 한다. 편견의 토벽 속에 갇혀 있으면 토벽 밖에 보지 못한다. 둘째, 다른 지식을 위한 기초를 다지게 된다. 지식은 한 곳에 도달하려고 다른 곳을 떠나야 하는 평면적인 것이 아니라 큰 건물과도 같다. 많이 알수록 기존의 지식이 발판이 되어 새로운 지식을 더 얻는다. 더 많이 알고 배울수록 지식의 증가는 쉬워지고 진리에의 근접도 쉬워진다.
자신의 영역에서 벌어진 작은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편견의 칼을 휘두르는 것은 지극히 비인격적인 태도이다. 사람을 볼 때 그 사람 자체를 보려는 자세를 가지고 항상 열린 마음으로 모든 사람들을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선으로 보라. 무엇보다 진실한 훈계와 충고를 감사하며 진리와 축복을 담을 수 있는 겸손한 심령을 준비하라. 가끔 듣기 싫은 말을 들을 때도 있지만 필요한 것이라면 듣기 싫은 말도 들을 줄 아는 열린 마음을 가지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