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가 넘치게 하는 길
본문말씀 : 시편 100편 1-5절
1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 감사를 넘치게 하라 >
하나님의 임재로 들어가게 하는 핵심적인 문 중의 하나가 감사의 문이다. 감사는 하늘 문을 여는 키와 같다. 감사 훈련을 잘 받아서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사실상 최고의 제자다. 그러므로 삶 자체를 감사하고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을 기적과 은혜로 여기고 감사하라. 빌립보서 1장 3절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다. ‘생각한다(think)’는 말은 ‘감사한다(thank)’는 말과 같은 어원을 가졌다. 깊이 잘 생각하면 감사가 나온다.
성숙한 신앙인의 뚜렷한 징표는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다. 성공할 때도 감사하고 실패할 때도 감사하라. 힘들고 어려울 때 드리는 감사는 더욱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신다. 최고의 믿음은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이다. 신자와 불신자를 구별하는 기준이 감사를 아는 삶과 직결된다. 감사 훈련을 통해 감사하는 삶을 체질화시키라. 범사에 감사하는 삶은 대대로 이어지는 복을 위한 최대 비결이다.
무엇이든지 꾸준한 삶이 보기에도 좋고 복에도 좋다. 어떤 성도는 교회에서 큰 상처를 받아도 꾸준히 자기 자리를 지킨다. 왜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삶의 가치를 알고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얼마나 복된 모습인가? 무능하고 못나 보여도 꾸준한 사람은 결코 무능한 사람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능력이 부족하다면서도 무엇이든 꾸준히 잘한다. 갑자기 천사가 되지도 않고 갑자기 마귀가 되지도 않고 그냥 꾸준하다. 그처럼 감사할 때도 순간적이고 열정적인 감사보다 지속적이고 체질적인 감사를 앞세우라. 감사는 복을 불러올 뿐만 아니라 감사하는 삶 자체가 복이다. 극심한 시련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범사에 감사하라. 고난의 필요성과 유용성을 인정하면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다.
< 감사가 넘치게 하는 길 >
감사가 넘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받은 은혜의 가치를 깨달으라. 평범한 삶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곳곳에 얼마나 많은가? 그 은혜를 잘 깨닫지 못하다가 어려움을 당하면 비로소 그 은혜의 가치를 인식할 때가 많다. 사람은 가뭄을 당해야 비로소 물의 가치를 깨닫고 병들어야 비로소 건강의 가치를 깨닫고 황사가 있어야 비로소 맑은 공기의 가치를 깨닫는다. 사소해 보이는 것에 담긴 은혜의 가치를 깨닫고 감사하라.
둘째,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으라. 교만하면 감사하지 못한다. 또한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해서 재물과 건강을 의지하고 은혜의 중요성을 망각한다. 교만이 넘치는 마음에는 감사가 있을 자리가 없다. 자신이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겸손해지라. 그것을 위해 사람의 시선이 없는 곳에서 소리 나지 않게 헌신하고 봉사하는 훈련을 많이 하라.
셋째, 감사의 복을 알라. 감사는 실제적인 복이 흘러들어오게 하는 최고의 통로다. 감사는 복 받는 연습이고 불평은 망하는 연습이다. 하나님은 범사에 감사하면 더 많은 감사거리를 주시지만 감사할 것이 많은데도 원망하고 불평하면 그 감사거리마저 빼앗아 가신다. 그처럼 감사의 복을 기대하면서 더욱 범사에 감사하는 훈련을 하라.
넷째, 장점을 보는 눈을 기르라. 살다 보면 장점을 보고 기뻐하다가 단점을 보고 실망하는 일을 많이 겪는다. 단점은 힘써 작게 보고 장점은 힘써 크게 보라. 참된 친구는 단점이 발견된 날을 친구에게 조금 더 다가가는 날로 삼는다. 인간관계에서 장점을 크게 보면서 서로 감사하며 살 때 하나님이 그 영혼과 그가 속한 공동체에 넘치는 은혜를 주시고 아브라함과 다윗처럼 대대로 복 받는 가문의 선조가 되게 하실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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