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복된 믿음
본문말씀 : 히브리서 11장 7절
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 노아의 복된 믿음 >
본문은 의의 상속자가 되어 인류의 중시조가 되었던 노아의 4가지 복된 믿음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노아의 복된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1. 경고에 열린 믿음
하나님의 경고는 사건을 통해서도 오지만 많은 보이지 않는 경고는 말씀을 통해 온다. 말씀에 반응할 줄 알고 경고에 열린 믿음을 가지라. 창세기 6장 9절을 보면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로 여겨졌다. 그 표현은 그가 흠이 없는 완벽한 사람이란 뜻이 아니라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했다는 뜻이다. 목사가 목회하면서 최고로 기쁠 때가 있다. 성도가 목사의 말을 어떻게든 들으려는 모습을 보일 때다. 그처럼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모습만 보여도 하나님은 최고로 기뻐하실 것이다.
세상 사람과 믿는 사람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 차이는 죄의 유무 차이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의 유무 차이다.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중요하다. 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가? 말씀에 반응할 줄 알고 경고를 받을 줄 아는 자다. 어떤 성도는 인간적인 욕심이 없는 목자가 어떤 길로 가지 말라고 간절히 막을 때 그 막는 소리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열린 마음으로 수용한다. 그런 수용성 있는 마음이 준비되면 하나님의 은혜의 물줄기가 그 열린 마음을 통해 급속히 흘러들 것이다.
특히 성도는 고난을 통한 경고를 받는 삶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성도의 삶은 만사형통한 삶이 아니다. 성도는 복을 받을 때도 대개 고난을 극복하면서 받는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세상과 성도는 적당히 어울릴 수 없다. 세상은 성도를 부단히 길들이고 물들이려고 하면서 길들임과 물들임을 거부하는 성도를 거부하고 따돌리고 미워한다. 또한 세상 사람은 성도와 같이 있으면 자신의 악이 더 드러나니까 성도를 더욱 따돌리려고 하기에 믿음의 길은 꽃길이나 지름길보다 가시밭길이나 우회로일 때가 많다.
하나님은 종종 고난과 핍박을 경고의 의미로 당하게 하신다. 그 경고를 잘 받으면 고난과 핍박은 오히려 복의 원천이 된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난의 십자가가 멸망하는 사람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다(고전 1:18). 믿음이 성숙해지고 깊어질 때는 평안할 때보다 어려울 때다. 초대 교회 성도에게는 카타콤 지하 무덤에 있던 때가 가장 믿음이 진실했던 때였다. 고난을 예상하고 경고에 열린 마음을 가지는 진실한 믿음은 궁극적인 승리로 귀결될 것이다.
2.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
노아가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고 제일 먼저 한 일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었다. 성도가 가장 우선적으로 가져야 할 삶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다. 아무리 다른 복을 받아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잃으면 다 잃는다. 반면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만 있으면 절망 중에도 희망은 있고 잠시 무너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고 후퇴해도 그 후퇴가 오히려 인생 전체로는 전진이 된다.
10대 자녀가 불치병으로 일찍 죽은 부모와 10대 후반부터 하나님을 멀리하고 타락한 생활을 하다가 남을 죽이고 감옥에 간 자녀의 부모 중 어느 부모의 상심이 덜하겠는가? 후자의 부모가 덜하다고 말할 수 없고 오히려 더 클 수 있다. 그렇다면 부모는 자녀의 생명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지만 자녀의 신앙을 위해서는 더욱 기도해야 한다. 신실한 부모에게는 자녀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외면하는 것처럼 상심되는 일이 없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도 크게 상심시킨다.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모든 복과 사랑의 원천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잃어버리면 세상 물건에 눈독을 들이게 된다. 눈독이란 단어는 한글의 눈과 한자의 독(毒)이 합성된 단어다. 왜 갈등과 싸움이 생기는가? 힘 과시를 위해 소유와 자리에 눈독을 들이기 때문이다. 싸움과 갈등의 원천은 눈독과 욕심이다. 외적인 평화와 내적인 평안을 원하면 눈독을 빼내고 욕심을 버리라. 그것을 위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가지고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드나베의 삶을 힘써 사모하며 실천하라.
영어로 사람을 human-being이라고 하는데 요즘은 human-having이라고 할 정도로 사람들이 소유에 집착한다. 그러나 소유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잃는다. 소유할 때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과 하나님을 품는 마음을 잃지 않도록 소유한 것을 의미 있게 쓰고 나누라. 더 나아가 의미 있게 쓰고 나누려고 소유를 추구하라. 그런 복된 삶을 위해 기초적으로 가져야 할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다.
3. 방주를 예비하는 믿음
노아가 경고를 받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가진 후 무엇을 했는가? 방주를 준비했다. 방주를 얼마 동안 준비했는가? 120년 동안 준비했다는 견해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어떻든지 간에 상당히 오랫동안 방주를 지었다. 방주는 고페르 나무로 수많은 동물들이 들어가 사이좋게 살도록 정교하게 지어졌고 배와 건축물의 중간 정도의 성격을 가진 것이기에 당대의 최고 건축 기술과 건조 기술이 쓰였을 것이다.
또한 오랫동안 자신의 재정을 다 쏟아 부어 불필요하게 보이는 방주를 짓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얼마나 조롱했겠는가? 당시 사람들은 세상이 잠길만한 대 홍수를 상상할 수 없었기에 노아에게 “혼자 너무 튄다. 너무 잘난 척 한다. 너무 별나게 행동한다.”라고 갖은 모욕을 다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 명령대로 오랫동안 묵묵히 방주를 만들었다.
잠시 소리를 내며 최선을 다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오래 소리 없이 최선을 다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없다. 왜 매일의 말씀과 기도 생활이 복된 삶인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일 말씀과 기도를 사모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복된 마음이다. 매일의 말씀과 기도 생활을 통해 하나님과의 소통하라. 노아가 홍수 전까지 매일 방주를 지었듯이 매일의 말씀과 기도 생활로 주님을 만날 때까지 영적인 축복의 방주를 지으라.
믿음에는 구체적인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특히 준비하는 행동이 필요하다. 준비한 후 환경과 상황이 준비한 대로 펼쳐지면 발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혹시 환경과 상황이 준비한 대로 펼쳐지지 않아도 그 준비한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아서 새로운 환경과 상황을 잘 대처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준비도 없이 말만 하거나 그냥 행동부터 하면 인생 낭비가 심해진다. 어느 분야든지 잘 준비된 삶에는 유익이 많다. 노아처럼 구체적으로 잘 준비하는 믿음을 가질 때 시대 변화와 상황 변화에도 잘 대처할 수 있다.
4. 집을 구원하는 믿음
본문 7절 하반부 말씀을 보라.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노아에게는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힘이 되는 것이 있었다. 가족들이 자신의 믿음의 행동에 동참해 준 것이었다. 그처럼 가족의 적극적인 후원은 한 사람의 성공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가정은 작은 교회다. 믿음은 가정의 행복을 추구하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 가정을 불행으로 이끄는 이단 교주의 믿음과 헌신 강조에 결코 미혹되지 말라. 가정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려고 힘쓰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다.
집을 구원하는 믿음은 간단히 말하면 함께 살려는 믿음이다. 믿음의 삶은 함께함의 원리로 사는 삶이다. 기독교에서는 개인적인 영성보다 공동체적인 영성을 더 중시한다. 경쟁에서 이겨 혼자 잘 사는 믿음은 수준 낮은 믿음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비전에 동참한다는 말이다. 동참과 공감은 성도에게 꼭 있어야 하는 핵심 속성이다. 그러므로 경쟁에서 이기는 길보다 공존하면서 행복을 키우는 길을 찾으라.
믿음의 삶이란 혼자 사는 법보다 함께 사는 법이 능숙해지는 삶이다. 그런 삶을 살려면 남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남과 다른 것을 인정하라. 사랑은 차이를 인정할 때 생기고 미움은 차이를 거부할 때 생긴다. 미움을 버리고 믿음을 가지라. 함께하는 삶을 위해 예수님의 발에 고가의 향유를 부은 여인처럼 거룩한 낭비에 익숙해지라. 낭비는 없어야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교회를 위한 거룩한 낭비는 꼭 필요한 것이다.
참된 사랑에는 낭비적인 속성이 있다. 아낌없이 주는 것이 사랑이다. 하나님이 인간 예수님이 되신 것도 거룩한 낭비이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도 거룩한 낭비다. 그런 낭비를 통해 영혼을 구원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 하나님이 지금 함께 있게 하신 사람을 인물로 만들려는 공동체적인 마음을 가질 때 노아처럼 세상을 살리는 거룩한 중시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늘 경고를 받아들이는 믿음,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 방주를 예비하는 믿음, 집을 구원하는 믿음을 가지고 노아처럼 복된 존재로 준비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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